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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마음닦기/붓 가는 대로

by 빛살 2007. 9. 5.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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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 공용화론’에 대해
                                                                                                          
1. 논쟁의 전개
  1998년 조선일보사와 소설가 복거일이 ‘영어 공용화론’을 주장한 이후, 이 문제에 대해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급기야 99년 11월 13일 공영 방송인 교육방송에서 ‘영어 공용화’를 주제로 한 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했고, 뒤이어 16일에는 한 민영 방송에서도 같은 주제의 토론 프로그램을 방영했다. 잠시 논란이 수그러지는 듯하더니 영어 공용화론을 처음 주장했던 복거일이 2000년 3월호 ‘신동아’지에 다시 한 번 영어 공용화론을 들고 나와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도대체 세계어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이기에 이런 주장이 제기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영어의 위상부터 살펴보았다.

2. 영어가 세계사의 흐름을 바꾼다.
  현재 영어는 75개 국가에서 모국어 또는 공용어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인구는 3억8천만 명, 공용어로 쓰는 인구도 3억7천만여 명에 이른다. 외국어로 영어를 배우는 인구는 7억5천만 명 수준이다. 세계 인구의 4분의 1인 12억 명, 많게는 16억 명이 의사소통이 가능한 수준까지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는 모국어•공용어•외국어 사용자 세 측면에서 모두 세계어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고 그 비중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영어는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배적인 언어다. 전 세계 우편물의 4분의 3이 영어로 쓰여 있고, 컴퓨터에 저장된 정보의 80%가 영어로 되어 있다. 인터넷 메일은 90% 가까이 영어로 오고 간다. 영어 확산은 인류가 오래 전 신화시대에 꿈꾸었던 언어 공동체에 바탕을 둔 바벨탑의 건설을 떠올리게 할 지경이다. 심지어 먼 미래에는 결국 영어와 중국어, 스페인어와 아랍어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89년 노벨 문학상 수상작가 카밀로 호세 셀라는 탄식하기도 한다.

  17세기 섬나라 영국에서 고작 500만 명이 쓰던 소수 민족어였던 영어가 세계어로 성장하게 된 것은 16세기에 시작된 식민지 경영이 그 밑바탕을 이루었다. 18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의 발달이 이 분야의 새 단어들을 영어사전에 보태며 영어를 산업사회•기술•지식 분야에서 주요한 언어로 자리잡게 했다. 20세기 들어 미국이 세계 정치 주도국으로 부상하면서 영어는 가장 지배적인 언어로 등장했으며, 그 지위는 더욱 견고해지고 있다. 세계 경제는 달러를 기축통화로 삼았고 달러의 언어가 영어인 까닭에 영어는 국제 경제활동의 공통어로 자리 매김 됐다.

  영어의 미래에 대한 예측은 엇갈리는 측면도 있지만 영어에 더 이상 경쟁어는 없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영어는 영국인과 미국인의 언어를 넘어선 세계인의 소통수단으로 자라났고, 지구촌을 무대로 한 지식인, 경제인 등 글로벌 엘리트(global elite)들은 영어를 쓰지 않고는 불가능한 자신들의 고부가가치 전문활동을 가속시켜나갈 것이다. 이미 자생적인 생존력을 갖춘 영어는 미국의 경제•정치적 영향력이 쇠퇴하더라도 세계적 전문가 집단의 공용어로 독자적 발전을 약속 받고 있는 것이다.

  우리 주위를 둘러보아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모국어인 한글을 채 깨치기도 전에 ‘Eddie’니 ‘Tom’이니 하는 이름표를 달고 원어민 교사가 지도하는 영어 학원에서 유치원 과정을 보내는 아이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영어 수업을 하고 대학교에서는 영어 성적만으로 신입생을 뽑기도 한다. 나아가 졸업할 때 영어 성적이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면 졸업을 시키지 않는 대학들도 늘어가고 있다. 어떤 대기업에서는 사내에서 영어만을 쓰도록 강제하고, 지방의 모 초등학교에서도 이를 본떠 특정 구역에서는 영어만을 사용하도록 하고 있다. 어려서는 영어를 하지 않으면 뭔가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다는 불안감에 사로잡히고, 성장하여서는 생존을 위해 영어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렇게 영어에 쏟는 정성과 비용을 생각해 볼 때 일면 ‘영어 공용화론’은 타당한 것 같다.

3. 복거일의 주장.
  ‘영어 공용화론’은 1998년에 간행 된 복거일의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문학과지성사)라는 책에서 비롯되었다. 복거일은 서울 상대를 나와 소설과 시도 쓰고, 사회 경제 문제에도 관심이 많아 논쟁적인 평론집도 많이 냈다.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도 평론집 성격의 책으로 안 읽어 본 사람들은 신문 칼럼 모음집을 연상하면 될 것이다. 민족주의에 대한 비판과 영어 공용어론을 핵심 내용으로 하는 이 책에서 우리가 다루고자 하는 ‘영어 공용화론’은 ‘2. 지구 제국 시대의 민족어’에 들어 있다. 말 그대로 칼럼 식으로 써 내려간 글이다.

  이후 대략 2년이 지난 2000년 3월호 ‘신동아’라는 월간 잡지에 좀더 강고한 논리로 무장하고 다시 한 번 영어 공용화론을 들고 나왔다. 복거일은 영어 공용에 관한 논의를 위해서는 국제어가 등장하는 까닭과 과정, 국제어에서 영어의 위치, 민족어들의 앞날과 같은 주제들을 먼저 살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국제어가 나타나는 것은 근본적으로 언어가 다른 정보전달 수단들과 마찬가지로 망(network)을 이룬다는 사실에서 비롯한다. 사용자가 한 사람일 때 정보전달 수단들은 별로 쓸모가 없다. 전보든, 전화든, 팩스든, 사용자가 적어도 둘은 돼야 비로소 쓸모가 생긴다.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물론 정보 전달 수단의 가치는 커진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그것을 이용하게 되면 망이 구성돼 사회의 신경조직 노릇을 하게 된다. 일반적으로 어떤 정보 전달 수단의 가치는 그것이 망을 이룰 때에 비로소 제대로 드러난다. 망을 이룬 정보전달 수단이 지닌 가치는 무척 빠르게 커진다. ‘메트카프의 법칙(Metcalfe's low)’에 따르면, 사용자에 대한 효용으로 정의되는 망의 가치는 대체로 사용자 수의 제곱에 비례한다.

  그러나 세상에는 여러 언어가 동시에 존재하므로 실제 상황은 좀 복잡하다. 단 하나의 언어가 표준인 국제어로 쓰이는 대신에 여러 언어들이 공존하므로, 이 세상에는 하나의 커다란 언어망 대신에 작은 언어망이 여러 개 공존한다. 자연히 메트카프의 법칙이 가리키는 망의 이점이 제대로 실현되지 못한다. 공존하는 여러 언어 가운데 어떤 언어가 표준으로 선택되는가? 이 문제를 살펴 볼 때에도 ‘메트카프의 법칙’은 좋은 지침이 된다. 어떤 망의 가치는 그것을 쓰는 사람들 수의 제곱에 비례하므로, 다른 언어보다 쓰는 사람이 많은 언어는 점점 더 우세해진다. 그리고 우세한 언어를 쓰는 것이 유리하므로, 점점 더 많은 사람이 그것을 쓰게 돼 호순환이 나온다. 어떤 이유로 한 번 표준으로 선택된 것은 다른 것들에 비해서 대단히 유리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어 경제학자들이 ‘망 경제(network economy)’라고 부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따라서 이미 표준의 자리를 차지한 것은, 가장 나은 것은 아니더라도 번창하게 마련이다. 그 예로 고전적으로는 철도의 궤간(軌間), 타자기 자판의 ‘QWERTY 체계’, 마이크로소프트의 전산기 운영 체계인 DOS와 Windows를 들 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영어는 국제어의 자리를 차지했고 이제는 망 경제의 이익을 제대로 누리고 있다. 물론 그런 이익은 앞으로 점점 커질 것이고, 영어는 국제어로서 자리를 더욱 굳힐 것이다. 특히 큰 뜻을 지닌 사실은, 지금 거의 모든 지적 산물이 영어로 쓰이거나 번역된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영어로 번역되기 전에는 어떤 저작도 중요하다고 여겨지지 않는다. 근년에 인터넷이 중요한 통신 경로로 자리잡으면서 이런 추세는 더욱 심해졌다. 현재 세계의 전산기들에 저장된 정보의 80%는 영어로 수록돼 있고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정보의 70%내지 80%가 영어로 표현돼 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인터넷을 통해 전파되는 정보들 가운데 과학적 주제들은 거의 모두 영어로 표현돼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사회에서 과학과 기술의 중요성을 생각하면, 이 사실은 영어의 앞날을 예고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영어의 득세로 다른 민족어들과 그것을 쓰는 사회들은 어떤 영향을 받을까?
단기적으로는 민족어들이 영어에 점점 깊이 침윤될 것이다. 지금 영어의 침윤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민족어는 없다. 영어의 득세와 침윤에 가장 거세게 반발하고 국가적 대응책을 강구해온 프랑스조차 자신의 민족어를 지키는 데에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하고 거의 포기한 상태다. 중기적으로는 거의 모든 사회들에서 영어와 민족어가 공존해서 시민들이 둘을 함께 쓰는 상태(bilingual)가 될 것이다. 인도, 필리핀, 싱가포르와 같은 나라들이 이미 그런 상태다. 궁극적으로는 영어가 단 하나의 국제어로서 거의 모든 부문에서 쓰일 것이다. 영어의 그런 융성은 당연히 민족어의 소멸을 뜻하니, 민족어들은 점점 활력을 잃고 일상 생활에서 내몰릴 것이다. 그래서 많은 민족어가 사라질 것이다. 현존하는 3000내지 6000개 가량의 언어 가운데 100년 안에 절반이 소멸하리라고 추산하는 이도 있다. 또 다른 추산에 따르면, 적어도 300년 동안 생존할 가능성이 있는 언어들은 스페인어, 중국어, 영어뿐이다. 일본어, 독일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와 같은 중요한 언어들도 그 뒤로는 지역적 방언으로 명맥을 유지할 것이다.

  여기서 지적할 것은 이런 상태가 민족어의 완전한 소멸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쉽게 사라지기엔 민족어가 담고 있는 민족의 역사와 지적 자산이 너무 많다. 그래서 민족어들은 대중의 외면을 받지만 전문가들에 의해 쓰이고 보존되고 이어질 것이다. 그런 상태에선 민족어들은 거의 진화하지 않고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박물관 언어’로 남을 것이다.

  이 불행한 소식에 합리적으로 대응하는 단 하나의 길은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는 것이다. 다른 길은 없다. 그리고 실제로 사람들은 서서히 국제어를 모국어로 삼을 것이다. 국제어를 첫 언어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이 안게 되는 불이익이 워낙 큰지라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못한 사람들은 비록 자신들은 너무 늦었지만, 자식들에겐 국제어를 모국어로 배울 기회를 주려고 애쓸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무엇이 진정한 대책이 될 수 있을까? 앞으로 몇 세기 안에 하나의 국제어가 등장하고 다른 민족어들은 모두 소멸하리라는 전망, 실질적으로 국제어가 된 영어가 지금 누리는 거대한 망 경제, 영어를 잘 쓰지 못해서 우리 시민과 사회가 보는 엄청난 손해, 사람의 뇌에서 첫 언어를 배우는 부분과 차후 언어를 배우는 부분이 다르므로 국제어를 모국어로 갖지 않은 사람들은 아무리 열심히 배워도 국제어를 모국어처럼 능숙하게 쓸 수 없다는 사실, 그리고 한 사람의 모국어는 그가 태어날 때 본인의 의사와는 관계없이 결정된다는 사정 따위를 고려하면, 우리가 고를 수 있는 단 하나의 대책은 우리의 모국어인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우리말로 삼는 것이다. 다른 조치들은 아무리 그럴듯해 보여도 충분한 대책이 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고를 수 있는 가장 현실적 방안은 영어를 우리말과 함께 공용어로 삼는 것이다. 이 방안은 국제어를 유일한 공용어로 삼는 일의 첫 단계이면서도, 한국어 습득에 큰 투자를 했고 한국어에 큰 애착을 지닌 우리 시민의 심리적 저항을 크게 받지 않을 것이다. 지금 ‘영어 공용화’라는 이름 아래 논의되는 방안은 바로 이것을 뜻한다. 비록 사정이 그렇게 어렵지만 정부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국론의 분열이 없이 어차피 하게 될 일들을 먼저 하는 것이다. 그런 일들 가운데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것은 우리 사회를 영어에 호의적인 사회로 만드는 일이다. 외국인들의 투자와 관광이 우리 경제에 긴요하므로 지금 우리는 그들이 쉽게 우리 사회에 들어와 활동할 수 있도록 하려고 애를 쓴다. 그런 일들 가운데 먼저 해야 하고 비교적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정부의 법령, 문서, 양식과 같은 것들을 우리말과 영어로 병기해서 외국인들이 이내 이해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영어를 공용어로 삼기 위한 첫 준비작업이기도 하다. 아울러 여행 안내서에서 식당의 식단에 이르기까지 외국인들이 찾을 만한 정보들을 우리말과 영어를 병기해서 외국인들이 불편을 느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위에서 열거한 설득력이 작지 않은 논거들에도 불구하고 영어 공용에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그래서 우리 후손들에게 모국어를 고를 권리를 주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필자는 간단한 사고 실험 하나를 해 볼 것을 요청한다.

  “만일 막 태어난 당신의 자식에게 영어와 한국어 가운데 하나를 모국어로 고를 기회가 주어진다면 당신은 자식에게 어느 것을 권하겠는가? 한 쪽엔 영어를 자연스럽게 써서 세상의 모든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고, 일상과 직장에서 아무런 불이익을 보지 않고, 영어로 구체화된 많은 문화적 유산들과 첨단 정보들을 쉽게 얻는 삶이 있다. 다른 쪽에는 조상들이 써온 조선어를 계속 쓰는 즐거움을 누리지만, 영어를 쓰는 것이 힘들고 괴로워서 다른 나라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을 기피하고, 평생 갖가지 불이익을 당하고, 영어로 구체화된 문화적 유산들을 거의 향유하지 못하고, 분초를 다투는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얻지 못하고 뒤늦게 오류가 많은 번역으로 얻어서, 그것도 이용 가능한 정보들 가운데 몇 십만 분의 일이나 몇 백만 분의 일만 얻어서, 세상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는 삶이 있다. 당신은 과연 어떤 삶을 자식에게 권하겠는가? 아예 그에게서 선택권을 앗아가겠는가? 당신의 자식은 아직 조선어를 배우고 쓰지 않아서 한국어에 대한 물질적, 심리적 투자가 없고, 자연히 한국어에 별다른 애착을 지니지 않은 터에?”

  이상 최근 복거일이 주장한 논지를 살펴보았다. 논지는 98년에 이루어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수준을 넘지 못했다. 몇 개의 논거가 추가되었을 뿐, 똑 같은 내용이 반복되는 것도 많았다. 워낙 큰 주제라 자신의 주장을 발전시키지 못하고 논리를 순환시킨다는 인상이 짙었다. 하지만 이렇게 장황하게 논지를 늘어놓은 것은 감정이 앞선 비판을 막기 위해서다. 최소한 상대방의 주장이 무엇인지는 알고 비판해야 되지 않겠는가?

4. 영어 공용화론 비판
  자유주의자 복거일은 자유무역을 옹호하며 지금 세계질서 속에서 유엔을 비롯한 초국가적 기구가 ‘세계제국’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 줄 것으로 믿는다. 그는 민족주의를 비판하면서 세계시민주의를 강조한다. 하지만 복거일의 주장에 대해 반론을 제기했던 한영우 교수(국사학)는 “적자 생존을 신봉하는 경쟁 원리가 제국주의자를 낳았다.”면서 “문화 영역에서도 강자의 시장 원리가 적용될 때 공동체를 파괴할 수 있다”며 사회의 정체성 붕괴를 염려한다. 나아가서 “개체의 발전이 반드시 공동체의 안정을 보장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복거일의 개인주의적 사고관을 비판한다. 또 진중권은 ‘말’지 99년 1월호에 게재한 ‘복거일, 당신은 멋진 신세계를 꿈꾸는가’라는 글에서 “개인적인 차이를 강조한다는 자유주의가 절대화되면, 민족문화의 개성적 차이를 무시하는 문화제국주의의 논리가 되어 버린다.”고 꼬집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영어 공용화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폐쇄적 민족주의를 비판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적이다. 서구 열강과 함께 지배받는 사람이 아니라 지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국가경쟁력을 키워야하고 그러기 위해서 영어가 핵심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에 대단히 민족주의적인 셈이다. 폐쇄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패권적 민족주의고 그것은 아류 제국주의에 기초해 있다.

  이러한 영어 공용화 논쟁에는 언어관에 대한 상이한 판단도 바탕에 깔려 있다. 진중권은 복거일의 언어관을 ‘천박한 도구주의적 언어관’이라고 비판하면서 공동체 생활 형식으로서의 언어관을 얘기한다. 가령 하이데거의 존재신학은 “유럽어권에서는 상당한 위력을 발휘해도 Be동사가 생략되는 한국어 사용자에겐 그 절대성을 인정받지 못한다.”고 예시한다.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 영어를 쓰는 것만으로 해서 넘치는 정보를 모두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정보는 정리되어 있을 때에 정보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지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그렇게 큰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영어를 쓴다는 것만으로 큰 이익을 볼 수 있다면, 미국에는 실패한 사람은 없어야 한다. 개인의 노력이 중요한 데, 그런 것 없이 영어만으로 굉장한 것을 얻게 된다는 것은 환상이다.

  복거일의 주장대로 영어가 세계 단일어로 나가는 길도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먼저 지배언어의 확대와는 무관하게 지역언어는 꾸준히 살아남는다. 역설적이게도 영어의 본고장인 미국에서 영어는 공용어가 아니다. 이민자들이 자신들만의 자치 사회를 만들며 모국어 사용을 고집하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날이 인구가 증가하고 있는 스페인어 사용자들은 50년 뒤면 전 국민의 25%에 이를 것으로 예상되는데 대부분 스페인어를 버리지 않고 있다. 99년 1월 연방 대법원이 주정부의 영어공용어 채택 움직임에 대해 위헌이라며 쐐기를 박은 후 지역언어의 범람은 더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역사적으로도 과거 영국이 노르만 지배 이후 2백여 년 간 프랑스어를 공용어로 사용했을 때 평민들은 여전히 영어를 사용하고 지켰던 사례가 있다.

  흔히 영어의 세계화를 입증하는 증거로 인터넷의 예를 들지만, 오히려 인터넷 공간에서도 지역어의 위상이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영국의 언어학자 데이비드 그래돌은 “95년까지 인터넷 사이트 중 영어로 된 사이트는 84.4%나 차지했으나 이제는 62%로 감소했다.”라고 발표하면서 “5년 뒤에는 40%로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동안 영어가 독점했던 웹사이트의 도메인 주소도 자국어로 교체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며 우리도 이르면 9월중에 한글 도메인 주소를 사용할 예정이다. 또한 알타비스타나 클릭큐 사이트 등 각종 번역 사이트가 등장하고 E-tran 등 번역 소프트웨어가 발전하는 데도 주목해야 한다. 영한 자동 번역 프로그램 EK2000을 개발한 홍종선 교수는 “모든 사람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할 수도,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말한다. 아직 피부로 느끼지는 못하지만 최소한 인터넷 공간에서는 머지않아 언어의 장벽은 이들 번역기기들이 획기적으로 뚫을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여러 걸림돌을 이기고 설사 영어가 공용어가 된다고 하더라도 각 지역으로 흡수되면서 변형되고 토착화해버릴 여지가 많다. 현재 싱가포르나 홍콩은 영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지만 ‘싱글리쉬(Singlish)’라든지 ‘칭글리시(Chinglish)’라는 말처럼 하나의 사투리어로 정착되었다. 분명 영어에 대적할 만한 뚜렷한 경쟁 언어는 등장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일부 논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영어가 ‘21세기의 바벨탑’이 될 거라고 쉽게 장담할 수는 없다.

  영어가 경제 성장의 원동력이라는 주장은 어디에서도 증명된 적이 없다. 미국이 잘사는 것은 영어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잘살기 때문에 영어를 이렇게 수출하고 있다고 봐야한다. 복거일이 예로 든 인도는 다양한 인종과 종파, 18개 공용어를 포함 844개에 이르는 사용 언어, 3세기가 넘는 영국 피치(被治) 역사 등으로 영어가 공용어로 자리잡은 경우다. 필리핀, 싱가포르 등도 크게 다르지 않다. 복거일의 논리대로라면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는 인도나 필리핀은 현대 정보산업의 혜택으로 마땅히 선진국의 길을 걷고 있어야 하지만 인도나 필리핀의 후진성이나 빈부 격차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대만의 보기도 들지만, 이 또한 국가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장사에 생명을 걸어야 하는 통상국가다. 문화의 정체성에 대한 관심이 우리보다 엷을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런 대만도 우리만큼 영어를 자기 말에 섞어 쓰거나 영문자를 자기 글에 섞어 쓰지는 않는다. 오히려 유네스코 언어국장인 조셉 포스는 이중 언어 또는 복수 언어 사용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는 좋은 방법 중의 하나라고 주장한다. 조그만 나라에서 3개 공용어를 사용하는 룩셈부르크와 스위스에서는 실업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 복수 언어 교육으로 다양한 언어가 국내에서 소통되기 때문에 어느 나라에서 사업가나 고객이 와도 손쉽게 말이 통한다. 자연히 경제적 번영을 이룰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우리 나라도 영어 편식에서 벗어나 다수 외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들도 있다. 영어 교육이 초등학교 3학년부터 시작되니까 제2 외국어 교육은 늦어도 중학교 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남승호 교수(언어학)나 조양래(주, 언어와 컴퓨터 대표 이사) 등에 따르면 “영어 공용화론은 언어정책을 실행하는 것에 어려움이 많다는 점을 무시하고 있다.”며 영어를 공용화하기 위해서는 “많은 비용이 소요될 것이며 그 효과는 가늠하기 어렵다.”는 주장을 제기하고 있다.

5. 영어 공용화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영어 공용화론을 주장하기 전에 먼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이 가능한가?’부터 따져 보자.

  공용어(公用語- official language)는 국어 사전에 따라 약간씩 표현을 달리하고 있으나 대체로 ‘국가나 공공단체에서 공적으로 쓰는 언어’로 정의되어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두고 볼 때 공용어란 현실적으로 여러 언어가 쓰이고 있는 나라에서, 공공적 용도로 사용하는 언어로 지정된 언어를 말한다. 그런데 한국은 현실적으로 여러 언어가 쓰이고 있는 나라가 아니다. 그것은 차치하더라도, 만일 영어가 공용어가 된다면 국가의 모든 법령이 영어로 작성될 것이다. 세금 고지서나 법원의 출두 요구서도 영어로 작성되어 배달될 것이다. 방송이나 신문이 영어로 나올 것이다. 교과서는 영어로 씌어 있게 될 것이다. 교사는 물론 영어로 학생들을 가르친다. 영어를 공용어로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이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 있는 것일까? 그런 일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일까? 수많은 법령과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발부하는 고지문을 누가 영어로 작성한단 말인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설령 영어 전문가들이 대거 투입되어 공용문서를 영어로 만들어낸다고 치자. 그걸 해독하지 못하는 다수의 국민들은 어떻게 살란 말인가. 영어를 못하면 죽으란 말인가? 도무지 영어를 공용어로 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지금 당장 하자는 것이 아니고 단계적으로 수 년, 또는 수십 년에 걸쳐서 시행하자는 주장도 마찬가지이다. 그렇게 되기까지 들 비용과 노력을 조금이라도 상상해 보았는지 매우 궁금하다. 언론 매체에서는 끊임없이 이중 언어 상황을 만들고 공문서도 계속 이중 언어로 작성되고, 학교 교육도 이중 언어로 되고……, 이런 상황이어야 한다. 이런 이유로 토착어가 있는 곳에서 영어가 공용어가 된 곳은 모조리 영국이나 미국의 식민 통치를 받은 곳이다. 필리핀, 인도, 싱가포르, 홍콩 등등. 수십 년 혹은 백 년 이상을 영미 식민지로서 체계적인 영어 교육을 받았고, 단일하고 발달된 국민 언어가 존재하지 않아 영어의 공세에 매우 취약했던 곳이다. 다시 말해 식민 통치를 받는 동안 이미 영어가 으뜸가는 언어로서 지위를 획득한 곳이다. 우리가 35년 동안 일본이 식민지가 아니라 미국의 식민지가 되었더라면 정말 지금 영어가 공용어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일제는 망했지만 미국은 승리하여 세계를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다.

6. 영어는 더 잘해야 한다.
  우리 나라 사람들은 지금보다 영어를 훨씬 더 잘해야 한다. 영어는 더 이상 외국어가 아닌 21세기를 살아가는데 하나의 필수 소양이 되어 가고 있다. 즉 영어 사용 능력은 우리의 기본 생존 여부까지 결정하게 된 것이다. 영어의 부족이 국제적인 감각의 부족으로 나타나고 그래서 당하는 불이익도 상당하다. 흔히 말하는 ‘세계화’도 훨씬 더 진전되어야 한다. 웬만한 교육을 받은 사람은 길 안내 정도는 가능해야 하겠고, 거의 모국어 화자(native speaker) 수준의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 최소 인구의 10% 정도는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도 의식을 전환할 때가 되었다. 단일 민족으로 고립 속에서 살아온 역사가 너무 길어서 우리 것만 내세우기를 좋아하고 외국, 외국인, 외국 문화를 잘 수용하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습성에서 과감히 벗어나 지구상에 다양한 민족과 문화가 있음을 알고 이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수용적 태도를 갖추는 일이 필요하다. 또한 외국어로서 영어 교육은 한층 강화되어야 하고, 교육 체계도 훨씬 효율적으로 정비하고 , 개인에게 떠맡겨진 외국어 습득의 책임을 사회와 국가에서 훨씬 더 많이 떠맡아야 한다.

  그러나 영어의 공용화는 안 된다. 우리 나라 전 국민이 영어를 능숙하게 구사하고 영어가 우리의 공용어가 된다해도 우리가 미국처럼 될 수는 없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삶은 경제적 풍요에서만 지상의 가치를 찾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적 풍요를 얻기 위해 ‘자기 정체성’을 포기해도 괜찮다는 주장은 가당치 않은 억설(臆說)이다. 김소운은 말했다.

  자기 어머니가 설사 문둥이라고 할지라도 클레오파트라와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참고자료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 복거일. 문학과지성사. 1998.
•‘한글 새소식’. 한글학회. 1999. 12월호~2000. 5월호.
•‘신동아’. 동아일보사. 2000. 3월호.
•월간. ‘말’ 1999. 1월호.
•‘인물과 사상’. 2000. 5월호.
•‘인터넷 대학신문’. http//weekly.snu.ac.kr.
•‘인터넷 한겨레 21C 특집 홈’. http//www.hani.co.kr/.special/21century/

2002년 여름 방학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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