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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산민-김창협

한문/한국한시

by 빛살 2009. 2. 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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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민(山民)

                                                       김창협(金昌協)

 


  산에 내려 인가를 찾아가 보니,           下馬問人居(하마문인거)

  아낙네 문간에 나와 맞이하네.             婦女出門看(부녀출문간) 

  띠집처마 아래 손을 앉게 하고,            坐客茅屋下(좌객모옥하) 

  나를위해 밥과 반찬 내어오네.             爲我具飯餐(위아구반찬) 

   남편은 어디에 나가 있는지,               丈夫亦何在(장부역하재) 

   아침에 소끌고산에올랐는데,              扶犁朝上山(부리조상산) 

  산밭을 일구느라 고생을 하며,             山田苦難耕(산전고난경)  

  저물도록 돌아오지 못한다네.              日晩猶未還(일만유미환)

  사방을 둘러봐도 이웃은 없고,             四顧絶無隣(사고절무린)

  닭과 개만 산기슭을 오르내린다.          鷄犬依層巒(계견의층만)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고,            中林多猛虎(중림다맹호) 

  나물을 뜯어도 얼마 되지 않네.            採藿不盈盤(채곽불영반) 

  슬프다, 외진 산림 무엇이 좋아서         哀此獨何好(애차독하호)

  가파른 이 산중에 있는고?                   崎嶇山谷間(기구산곡간)

  저 쪽의 평지가 좋기야 하지만,            樂哉彼平土(낙재피평토)

  원님이 무서워 갈 수가 없구나.            欲往畏縣官(욕왕외현관)

  

 <갈래> 한시. 오언고시(五言古詩)

 <성격> 사실적. 비판적

 <어조> 현실을 개탄하는 연민과 탄식의 목소리

 <제재> 산간 사람들의 가난한 생활

 <주제> 가혹한 정치에 시달리는 산골 사람들의 고통스러운 삶

 <출전> <농암집(聾巖集)>

 

 <짜임>

 1. 1~4행 : 우연한 산속 민가의 방문

 2. 5~8행 : 산속 농민의 고된 일상

 3. 9~12행 : 산속 생활의 외로움과 두려움

 4. 13~16행 : 학정으로 인한 백성들의 고달픈 삶

 

 <특징>

 1. '가파른 산중'과 '평지'를 대비시켜 백성들의 힘겨운 생활상을 나타내고 있다.

 2.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의 고사성어를 시로 잘 형상화하고 있다.

    -관련 한자 성어 : 苛斂誅求

 

 <시어, 시구 풀이>

 * 숲 속에는 사나운 호랑이 많고 : 뒤에 이어지는 내용으로 보아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라는 ‘학정(虐政)의 무서움’을 말한 고사 성어와 

                                              상통한다.

 * 원님이 무서워 갈 수가 없구나 : 가렴주구(苛斂誅求)에 시달리는 백성의 처지를 말하고 있다.

 

 <지은이>

김창협(金昌協1651(효종 2)~1708(숙종 34).
고고하고 기상이 있는 문장을 썼고, 글씨도 잘 쓴 당대 문장가이다. 본관은 안동. 자는 중화(仲和), 호는 농암(農巖). 당대 명문 출신으로 상헌(尙憲)의 증손자이며, 아버지 수항(壽恒)과 형 창집(昌集)이 모두 영의정을 지냈다. 육창(六昌)으로 불리는 여섯 형제 중에서 특히 창협의 문(文)과 동생 창흡(昌翕)의 시는 당대에 이미 명망이 높았다. 1669년(현종 10) 진사시에 합격하고, 1682년(숙종 8) 증광문과에 전시장원으로 급제하여 병조좌랑·사헌부지평·동부승지·대사성·대사간 등을 지냈다. 아버지 수항과 중부(仲父) 수흥(壽興)은 노론의 핵심인물이었는데, 그가 청풍부사로 있을 때 기사환국(己巳換局)으로 아버지가 진도에서 사사(賜死)되자 벼슬을 버리고 영평(永平)에 숨어 살았다. 1694년 갑술옥사 후 아버지의 누명이 벗겨져 호조참의·대제학에 임명되었으나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만 전념했다. 24세 때 송시열을 찾아가 소학(小學)에 대해 토론했고 이이의 학통을 이었으나 호락논쟁(湖洛論爭)에서는 호론(湖論)의 입장을 취했다. 전아하고 순정한 문체를 추구한 고문가(古文家)로 전대의 누습한 문기(文氣)를 씻었다고 김택영에게 높은 평가를 받았다. 숙종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 영암의 녹동서원(鹿洞書院)에 제향되었다. 저서로는 〈농암집〉·〈주자대전차의문목 朱子大全箚疑問目〉·〈오자수언 五子粹言〉·〈이가시선 二家詩選〉 등이 있고, 〈강도충렬록 江都忠烈錄〉·〈문곡연보 文谷年譜〉 등을 엮어 펴냈다. 시호는 문간(文簡)이다.

<이해 하기>

 산촌에 살아가는 백성들의 가난하고 열악한 삶의 원인이 가혹한 지방관의 수탈 때문임을 제시하고 있다. 백성들은 사방에 이웃이라고는 없는 외로움과 호랑이에 대한 두려움, 가난하고 열악한 생활 환경에도 불구하고 산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 이유는 ‘원님이 무서워서’이다. 즉 이 작품에서 지은이는 백성의 어려운 처지에 관심을 보이면서 관리의 횡포를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의 한시들이 현실의 문제점을 직접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이전 사대부들이 지은 관념적 한시의 한계를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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