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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13-삼세제불

불교/반야심경

by 빛살 2011. 7. 2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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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불통계게 (七佛通戒偈)

- 과거 일곱 부처님이 한 분도 빠짐없이 공통으로 금계(禁戒)의 근본으로 삼는 게송

 

            제악막작 중선봉행    諸惡莫作 衆善奉行

            자정기의 시제불교    自淨其意 是諸佛敎

 

           모든 나쁜 짓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받들어 행하며

           스스로 그 마음을 깨끗이 하라. 이것이 모든 부처님의 가르침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아미타불’은 무량광(無量光 : 헤아릴 수 없는 광명을 가진 것)의 뜻인 산스크리트 아미타바(Amitabha)와 무량수(無量壽 : 헤아릴 수 없는 수명을 가진 것)의 뜻인 산스크리트 아미타유스(Amitayus)의 음사(音寫)이다. 무량광(無量光)은 완전한 지혜(반야·보리)를 상징하고 무량수(無量壽)는 자비를 상징한다. 따라서 아미타불은 이 두 가지 덕성을 갖춘 부처라는 뜻이다. 아미타불(阿彌陀佛), 무량광불(無量光佛) 또는 무량수불(無量壽佛)은 서방 극락세계(西方極樂世界)에 머물며, 주로 정토교에서 숭앙하는 구제불(救濟佛)이다.

<무량수경(無量壽經, Sukhāvatῑ-vyūha-sūtra)>에 따르면, 아미타불은 원래 법장(法藏)이라는 비구승, 즉 법장보살이었는데, 48개의 큰 서원을 세우고 오랜 수행 끝에 서원을 모두 이룬 뒤 부처가 되어 서방 극락세계를 세워 다스리게 되었으며, 지금도 그곳에서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을 상징하는 색은 빨강, 상징하는 자세는 선정인(禪定印 dhyāna-mudrā), 상징하는 사물은 발우(鉢盂), 그가 타고 다니는 것은 공작, 배우자는 판다라(Pāṇḍarā), 성(姓)은 라가(Rāga), 그를 상징하는 요소는 물, 그를 상징하는 음절은 '바'(ba) 또는 '아'(āh), 그를 상징하는 온(skandha:존재를 구성하는 근본요소)은 상(saṇjnā:감각적 대상에 대한 지각), 그를 상징하는 방향은 서쪽, 그를 상징하는 감각은 미각, 그를 상징하는 감각기관은 혀, 인체에서 그가 머무는 장소는 입이다.

오늘날 정토(淨土)라고 하면 서방 극락(極樂 Sukhāvatῑ) 정토를 가리킬 만큼 일반인에게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서방정토에 태어나려면 열심히 아미타불을 염해야 한다는 것이 바로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namo-Amitāyus 또는 namo Amitābha) 염불신앙’이다. 나무(南無, Namo)는 ‘귀의(歸依)하다’라는 뜻이므로 ‘나무아미타불’은 곧 아미타불에게 귀의하여 서방정토에서 무량한 수명(不老不死)과 무량한 광명(富貴榮華)을 누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염불신앙은 복잡한 절차 없이 쉽게 염(念)하고 외울 수 있어 불교를 널리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에 따라 아미타불과 관련된 각종 존상(尊像)이 세워져 예배되는데, 미타삼존(彌陀三尊)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좌보처 관음보살(觀音菩薩), 우보처 대세지보살(勢至菩薩)이다.

 

 

 

아미타불의 48대원

 

과거에, 아미타불이 되기 이전인 법장보살 때에 처음 세운 원으로서, <불설무량수경>에 그 내용이 나온다. 이 중에서 18번 째 서원인 제18원은 서원 중의 서원으로 왕본원(王本願) 또는 그냥 본원(本願)이라고 불린다. 본원은 정토교의 핵심적인 교의를 이룬다.

 

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에 지옥과 아귀와 축생의 삼악도(惡道)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수명이 다한 뒤에 다시 삼악도에 떨어지는 일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몸에서 찬란한 금색 광명이 빛나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모양이 한결같이 훌륭하지 않고, 잘 나고 못 난 이가 따로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숙명통(宿命通)을 얻어 백천억 나유타 겁(劫)의 옛 일들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천안통(天眼通)을 얻어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세계를 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천이통(天耳通)을 얻어 백 억 나유타의 많은 부처님들의 설법을 듣고, 그 모두를 간직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타심통(他心通)을 얻어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국토에 있는 중생들의 마음을 알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신족통(神足通)을 얻어 순식간에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나라들을 지나가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든 번뇌를 여의는 누진통(漏盡 通)을 얻지 못하고 망상을 일으켜 자신에 집착하는 분별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만약, 성불하는 정정취(正定聚)에 머물지 못하고, 필경에 열반(涅槃)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광명이 한량이 있어서 백천억 나유타의 모든 불국토를 비출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 광명무량원(光明無量願)

1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저의 수명이 한정이 있어서 백천억 나유타 겁 동안만 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 수명무량원(壽命無量願)

1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성문(聲聞)들의 수효가 한량이 있어서, 삼천 대천세계의 성문과 연각(緣覺)들이 백천 겁 동안 세어서 그 수를 알 수 있는 정도라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중생들의 수명은 한량이 없으오리니, 다만 그들이 중생 제도의 서원에 따라 수명의 길고 짧음을 자재로 할 수는 있을지언정, 만약 그 수명에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좋지 않은 일은 물론이요, 나쁜 이름이라도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부처님들이 저의 이름(아미타불)을 찬양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1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신심과 환희심을 내어 제 이름(아미타불)을 다만 열 번만 불러도 제 나라에 태어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 염불왕생원(念佛往生願)

1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보리심(菩提心)을 일으켜 모든 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불국토에 태어나고자 원을 세울 제, 그들의 임종시에 제가 대중들과 함께 가서 그들을 마중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저의 불국토(극락세계)를 흠모하여 많은 선근공덕을 쌓고, 지성으로 저의 나라에 태어나고자 마음을 회향(回向)할 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모두 삽십이 대인상(三十二大人相)의 훌륭한 상호(相好:몸매)를 갖추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불국토의 보살들이 제 나라에 와서 태어난다면, 필경에 그들은 한 생(生)만 지나면 반드시 부처가 되는 일생보처(一生補處)의 자리에 이르게 되오리다. 다만 그들의 소원에 따라, 중생을 위하여 큰 서원을 세우고 선근공덕을 쌓아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또는 모든 불국토에 다니며 보살의 행을 닦아 시방세계의 여러 부처님을 공양하고, 또한 한량없는 중생을 교화하여 위없이 바르고 참다운 가르침을 세우고자 예사로운 순탄한 수행을 초월하여 짐짓, 보현보살의 공덕을 닦으려 하는 이들은 자재로 그 원행(願行)에 따를 것이오나, 다른 보살들이 일생보처에 이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신통력을 입고,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기 위하여 한참 동안에 헤아릴 수 없는 모든 불국토에 두루 이를 수가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모든 부처님에게 공양드리는 공덕을 세우려 할 제, 그들이 바라는 모든 공양하는 물건들을 마음대로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부처님의 일체지혜를 연설할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천상의 금강역사(金剛力士)인 나라연(那羅延)과 같은 견고한 몸을 얻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과 일체 만물은 정결하고 찬란하게 빛나며, 그 모양이 빼어나고 지극히 미묘함을 능히 칭량할 수 없으오리니, 만약 천안통을 얻은 이가 그 이름과 수효를 헤아릴 수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을 비롯하여 공덕이 적은 이들까지도, 그 나라의 보리수나무가 한없이 빛나고 그 높이가 사백만 리나 되는 것을 알아 보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2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스스로 경을 읽고 외우며 또한 남에게 설법하는 변재와 지혜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 보살들의 지혜와 변재가 한량이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불국토가 한없이 청정하여, 시방 일체의 무량무수한 모든 부처님 세계를 모두 낱낱이 비쳐봄이 마치 맑은 거울로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지상이나 허공에 있는 모든 궁전이나 누각이나 흐르는 물이나 꽃과 나무나, 나라 안에 있는 일체 만물은 모두 헤아릴 수 없는 보배와 백천 가지의 향으로 이루어지고, 그 장엄하고 기묘함이 인간계나 천상계에서는 비교할 수 없으며, 그 미묘한 향기가 시방세계에 두루 풍기면, 보살들은 그 향기를 맡고 모두 부처님의 행을 닦게 되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한량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불국토의 중생들로서, 저의 광명이 그들의 몸에 비치어 접촉한 이는 그 몸과 마음이 부드럽고 상냥하여 인간과 천상을 초월하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보살의 무생법인(無生法忍)과 깊은 지혜 공덕인 다라니 법문을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부처님 세계의 여인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환희심을 내어 보리심을 일으키고 여자의 몸을 싫어한 이가 목숨을 마친 후에 다시금 여인이 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수명이 다한 후에도 만약 청정한 수행을 할 수 없고, 필경에 성불하지 못한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 세계의 중생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땅에 엎드려 부처님을 예배하며 환희심과 신심을 내어 보살행을 닦을 제, 모든 천신(天神)과 인간들이 그들을 공경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의복을 얻고자 하면 생각하는 대로 바로 훌륭한 옷이 저절로 입혀지게 되는 것이, 마치 부처님이 찬탄하시는 가사가 자연히 비구들의 몸에 입혀지는 것과 같으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고 바느질이나 다듬이질이나 물들이거나 빨래할 필요가 있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39.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중생들이 누리는 상쾌한 즐거움이 일체 번뇌를 모두 여읜 비구와 같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0.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이 시방세계의 헤아릴 수 없는 청정한 불국토를 보고자 하면, 그 소원대로 보배나무에서 모두 낱낱이 비쳐 보는 것이 마치, 맑은 거울에 그 얼굴을 비쳐 보는 것과 같으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1.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여러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부처님이 될 때까지 육근(根)이 원만하여 불구자가 되는 일이 없으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2.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은 이는 모두 청정한 해탈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한 생각 동안에 헤아릴 수 없고 불가사의한 모든 부처님을 공양하고도 오히려 삼매를 잃지 않으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3.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도 수 명이 다한 후에 존귀한 집에 태어나지 않는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4.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 한없이 기뻐하며 보살행을 닦아서 모든 공덕을 갖추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5.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들으면, 그들은 모든 부처님을 두루 뵈올 수 있는 삼매를 얻을 것이며, 매양 이 삼매에 머물러 성불하기까지 언제나 불가사의한 일체 모든 부처님을 뵈올 수 있으오리니, 만일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6. 제가 부처가 될 적에, 그 나라의 보살들은 듣고자 하는 법문을 소원대로 자연히 들을 수 있으오리니, 만약 그렇지 않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7.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을 듣고나서 일체 공덕이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에 이를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48. 제가 부처가 될 적에, 다른 세계의 보살들이 제 이름(아미타불)만 듣고 바로, 설법을 듣고 깨닫는 음향인(音響忍)과 진리에 수순하는 유순인(柔順忍)과 나지도 죽지도 않는 도리를 깨닫는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성취하지 못하고, 모든 불법에서 물러나지 않는 불퇴전의 자리를 얻을 수 없다면, 저는 차라리 부처가 되지 않겠나이다.

 

 약사여래(藥師如來)

 

 

약사여래(Bhaisajyaguru)는 동방 유리광세계(東方琉璃光世界)의 교주로서 다른 말로 대의왕불(大醫王佛)이라고도 한다.

약사여래는 중생을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수명을 연장하고 재화를 소멸하며, 일체의 결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대원을 갖고 계시는 부처님이다. 수인은 약기인(藥器印)이라 하여 손에 약함을 들고 있는 모습을 취하고 있다. 약사전(유리광전, 만원보전)에는 약사여래와 좌우에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협시보살로 한 약사삼존불이 있고, 12지신상을 거느리고 있는데 12지신상은 약사여래의 분신으로 12대원에 따른 것이다. 무인의 모습으로 무기를 들고 있다.

 

아미타불이 사후(死後)신앙을 기본으로 하여 성립되었다면, 약사신앙은 관음신앙이나 지장신앙과 마찬가지로 현세의 이익을 도모한다고 할 수 있다. 약사불에 대한 소의경전으로 불설약사본원경(佛說藥師本願經)이 있다.

 

약사여래 12대 서원

 

1. 내가 내세에 깨달음을 성취하면 나의 광명을 밝게 해서 한량없는 세계를 비춰주고, 32상 80종호로 장엄하며 일체의 중생을 나와 동일하게 만들리라.(第一光明照曜願)

2. 나의 몸은 유리와 같으며, 빛이 일월보다 밝다. 이 빛으로 삶들이 어둠 속에서도 처소를 알고 사업하게 하리라.(第二身如琉璃願)

3. 한량없는 지혜로 일체의 중생을 섭수하고 모두가 만족하여 조금의 부족도 없게 하리라.(第三受用無盡願)

4. 외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보살도 속에 편안히 설 수 있게 하고, 성문도나 벽지불도를 수행하는 사람은 대승에 편안히 설 수 있게 하리라.(第四大乘安立願)

5. 일체의 중생들이 나의 가르침 속에서 청정행을 닦으면 모두가 3취정계를 구족하고 악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라.(第五三聚具足願)

6. 못 듣고, 못 보는 등 일체의 지체장애자나 각종 병에 시달리는 사람이 나의 명호를 들으면 정상적인 몸을 갖추게 되리라.(第六諸根具足願)

7. 어떤 중생이 병고에 시달리나 간호해 주거나 의지할 사람이 없어서 치료를 받을 수 없더라도 나의 명호를 들으면 일체의 병고를 여의고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리라.(第七衆患悉除願)

8. 어떤 여인이 여인만이 지니는 세속적인 고통을 싫어해서 여인의 몸을 바꾸고 싶어하면 대장부의 몸을 받고 마침내 위없는 깨달음을 성취하게 하리라.(第八轉女成男願)

9. 일체의 중생이 마구니의 촉수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며, 각종의 사견에 빠지면 정견에 서게 하고 점차 보살행의 방법을 보여주리라.(第九安立正見願)

10. 일체의 중생이 독재자의 악정과 무법의 사슬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며, 한없는 재난과 근심 걱정으로 받는 고통이 있으면 나의 복덕의 힘으로 일체의 고난에서 벗어나게 하리라.(第十繫縛解脫願)

11. 굶주림에 악업을 짓는 사람이 있으면 맛있는 음식으로 배부르게 한 뒤 진리의 음식으로 편안하게 하리라.(第十一餓饉安樂願)

12. 가난하여 헐벗은 중생은 그의 기호에 맞추어 의복과 장신구를 갖추어 주리라.(第十二衣服嚴具願)

 

비로자나불(毘盧遮那佛)

 

마하바이로차나(Mahāvairocana) 또는 노사나(盧舍那)라고도 한다. 모두 산스크리트로 두루 빛을 비추는 존재라는 의미다. 이 부처는 우주 만물의 창조신으로 인간을 비롯한 모든 우주 만물이 이 부처에서 탄생하였다. 석가모니가 입멸 후 이 부처의 화신으로 여겨졌다. 비로자나불은 노사나 이외에 범천, 인드라라고도 하나 이 명칭은 비로자나 부처님이 살고 있다는 연화장세계(蓮花臧世界)를 표현한 것일 뿐이다.

우주의 중심에 있는 이 연화장세계의 교주가 곧 삼천대천세계의 교주이며, 우주 전체를 총괄하는 부처가 되는 것이다. 이는 비로자나불이 허공과 같이 끝없이 크고 넓어 어느 곳에서나 두루 가득 차 있음을 상징적으로 나타낸 것이며, 우주에 충만한 진리를 인격화한 법신불이다.

각 종파마다 비로자나불을 부르는 명칭이 다른데 밀교에서는 대일여래(大日如來) 또는 보광여래(普光如來), 대승불교에서는 대광명편조여래(大光明遍照如來)로 한역된다. 비로자나불의 상징은 윤회(輪回)를 뜻하는 수레바퀴이며 불교의 상징이기도 하다.

경전상으로 볼 때 비로자나불은 <화엄경>의 교주이다.

비로자나불을 봉안하고 있는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또는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한다. 이러한 전각의 명칭이 붙여질 경우에도 보통 비로자나불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사나불(盧舍那佛)과 석가모니불을 봉안하게 된다.

비로전(毘盧殿) 또는 화엄전(華嚴殿)이라고 할 때에는 보통 비로자나불만을 봉안하는 것을 상례로 삼고 있다. 법당 안의 비로자나불상은 보통 "무(無)와 유(有), 공(空)과 물질(色), 법(法)과 비법(物)이 둘이 아닌 하나" 라는 뜻으로 한 손의 검지를 세워 다른 손으로 감싸 쥐는 모양인 지권인(智拳印)을 하고 결가부좌한 자세로 앉아 있다. 또 이 비로자나불상 뒤에는 비로자나 후불탱화가 봉안되는데, 이곳에는 보통 화엄경의 설법 장면이 많이 묘사된다.

 

 

삼신불(三身佛)

 

삼신불은 대승경론의 대표적인 불신관(佛身觀)으로 법신불(法身佛), 보신불(報身佛), 화신불(化身佛)로 구분한다.

법신불(法身佛)은 법, 깨달음의 세계, 진리를 몸으로 삼는 부처님이다. 영원히 변하지 않는 만유의 본체를 형상화한 부처님으로 진리를 상징하기 때문에 빛깔도 없고 형체도 없다. 오고 가는 것도 없는 진리 그대로의 모습이다. 법신불은 이 세상 어느 곳이든지 구석구석 안 계신 곳이 없다. 청정무구(淸淨無垢) 그 자체이므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淸淨法身毘盧遮那佛)’이라고도 한다.

보신불(報身佛)은 깨달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수행한 공덕으로 나타난 부처님으로 복과 덕이 가득해 이 세상의 불쌍한 사람들을 구제하는 부처님이다. 오랜 수행으로 얻어진 복덕을 구족하신 원만한 부처님이라는 뜻으로 ‘원만보신 노사나불(圓滿報身盧舍那佛)’이라고 한다.

보신(報身)에는 자수용신(自受用身)과 타수용신(他受用身)이 있다. 자수용신은 수행을 통하여 얻어진 불과(佛果)와 내적 체험에 의해 스스로 증득한 자내증(自內證)의 법문을 스스로 수용하고 즐기는 불신으로 ‘노사나불’을 말하고, 타수용신은 이 깨침의 보과(報果)와 뛰어난 법문을 다른 사람에게 수용시키기 위해 지도하고 교화하는 불신(佛身)을 말한다. 타수용신의 부처님으로는 아미타불과 약사여래가 있다.

화신불(化身佛)은 다른 말로 응신불(應身佛) 또는 응화신(應化身)이라고도 한다.

법신불이나 보신불을 볼 수 없는 모든 중생들에게 깨달음의 길을 가르쳐주기 위해 이 세상에 직접 그 모습을 나타낸 부처님이다.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많은 사람들을 밝은 길로 이끌어 주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석가모니 부처님이 화신불을 대표한다. 교화하고자 하는 수 많은 각각의 중생의 모습으로 나타나신다고 하여 ‘천백억화신 석가모니불(千百億化身 釋迦牟尼佛)’이라고 한다.

삼신불은 부처님을 그 본질(體)과 현상(相)과 기능(用)을 주로 표현한 것으로 세 부처님으로 표현되지만 실은 하나의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다.

삼신불을 모시는 전각을 대적광전(大寂光殿), 대광명전(大光明殿)이라고 한다. 비로자나불을 가운데 모시고 왼편에 노사나불(또는 아미타불), 바른편에 석가모니불을 모신다.

 

 

미륵불(彌勒佛)

 ‘미륵(Maitreya)'이라는 말은 원래 ’친우(mitra)‘라는 말에서 파생된 것인데, ’마이트리아(Meitreya)'는 자비라는 뜻을 포함하고 있으므로 한자 문화권에서는 미륵보살을 자씨보살(慈氏菩薩)이라고 한다. 관세음보살을 대비보살(大悲菩薩)이라고 부르는 것과 좋은 대조를 이룬다.

‘미륵하생경’에 의하면, 미륵보살은 원래 인도 ‘바라나시국’에 있는 한 ‘바라문’ 집안에 태어난 귀공자인데 석가모니의 교화를 받으면서 수도하다가, 모든 행과 도를 원만히 닦아서 미래에 성불하리라는 수기(授記, 장차 부처가 된다는 보장을 받음)를 받았다. 그 뒤 도솔천으로 올라가 하늘나라 사람들을 위해 설법을 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다가 석가모니불이 입멸한 지 56억 7천만 년 뒤 인간의 수명이 점점 늘어나 8만 세가 되는 때에 이 사바 세계에 다시 내려와 화림원(華林園)의 용화수(龍華樹) 밑에서 성불(成佛)하고, 3회의 법회를 열어 미처 제도받지 못한 사람들 272억 명을 교화한다고 한다. 우리가 많이 보는 미륵반가사유상(彌勒半跏思惟像)은 이와 같이 도솔천에 있는 미륵보살이 다시 사바세계에 오시기까지 긴  기간 동안 중생 구제를 위한 자비심을 품고, 먼 미래를 생각하며 명상에 잠기는 자세를 잘 묘사한 불상이다.

그러나 미륵보살을 믿는 사람들은 너무나 멀고 까마득한 후세에 오실 미륵불을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서, 지금 미륵 보살이 머물고 있는 도솔천에 자기가 태어나서 미륵보살을 빨리 만나는 원을 세우기도 하고(上生), 또는 미륵보살이 약속기간보다 더 빨리 이 사바세계에 오시기를 기원하는(下生) 신행법이 생기게 되었다.

미래불인 미륵불이 용화세계에서 중생을 교화하는 것을 상징하는 뜻으로, 미륵불을 안치한 전각의 이름을 ‘용화전’이라고도 하며 때로는 장륙존자(丈六尊者)를 모신 전각이라는 뜻에서 ‘장륙전’이라고 하기도 한다.

이 전각 안에는 현재 도솔천에서 설법 중인 미륵보살상을 봉안하는 수도 있고, 내세에서 성불하여 중생을 교화하는 미륵불상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미륵불을 봉안하는 경우가 많다. 이때 미륵불은 석가모니불처럼 항마촉지인을 취한 경우가 많고 입상을 봉안하는 경우도 있다. 후불탱화는 미륵불이 용화수 아래에서 성불한 뒤 3회에 걸쳐 설법하여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내용이 그려진 ‘용화회상도(龍華會上圖)’가 봉안되어 있다.

미륵전을 주불전으로 삼는 절은 대개 법상종의 맥을 잇는 곳으로 대표적인 불전은 전라북도 김제의 금산사 미륵전(국보 제62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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