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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2. 11. 13. 2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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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상징/ 카를 G. 융 외, 이윤기/ 열린책들/2022.03.30.

 

분석 심리학의 이론을 체계화한 융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쓴 분석 심리학 개설서이다.

두껍지만 사진도 많고 쉽게 설명해서 읽기에 그다지 어려움이 없었다.

학자들답게 논조도 신중하다.

 

<제1 무의식에 대한 접근> 카를 구스파프 융

꿈은 무의식이 의식에 보내는 상징이다.

https://blog.naver.com/dlpul1010/222432296709(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na)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alaya-vijnana) 불교에서는 우리 인간의 인식활동을 안(眼) ‧ 이(耳) ‧ 비(鼻) ...

blog.naver.com

 

꿈을 다루는 데는 두 가지 근본적인 윈칙이 있다. 첫째는 꿈을 하나의 사실로 다루어야 하며 꿈이 어떤 식으로든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 이외에는 어떤 전제도 사전에 상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꿈이라는 것이 무의식의 고유한 표현이라는 점이다.(40)

 

무의식에서는 먼 과거의 기억뿐만 아니라, 전적으로 새로운 생각과 창조적인 관념(한 번도 의식화되어 본 적이 없는 생각과 관념)도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50)- 무의식의 상태: 색즉시공 공즉시색, 공의 상태(끊임없는 연기의 작용). 선험적, 선천적, 본능(리비도)

꿈의 일반적인 기능은 꿈 소재를 산출함으로써 심적 평형을 회복시키는 데 있다. 꿈은 이로써 섬세한 방법으로 심리적인 균형을 이루게 한다.(66)

정신적 안정을 위해, 나아가서는 생리적 건강을 위해 의식과 무의식은 총체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하고 서로 평행을 이루며 작용해야 한다. 만일 이 양자가 서로 분리되거나 <분열>되면 심리적 장애가 오게 된다. 이런 점에서 꿈 상징은 인간 마음의 본능적인 부분이 합리적인 부분에 보내는 중요한 메시지의 전달 부호인데, 이것을 해석하면 빈곤한 의식을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잊었던 본능의 언어를 다소 소생시킬 수 있다.(70)

 

개인이야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그 개인에서 분리되어 인류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향하면 향할수록 우리가 오류에 빠질 가능성은 그만큼 높아진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일을 바르게 조망하기 위해서는 한 인간의 현재뿐만 아니라 그의 과거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신화나 상징의 이해가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이다.(81)

 

건강한 사회, 건전한 사회에서는 일반 대중의 의견이 서로 다른 것이 정상이다. 그 까닭은, 만장일치라는 것은 인간의 본능적인 성질의 범위 밖에서는 비교적 드문 것이기 때문이다. (82)

 

나는 이 <고태의 잔재><원형原形archetype>, 혹은 <원초적 심상>이라고 부르고 있다.---원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의 모티프를 어떤 표상으로 형성시키는 경향이다. 그 표상은 기본적인 패턴을 잃지 않으면서 세부적으로는 다양하게 변한다. (99)

우리는 원형의 기원을 알지 못한다. 그런데도 이 원형은 이 세상 어디에서나, 언제나 되풀이해서 나타난다.(100~101)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격언은 현대인의 미신이다./ 그러나 이 신조를 유지하느라고 현대인은 內省을 돌보지 못한다는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고 있다. 현대인은 합리적으로 움직이고 능률적으로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엄청난 어떤 <>에 얽매여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다.(121)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악덕과 어두운 그림자(우리 본성의 그늘진 측면)를 인식하는 일이다. 그러니까 자기 본성의 그늘진 측면을 인식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의 윤리적, 정신적 감염에 대한 면역이 가능한 것이다.(125)

 

꿈은 정상적인 자연현상이다. 따라서 그것이 자연현상 그 자체 이외의 어떤 의미를 가질 수는 없다.  우리가 꿈 때문에 혼란에 빠지는 것은 꿈의 내용이 상징적이고, 상징이라는 것은 하나 이상의 의미를 지니기 때문이다. 상징은 우리가 의식을 통해 파악하는 것과는 전혀 반대되는 방향을 제시하기도 한다. 바로 이 때문에 상징은 무의식적인 것, 혹은 전적으로 의식적이지는 않는 것과 관련되어 있다.(132)

 

원형이라는 것은 생명 그 자체의 조각들(정동이라는 교량을 통해 살아 있는 개인과 불가분으로 연결돼 있는 이미지들)이다. 이 때문에 어떤 원형도 우리가 임의로(혹은 보편적으로) 해석할 수는 없다. 원형은 원형과 관련된 개인의 전체적 삶의 문맥 안에서만 해석되어야 하는 것이다.(144)

 

결국 꿈이 상징을 산출하는 것은 인간의 마음의 바탕 자리를 <진보된>, 혹은 <분화된> 의식으로 끌어내기 위해서이다. (145)

 

인간의 본질은 의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마음에 있다.(153) 

무의식에 관해 우리 인류가 실제로 알게 된 바에 따르면 그것은 엄연한 하나의 자연현상이고, 자연 그 자체와 마찬가지로 <가치 중립적>이다. 무의식은 人性의 모든 측면 빛과 어둠, 아름다움과 추함, 선과 악, 심원함과 어리석음 을 두루 포함하고 있다.(155)

<제2 고대 신화와 현대인> 조지프 L. 헨더슨

오늘날의 정신 질환자의 꿈속에 나타나는 내용과 고대 신화는 대단히 유사한 측면이 있는데, 이 측면은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가 아닌 까닭은, 현대인의 무의식은 아직도 원시인들의 신앙이나 제의에 나타나는 상징 형성 능력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기 때문이다.(161)

 

이것은 분석 심리학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맡는 <그림자> 개념이다. 즉 의식 속의 어두운 측면이다. 융 박사는, 개인의 의식적인 마음이 던지는 이 그림자를 개인이 받아들일 수 없어서 은닉하고 억압했던 불유쾌한 부분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178)

 

억압과 자유에는 만나는 지점이 있는데, 우리는 그 만나는 지점을 수많은 입문 의례에서 볼 수 있었다. 이 입문 의례는 개인에게도 집단에게도, 내부의 상반되는 힘을 결합시키고 그 삶에 균형을 잡아주는 일을 가능하게 한다.(238)

 

<제3부 개성화 과정> 마리루이제 폰 프란츠

실제의 <개성화 과정>(자기의 내적인 중심, 혹은 자기 마음의 중핵, 즉 자기와의 의식적인 대화)은 인격이 상처를 입고 그것을 고통스러워하는 데서 시작된다.(254)

-자기(self), 우리 모두가 주인공이다. 우주적 인간. 一切衆生 悉(皆)有佛性

 

자기 자신의 무의식적인 경향을 다른 사람에게서 발견할 때, 우리는 그것을 <투사>라고 부른다. 모든 나라의 정치적 선동은 작은 무리나 개인들 사이의 쑥덕공론과 마찬가지로 온통 이런 투사 행위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종류의 투사는 다른 사람에 대한 우리의 판단을 흐리게 하고 객관성을 무너뜨림으로써 진정한 인간관계의 모든 가능성을 저해한다.(265)

무의식의 발견은 그 영향력이 미치는 범위에 있어 현대의 가장 괄목할 만한 대발견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의식의 실체를 인정한다는 것은 곧 가감 없는 솔직한 자기반성과 삶의 전면적인 재편성의 필요성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무의식의 존재를 인정하기보다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과 조금도 다를 바 없이 살고 있다. 하기야 무의식을 진지하게 다루고 무의식이 야기하는 문제와 맞서자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271)

아니마는 남성의 마음속에 있는 여성적 심리 경향이 인격화한 것이다. 즉 막연한 느낌이나 기분, 예견적인 육감, 비합리적인 것에 대한 감수성, 개인적인 사랑의 능력, 자연에 대한 감정, 그리고 (마지막이지만 중요한) 무의식 등이 바로 이러한 심리 경향이다.(273~274)

<아니무스>는 여성의 무의식이 인격화한 남성상이다. 이 아니무스는 남성의 무의식이 인격화한 여성상인 <아니마>가 그랬듯이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지닌다. 그러나 아니무스가 에로틱한 공상이나 기분의 형태로 나타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오히려 이 아니무스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속에 숨은 <거룩한 신념>이라는 모습을 취하는 경향이 있다.(290)

 

<정신><물질>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융 박사는 <동시성同時性synchronicity>이라는 새로운 개념을 내놓았다. 이 개념은 인과적으로는 무관한 내적인 것과 외적인 것의 <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를 뜻한다. 여기에서 <의미 있는>이라는 말이 특히 강조되고 있다.(322)

<동시성> 개념을 확립함으로써 융은 마음과 물질의 내적 관계를 더 깊이 꿰뚫어 볼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323)

 

자기라고 하는 생생하게 살아 있는 현실에 날마다 주의를 기울이는 것은 동시에 두 차원에서 사는 것, 동시에 두 세계를 사는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현실에 주의를 기울이는 사람은, 전과 다름없이 외부적인 임무를 다하면서 <자기>가 스스로를 나타내기 위해 꿈과 외부적인 사건에서 양면적으로 사용하는 암시나 신호에 주의를 기울인다.(325)

 

<제4부 시각 예술에 나타난 상징성> 아닐라 야페

폰 프란츠 박사는 원(혹은 구체)을 <자기>의 상징으로 설명한다. 원은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포괄하면서 다각적이고 다면적인 마음의 전체성을 표현한다. 이 원의 상징은 원시인의 태양숭배나 현대 종교, 혹은 신화나 꿈, 티베트 승려가 그린 만다라나 심지어는 도시 계획도에도 나타나고, 옛날의 천문학자가 생각했던 球形 개념에서도 발견된다. 말하자면 원은 항상 생명이 지닌 唯一至上的 측면, 즉 생명의 궁극적인 전체성을 나타내어 왔던 것이다.(370)- 圓伊()三點

 

죽은 것은 모두 떨면서 흐느끼고 있다. 의 대상이 되는 별, , 나무, 꽃뿐만 아니라 길 위의 물웅덩이 위에서 빛나고 있는 하얀 바지 단추까지도…… 모든 사물에는 혼이 깃들어 있다. 이 혼은 말보다는 침묵을 사랑한다-칸딘스키.(393), 이 혼의 말들을 우리가  듣고 있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

<악한 것 역시 승자나 태자로서의 적이 아니라 전체 속에서 함께 작용하는 하나의 힘>(421)

 

<제5부 개인 분석에 나타난 상징> 욜란데 야코비

<동시성-의미 있는 우연의 일치, 비인과적인 연결 원리>이란, 우리 마음속에는 마음의 상태와 현상계의 일을 연결하는 <내부의 무의식적 지식>이 존재한다는 가설에서 출발한다. 바로 이러한 <내부의 무의식적 지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겉으로 보기에는 <우발적>인 것, <우연의 일치>인 것 같은 사건이 실제로는 상당히 중요한 심리적인 의미를 지닐 수 있으며, 그 의미는 종종 외적 事象과 일치되는 꿈을 통해 상징적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461)

 

<결론>

원형(정신의 동력이 되는 핵, 인간의 감정적 정신적 행동의 패턴)이 새로운 관념을 환기시킬 때는 창조적일 수 있는 것이고, 이러한 관념이 의식의 편견을 강화함으로써 새로운 탐색을 저지할 경우에는 파괴적일 수 있다.(485)

 

보어의 상보성 개념은 융 학파 심리학자들의 관심을 끈다. 그 까닭은 융 박사 자신이 의식적인 마음과 무의식적인 마음의 관계를 상호 대립하는 상보적인 한 켤레의 마음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무의식에서 의식으로 떠오르는 모든 내용은 관찰자의 의식 속으로 부분적으로 통합되는 과정을 통해 그 기본적인 성질이 바뀐다. 그래서 꿈의 내용도 반의식적 이 되는 것이다. 하나하나의 꿈 해석이 야기하는 관찰자의 의식의 확대는 무의식에 엄청난 반향과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무의식이라고 하는 것은 (미시물리학의 소립자처럼) 역설적 개념에 의해서만 묘사될 수 있는 것이다. 우리가 무의식 <자체>의 본질을 알 수 없는 것은, 물질에서 소립자 <자체>의 본질을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491)

 

융 박사는 자신이 무의식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기물 구조와 어떤 관계가 있다고 확신했다. 융 박사는 현실에 대한 일원론적 개념을 <우누스 문두스unus mundus>라고 부른다. 그가 말하는 <우누스 문두스>는 물질과 마음이 분화되지 않은, 따라서 따로따로 나타나지 않는 <하나의 세계>라는 뜻이다. 그는 원형이 동시 발생적 현상 가운데 나타날 때는 <유심리적 측면>, 즉 순수하게 심리적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물질적이기도 한 측면을 보인다는 사실을 지적함으로써(동시성적 현상이란 결국 내적 심리적 사실과 외적 사실의 의미 배열에 다름 아니므로) 이 같은 일원론적 견해를 가능하게 했다.(493)-인드라망(인드라의 구슬/화엄경, 박노해), 양자역학 우주 전체적 차원에서 보면 '숨겨진 질서'가 존재한다.(초끈이론 등). 동시성 현상도 숨겨진 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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