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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11-번뇌의소멸

불교/반야심경

by 빛살 2011. 7. 24. 22:05

본문

 

 

 

번뇌의 소멸

 

 

 


 

以無所得故   菩提薩陀   依般若波羅蜜多故   心無罣礙   無罣礙故   無有恐怖

遠離顚倒夢想   究竟涅槃

 

얻는 바가 없으므로 삼세의 모든 보살들이 오직 반야바라밀에 의지하여 수도한다. 그러므로 마음에 걸림이 없게 되고, 마음에 걸림이 없으므로 두려움이 없다. 전도된 마음을 멀리 하고 마침내 열반에 이르게 된다.

 


  

 

열반涅槃 

  

“사리불이여, ‘열반, 열반’이라 하는데, 열반이란 대체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벗이여, 무릇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 이것을 일컬어 열반이라 한다.”

 - 南, 相應部經典4, p.389, 涅槃 -

 

열반의 원어는 팔리어로는 닙바나(nibbāna), 산스크리트로는 니르바나(nirvāṇa)이다. 중국의 번역자들이 그것을 소리나는 대로 적어 열반이라 한 것이다. 또 이를 뜻으로 번역하여 멸도(滅度)․적멸(寂滅)이라 하고, 줄여서 멸(滅)이라고 하였으나 아무래도 본디의 뜻이 잘 드러나지 않으므로 열반이라는 말이 가장 널리 쓰이게 되었다. 닙바나 또는 니르바나는 ‘불이 꺼진 상태’를 뜻한다.

탐욕[貪]과 노여움[瞋]과 어리석음[痴]을 삼독(三毒)이라 하는데, 이것에 대해 붓다는 다음과 같은 비유로 설하였다.

  

붓다가 사위성의 기타(祈陀) 숲의 정사(精舍)에 계실 때, 어느 바라문이 찾아와서 물었다.

“세존이시여, 어떤 때는 정신이 맑아, 지금까지 배운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아직 배우지 않은 것도 쉽게 설명할 수 있는데, 어떤 때는 혼미하여 배운 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이것은 대체 어찌된 일입니까?”

“바라문아, 물이 가득 담긴 그릇이 있다고 하자. 만약 그 물이 붉거나 푸르면 거기에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아도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탐욕에 물들어 있을 때에는 어느 것도 있는 그대로 비취지 않는다. 또 만약에 그 물이 끓고 있다 하여도 얼굴을 비춰 볼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마음이 노여움에 휩싸여 있을 때에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바라문아. 그와 같이 마음이 탐욕에 흐려져 있지 않고, 노여움에 들끓지 않으며, 어리석음에 가려져 있지 않으면 무엇이든지 있는 그대로 바르게 볼 수 있을 것이다.

- 南, 相應部經典5, p.324, 傷歌羅 -

 

포다리(哺多利)야, 탐욕은 마치 마른 풀로 만든 횃불을 들고 바람 부는 쪽으로 걸어가는 것과 같다. 만약 그 횃불을 빨리 버리지 않으면 손이 타는 괴로움을 당할 것이다. 포다리야, 그러므로 나의 제자들은 ‘탐욕은 마른 풀로 만든 횃불과 같다. 그것 때문에 괴로움이 많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탐욕을 꿰뚫어 보고 세속에 대한 집착을 모두 끊으려고 노력한다.

 - 南, 中部經典2, p.115, 哺多利經 -

 

 붓다가 왕사성의 죽림정사에 있을 때, 한 바라문이 몹시 화가 나서 찾아왔다. 그의 동료 한 사람이 붓다에게 출가했기 때문이었다. 붓다는 그가 심하게 욕하면서 비난하는 것을 묵묵히 듣고 있다가 조금 조용해지자 말했다.

 

“바라문아, 그대는 집에 손님이 오면 좋은 음식을 대접할 것이다.”

“물론 그렇다.”

“바라문아, 만약 그때 손님이 그 음식을 받지 않는다면 그것은 누구의 것이 되겠는가?”

“그것은 다시 나의 것이 될 수밖에 없지 않는가?”

“바라문아, 그대는 내 앞에서 온갖 악한 말을 하였지만 나는 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은 다시 그대의 것이 될 수밖에 없다. 바라문아, 만약 내가 욕설을 듣고 되받아 욕을 한다면 그것은 주인과 손님이 함께 식사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나는 그 음식을 먹지 않았다.”

- 南, 相應部經典1, p.276, 讒謗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의 삼독은 사제의 집제에서 괴로움의 원인을 갈애라고 했을 때의 그 갈애와 같은 말이다. 열반은 육체적․정신적 작용이 완전히 끊어진 상태가 아니라 격렬한 탐욕의 불꽃이 꺼진 심리 상태인 것이다.

 

붓다가 사위성의 기타숲에 계실 때, 어떤 사람이 찾아와 물었다.

“세존이시여, 세존의 제자들이 해탈했을 때, 그들은 어디에 가서 태어납니까?”

“어디에 가서 태어나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러면 어디에도 가지 않는다는 말입니까?”

“내가 묻겠으니 대답해 보아라. 만약 여기에 불이 타고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것은 세존이시여, 다만 불이 타고 있을 따름입니다.”

“그대의 말이 옳다. 그러면 그 불은 왜 타고 있느냐고 묻는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그것은 나무가 있기 때문입니다.”

“옳은 말이다. 그러면 나무가 다 타고 불이 꺼졌을 때, 그 불은 어디로 갔느냐고 묻는다면 그대는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세존이시여, 그 것은 적당한 물음이 아닙니다. 불은 나무가 있으니까 탔고, 나무가 다 탔으니까 꺼진 것뿐이지 꺼진 불이 어디로 갔느냐는 물음은 좀 이상한 듯합니다.”

“그와 마찬가지이다. 이 인생은 괴로움으로 가득 차 있다. 그것은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 때문이다. 나는 괴로움을 없애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이다. 격렬한 탐욕의 불꽃이 없어지면 불안이나 괴로움도 없어진다. 훨훨 타오르던 불도 그 땔감이 다하면 꺼져 버리는 것과 같다. 그것을 나는 열반이라 한다.

 - 南, 中部經典2, p.312, 波蹉衢多火喩經 -

 

붓다의 제자 중에 라타(羅陀)라는 비구가 있었다. 그는 매우 솔직해서 아주 간단한 것이라도 이해되지 않으면 물었다.

 

“세존이시여, 자주 ‘악마, 악마’하시는데, 도대체 악마란 무엇입니까?”

“라타야, 우리의 신체와 감각과 표상과 의지와 의식은 자신을 방해하고 혼란시키고 불안하게 한다. 그러므로 그것을 악마라 관찰하고, 파괴자라 관찰하고, 죽음이라 관찰하고, 병이라 관찰하고, 아픔이라 관찰하라. 이렇게 관찰하면 그것을 바른 관찰이라 한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해 바른 관찰을 합니까?”

“세속을 싫어하여 떠나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위해 세속을 떠납니까?”

“격렬한 탐욕을 버리기 위해서이다.”

“무엇을 위해 탐욕을 버립니까?”

“열반을 위해서이다.”

“그러면 세존이시여, 무엇을 위해 열반을 얻는 것입니까?”

“라타야, 너의 질문은 너무 지나치다. 묻는 데 끝을 모르는구나. 라타야, 나의 가르침은 열반에 이르는 것이 목적이다. 우리들이 이 거룩한 수행을 하는 것은 모두 열반에 이르기 위한 것이며, 열반에서 끝나는 것이다.”

 - 南, 相應部經典3, p.297, 魔 -

 

열반은 ‘죽음’이라는 뜻으로도 사용한다. 그러나 이러한 의미로서는 붓다가 궁극의 목표로 제시한 열반의 본래 뜻은 결코 바르게 파악되지 않을 것이다.

 

무릇 열반이란 탐욕의 소멸, 노여움의 소멸, 어리석음의 소멸이니라.

- 南, 相應部經典4, p.389, 涅槃 -

 

붓다가 설한 열반이란 타오르는 불이 꺼지듯 갈애가 소멸된 심리 상태이며,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 소멸된 심리 상태이다. 열반은 인간 자체가 소멸되어 어딘가에 가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살아 있는 몸으로는 열반의 경지에 이르렀다 해도 그것은 단지 탐욕에 속박되지 않는 것일 뿐, 졸음이나 식욕 등 인간이 기본적인 욕구는 그대로 있기 때문에 완전한 열반이 아니라고 잘못 생각한다. 이것은 붓다가 설한 열반의 참뜻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다.

 

수학자 목건련이 물었다.

“세존이시여, 열반은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는데, 왜 거기에 이르는 사람도 있고, 이르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목건련아, 그대에게 왕사성으로 가는 길을 묻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대는 자세히 길을 일러 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무사히 왕사성에 이르고, 어떤 사람은 길을 잘못 들어 헤매기도 할 것이다. 그것은 왜 그런가?”

“세존이시여, 저는 길을 가르쳐 주었을 뿐입니다. 그것을 제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목건련아, 그대의 말대로 열반은 있고 거기에 이르는 길도 있다. 그러나 나의 제자 중에는 열반에 이르는 이도 있고, 이르지 못하는 이도 있다. 그것을 내가 어떻게 하겠는가? 나는 오직 길을 가르쳐 주는 스승일 뿐이다.

- 南, 中部經典3, p.347, 算數家目犍連經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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