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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금연

마음닦기/붓 가는 대로

by 빛살 2007. 9. 5. 22: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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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8일  수  요일  맑음.

 

이제 나흘째이다.

그 동안 끊어야지, 끊어야지 마음 속으로 수 백번을 되뇌였지만 끝내 끊지 못했던 담배를 입에 대지 않은 지가 나흘째로 접어 들고 있다.

다른 사람이 담배를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보면 피우고 싶다는 욕망이 강하게 끓어오른다.

길게는 2년 동안 담배를 안 피운 적도 있다. 그

러나 다시 담배를 피우게 되었고 그 결과 지금과 같은 상황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러니 나흘쯤 담배를 피우지 않은 것 같고 담배를 끊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본격적으로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것이 여름 방학을 하고 나서 혼자 지리산 종주를 했을 때일 것이다.

한두 개비씩 피우던 담배를 이 번 기회에 완전히 끊자며 마음을 독하게 먹고 시작한 산행.

당연히 담배를 갖고 가지 않았다.

혼자만의 산행은 자유로워서 좋았다.

힘닿는 데까지 걷고 그러다가 힘들면 쉬고 무더위 속에서 온 몸을 땀으로 적시며 가는 길들은 그대로 내 자신이었다.

가장 편안한 자세로 앉아서 쉴 때 옆에 있는 사람이 담배라도 피우고 있으면 정말 환장할 것 같았다.

신병 훈련소에서 휴식 시간에 피우던  담배맛이 그대로 살아나는 것 같았다.

염치 불구하고 담배를 얻어 피웠다.

벽소령 대피소에서는 디스 한 개비를 주웠다.

그 때 그 기분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

산행을 하면서 산을 내려가면 담배부터 사서 원 없이 피워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내려와서 그렇게 했다.

 

원주에 올라 가서도 그리고 담배가게를 하는 홍천 누님집에서도 그리고 힘든 보충 수업 기간에도 흡연은 완전히 하나의 습관이 되어 최근까지 이어져 왔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우선 머리가 맑지 못했다.

처음에는 골이 띵하고 먹먹했지만 나중에는 마비가 되어 그런지 그런 감각은 없었다.

하지만 머리는 맑지 못했다.

하기야 머리가 맑지 못한 것은 그 때보다 지금이 더하다.

전 번 일요일은 비가 와서 하루 종일 인터넷 안내서와 잠으로 보냈다.

담배를 피우지 않아서 그런지 아니면 일요일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해서 그런지 지금도 틈만 나면 자고 싶고 쉽게 잠에 빠져 든다.

아마 이런 것을 두고 금단현상이라고 하나 보다.

 

담배는 나를 지치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면 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잠자리에서 가쁜 하게 일어 나 본 적이 없다.

밍기적거리다가 시간에 쫓겨 어쩔 수 없이 일어나게 된다.

매사에 힘들어 하고 몸이 바싹바싹 말라가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은 살이 오르는 것 같다.

워낙 잠을 많이 자두어서 그런지 잠자리에서 일어나는 몸짓도 예전보다는 힘차다.

 

담배는 주변을 지저분하게 했고 쓸 데 없는 데 지출을 많이 하게 한다.

다른 사람에게는 담배가 어떤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나에게 담배는 아무런 가치도 없고 나를 파괴시키는 존재일 뿐이다.

그런데도 담배를 피우는 것은 니코틴 중독 때문일 것이다.

정신은 원하지 않는데 마비된 육체는 담배를 원하는 것이다.

사람을 두고 만물의 영장이라고 한다.

영장인 이유는 이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성은 피워서는 안 된다고 하는데 육체의 힘에 눌려 담배를 피운다는 것은 내가 이성적인 면에서 얼마나 보잘 것 없는 존재인가를 잘 보여주고 있다.

 

담배를 안 피우면 나에게 돌아오는 해악은 무엇인가?

잠시 동안의 금단 현상을 견뎌 낸다면 나에게 오는 해악은 아무 것도 없다.

담배를 끊으면 돌아오는 이로움은 너무나 많다.

이성적으로 발달되지 못한 존재이니 몸이라도 튼튼해야 되지 않겠는가.

담배를 끊으면 무엇보다도 건강이 많이 좋아 질 것이다.

 

사람살이 생각대로만 된다면 짜증내면서 살 사람 누가 있겠는가?

하루에도 수 만 번씩 생각이 왔다갔다하면서 자기가 한 일에 자신이 놀라기도 하는 것이 사람살이 아닌가.

지금 껌을 씹으면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는 이 순간에도 담배를 피우고 싶은 욕구는 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겨 보고 싶다.

항상 자신에게 져 오면서 살아오고 항상 시간에 질질 끌려 다녔는데 이제부터는 본능이 아닌 내 정신의 의지대로 살아보고 싶다.

담배가 피우고 싶을 때는 스스로를 달래자.

지끔까지 버텨 왔던 것이 아깝지 않느냐고,

담배를 입에 대지 않으면 새로운 세계가 내 앞에 펼쳐 질 것이라고,

담배 하나 끊지 못하면서 어떤 일을 할 수 있겠느냐고,

스스로에게 답을 구하면서 완전하게 담배와 이별을 하자.

잘 가라. 담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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