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문학상과 우리의 부끄러움 기사등록 : 2010-10-12 오후 05:59:19 | |
노벨 문학상이 페루 소설가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에게 수여되면서 우리나라의 고은 시인이 상을 못 타게 된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는 많은 기사를 접하게 된다. 노벨 문학상이 국력 신장에 비례하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는 것처럼 국가에서 집중 투자를 한다고 해서 반드시 결실을 얻는 것도 아님에도 많은 분들이 고은 시인의 수상에 기대를 했던 것 같다.
고은 시인이 해외의 독자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었고 민간 차원에서 그리고 정부 차원에서 우리의 작가들을 해외에 알리기 위한 꾸준한 노력이 있어왔기 때문일 것이다. 필자의 기억으로도 10여년 전에 멕시코의 한 대학에서 고은 시인 시집의 스페인어 출간회가 멕시코 문인들과 학생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치러진 것이 떠오른다.
정작 필자를 섬뜩하게 하는 것은 고은 시인의 수상 좌절보다는 필자가 시를 안 읽은 지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는 것이다. 우리 국민 중에 고은 시인의 시를 알고 있는 이가 얼마나 될까? 서점에서 시집이 베스트셀러 자리를 내준 지는 아주 오래됐다. 대학생들이나 젊은이들이 시집을 들고 다니던 시절은 이제는 무슨 전설 같은 과거사가 됐다.
시를 읽지 않는 나라의 시인이 노벨 문학상을 수상할 수 있을까? 그래도 우리 국민들은 소설과 수필은 열심히 읽는다. 지하철에서 이런 책들을 읽는 시민들을 발견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같은 문학이지만, 시는 소설 또는 수필보다 여백의 미가 있고 우리에게 적은 단어로 더 많은 상상력을 요구한다. 고대인들은 시인들이 시를 통해 신성과 접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세계화의 무한 경쟁시대를 살아가는 2010년의 우리는 여백을 즐길 여유도 단어 하나를 곰곰 생각할 상상력도 신과 영원을 생각할 마음도 없다.
필자는 올여름 페루를 다녀왔다. 그리고 페루의 시골 버스 정거장에서 300~400원 하는 차비를 낼 돈이 없어 자신의 품에서 꼬깃꼬깃 접은 종이들을 자신의 시라고 승객들에게 팔려고 했던 남루한 페루인 하나가 떠오른다. 무한 경쟁 시대의 마인드에 익숙했던 필자가 본능적으로 구걸하는 거지라고 생각했던 그 순간에 몇몇 젊은 승객들이 그의 시를 읽고 미소를 지었다.
일부 언론에서 내년에 고은 시인의 수상에 대한 기대치를 높이기 위해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를 한물간 페루의 소설가로 언급하는 것을 본다. 두 작가들의 역량을 떠나서 독자로서 필자가 그 시골 버스의 페루인들보다 자기 나라에 노벨 문학상 수상자를 갖기에 많이 뒤진다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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