마음닦기/독서

뭉우리돌의 들녘

빛살 2025. 6. 17. 17:06

뭉우리돌의 들녘 러시아•네덜란드 편/김동우/수오서재/2024.6.1.

사라지기도 하고 잊혀져 가기도 하는 독립운동 유적지에서 느낀 감정과 분위기를 사진과 글로 구현하고자 노력하는 자세가 진지했다. 사전을 찾아봐야할 낯선 단어들도 종종 있었고 이야기도 장황하지 않아 시적 분위기마저 감돈다. 글과 사진을 음미하도록 만드는 작품이다.
정보를 전달하려고 장광설을 늘어놓거나 TMI로 오히려 가독률을 떨어뜨리는 기행문들과 비교되는 감성을 자극하는 새로운 형태의 기행문이자 사진첩이다. 나도 사진을 잘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뭉우리돌이 백범일지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설명을 읽고(1911년 105인 사건, 서대문 형무소 취조) 몇년 전 백범에 대한 비판적 의견에 충격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후조 고능선이 백범에게 준 "得樹攀枝未足奇 懸崖撒手丈夫兒"(도천야보의 선시 중에서)를 좌우명 삼아 읊조리면서 이육사 <절정>과 연결시키고, <나의 소원>을 가르치며 감개에 젖던 기억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느낌이었다.

<김구 청문회>(김상구 재야사학자, 총 2권, 매직하우스)를 검색해 정리했다.
1920년대 초반부터 분명해진 김구의 거의 맹목적이다 싶은 반공 성향 - "김구와 임정 중심 역사는 항일 독립운동사 왜소화”- 1947년 북한 거리에 걸려있던 '타도 김구, 이승만' 펼침막과 1947년 실시된 '가장 반통일적이고 반민족적인 단체'를 묻는 질문에 김구의 한독당이 2위로 꼽혔다.
논란1, 박정희가 김구를 '민족영웅'으로 만들었다?
김구의 아들 김신(공군 중장, 공군 참모총장) 5.16, 유신 협조. 김구와 이순신.
논란2, <백범일지>는 '친일파' 이광수가 윤문했다?(김신의 고백)
-<나의 소원>은 친필본에 없다. 이광수가 1928년 <동아일보>에 쓴 ‘젊은 조선인의 소원’이라는 글과 유사하다.
논란3, 김구는 정치적 위기 때문에 김일성을 만났다?
<백범일지>는 사료 인용과 해석의 ‘디테일’부터 오류나 왜곡이 의외로 많다. “일제의 명성황후 시해(을미사변) 이후 퍼져나간 반일운동 당시 백범이 죽였다(1896년 3월)는 ‘쓰치다’는 일본 육군 중위가 아니라 민간 상인이었다.-이것을 노재승(윤석열 공동선대위원장 3일간, 김구는 국밥 좀 늦게 나왔다고 사람을 죽인 인간)의 자신의 주장에 근거로 삼았다.
그 사건으로 인천감옥에 수감된 김구를 사형 직전에 고종이 막 개통된 서울~인천 간 전화로 직접 형집행 정지명령을 내려 살렸다(1896년 윤8월)는 얘기도 사실이 아니다. 김씨가 논거로 인용한 한국전자통신연구소 발표 논문을 보면, 궁중과 정부 부처 간 자석식 직통전화가 개통된 것은 1898년 1월, 서울~인천 간 시외전화가 개통된 건 1902년이었다.
또한 국제적 감각 부족이 부족해 열등감이 있었고 임정 내 이승만을 중심으로 한 기호파에 쏠려있었다. 1925년 이승만 탄핵 이후 이동휘(사회주의)와 이승만(기호파) 사이에서 조화를 꾀하던 안창호의 국무령 취임에 반대하여 13일만에 하차하게 한다.(기호파는 500년의 원수-안창호)

김구의 역할: 임정의 문지기 수호신, 배타적 독선, 철저한 반공주의자- 
1922년 김립 암살, 오면직 노종균 백색테러 : 한인사회당과 신민단의 합당, 상해 통합 입시정부 출범의 견인차요, 조직가, 모스크바 차관을 성사시킨 기획자로서 세계 정세를 읽을 줄 알았던 뛰어난 정치가 김립. 그 죽음에 대하여 그의 암살(오면직, 노종면)을 뒤에서 명했던 김구는 훗날 백범일지에서 이렇게 기록했다. “통쾌하다.” 백색테러의 시작이었고, 이것이 좌우대립 민족상잔의 불씨가 되었다.(여명과 혁명 그리고 운명 2-214)
*백범일지: 자기자랑, 이범석의 우등불:자기자랑+거짓,  김일성 세기와 더불어+왕 거짓말(연변대 박창욱 교수)

출판사 수오서재는 사진 출판이 특화되었다고 한다. 정약용의 <수오재기>가 떠올리며 "자신을 지킨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며칠 전 백두산 여행에서 만난 발도르프학교(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길을 찾아갈 수 있다-사회공헌이 목표) 학생들과 우리 교육의 현실을 비교해보았다. <->"미안하다고 말하기가 그렇게 어려웠나요", <인성의 심연: 吴谢宇wúxièyŭ 사건, '소도시 문제풀이 능력자'(小镇做题家)
*민주주의 최대의 적은 '약한 자아', 민주주의자는 강한 자아를 지닌 자이다.

이 책의 <우아한 복수> 부분에서 김알렉산드라 이야기.
《'隨處作主 立處皆真이라 했다.' 어디에서든 주인으로 살면 그곳이 바로 진리의 자리가 된다. 주인으로 산다는 건 어떤 누구도 어떤 환경도 굴레가 되지 못하는 삶이다. 그것은 선택에 책임을 다하는 여정이자, 과정을 즐거움으로 승화하는 생이다. 주인으로 사는 사람은 애걸도 구걸도 하지 않는다. 도움받기보다 베풀며, 따라나서기보다 스스로 깃발이 되고, 무엇보다 당당하고 흔들림이 없다. P.339》
'니코마코스 윤리학’(아리스토텔레스)의 ‘메갈로프시코스’(megalopsychos, ‘혼이 큰 사람,’ 곧 포부가 크고 뜻이 높은 사람이다. 메갈로프시코스는 큰 포부와 높은 뜻으로 시민을 이끄는 사람이다. 안중근)와 ‘카우노스’(chaunos 속이 빈 사람, 허명을 좇는 사람이다. 엄인섭)

특히 기억에 남는 것들.
•간도 대통령 김약연
•15만원 탈취사건과 엄인섭
•댄하그(헤이그) 특사의 행적
•체코 군단의 무기 매매
<민생단 사건과 자유시참변>
*자유시 참변 추모비
"다시는 우리끼리 싸우는 일이 없기를. 서력 1921.06.28. 흑강 자유시사건 독립군 순절지. 1921년 이 땅에서 희생된 한인 빨치산 잠들다."
* 민생단(民生團) 사건: 1932년 11월~36년 2월까지 3년 4개월 동안 만주국의 동만주, 즉 간도 일부 지역에서 민생단(친일·반공단체, 간도 자치령)과 관련된 혐의-중국공산당 동만 조직에 침투한 스파이-로 조선인 공산당원을 숙청하는 과정에서 무고한 조선인들을 체포, 살해한 사건. 1980년대 중국 측의 조사에서 확인된 560여 명의 희생자 가운데 스파이라는 근거가 나온 경우는 없다. 희생자는 모두 조선인이었지만, 가해자도 조선인이었다. 중국인 희생자는 없었으며, 조직의 책임자였던 중국인이 가해자인 경우는 있다.
중국공산당-일국일당주의 중국혁명 우선시 조선혁명으로 힘의 분산 우려, 간첩 의심. -> 북한 주체사상의 기원(한홍구).
이 사건으로 간도의 조선인과 조선인, 그리고 조선인과 중국인의 연대가 약화된다.
민생단 사건을 다룬 작품 - 밤은 노래한다(김연수)

*극우에 대처하는 방법 - 접합점 찾기, 접촉면 넓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