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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비 내리는 날

마음닦기/붓 가는 대로

by 빛살 2007. 9. 5. 2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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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6월 17 일   목 요일   날씨: 비

얌전하게 비가 내리고 있다.
지난 토요일부터 30도를 넘는 무더위가 계속 되더니 더위도 지쳤는지 어제 오후부터 비가 오고 있다.
아침에 우산을 받고 학교로 오는 길에 비가 참 곱게도 온다고 느꼈는데 교정에 내리는 비도 나무와 풀들을 짙푸르게 물들이며 얌전히 내리고 있다.

비가 내리는 날은 나른한 피로감이 든다.
그래서 그런지 수업 중 조는 아이들이 평상시보다 많다.
또 비오는 날은 그 피로감을 풀어 주는 안식도 있다.
맑은 날은 햇볕에 쫓겨 모든 것들이 분주히 움직이는 것 같지만 비오는 날에는 빗물의 무게를 뒤집어 쓴 만물들이 그저 너부죽이 엎드려 있는 것만 같다.
움직이는 것은 오직 빗줄기밖에 없는 것 같다.
그래서 마음까지도 차분히 가라앉나 보다.

코 끝에 와 닿는 듯이 느껴지는 부침개 부치는 구수한 기름 냄새.
비오는 날이면 아버지는 사랑방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는 부엌에서 부침개를 부치셨다.
그리고 나른한 낮잠.
자다가 지치면 친구들이랑 버섯을 따던가, 냇가에 가서 고기를 잡아 찌개를 끓여 먹던 기억.
비오는 날은 그런 여유와 아련한 기억들이 솟아 난다.

학교를 오면서 기찻길 옆 고추밭에 깔아 논 비닐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가 가슴에 무어라 형언키 어려운 감정을 불러 일으켰다.

지금 생각해 보니 고향집 앞 마당에 있는 비닐 하우스에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와 섞여 들렸기 때문인 것 같다.
모두가 분주한 맑은 날에는 그래도 외로움이 덜 할 텐데 이렇게 비가 오는 날에는 밀려오는 외로움과 피어 오르는 기억들을 아버지는 어떻게 정리를 하고 계실까.
맑은 날이나 흐린 날이나 비오는 날에도 문득 문득 아버지의 외로운 영상이 떠오른다.
어머니도 보고 싶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조금은 춥게 느껴졌다.
정말로 여름 날씨와 여자의 마음은 믿을 수 없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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