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 자취’ 본격 논쟁판 열린다
등록 :2017-11-01 19:12수정 :2017-11-01 21:06
한국고고학회 3~4일 고고학대회 열어
위만조선 왕검성 위치 등 논란에
중견·소장 연구자들 새 논고 발표
고조선의 자취와 연관되는 중국 만주, 북한 일대의 유물들. 왼쪽부터 중국 자오양(조양) 십이대영자 유적에서 출토된 비파형 동검.
“이제는 말할 수 있다.”
한반도 역사상 첫 나라인 고조선을 놓고 국내 고고학자들이 발언하기 시작했다. 고조선의 자취에 대해 언급 자체를 꺼렸던 고고학계에 최근 불고 있는 변화다. 급기야 올가을 학회 차원에서 집중적인 논의 마당을 역대 처음 펼쳐놓기로 했다. 한국고고학회(회장 이남규 한신대 교수)가 3, 4일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마련하는 41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에서다.
고조선의 영역과 실체는 한국 고대사 연구자들의 가장 민감한 쟁점거리다. 출토한 물질 사료를 우선시하는 고고학계는 그간 논의를 본격화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기원전 2333년 단군이 건국했다는 <삼국사기>, <삼국유사>의 신화적 기록과 기원전 108년 한나라 무제의 침공군에 의해 도읍 왕검성이 함락돼 망했다는 중국 <사기>의 사실 사이에는 풀어야 할 숱한 간극과 의문들이 있다. 하지만 문헌 기록은 물론, 남아 있는 유적과 유물이 워낙 적다. 게다가 이마저도 국내 학계가 접근하기 어려운 중국 만주와 북한에 유적들이 있는 탓에 갖은 ‘설’만 난무해온 것이 고고학계의 실정이었다.
대회의 주제를 ‘고고학으로 본 고조선’으로 잡은 것은 연구 현실의 제약을 벗어나려는 의지를 담고 있다. 2000년대 이래 연구 여건은 다소 좋아졌다. 중국 동북지방의 자오양 십이대영자 유적, 북한 평양 일대의 토성 등 여러 곳에서 고조선 계통 유물 유적들의 조사 성과가 쏟아져 답사 연구가 잇따랐고, 국내와 일본에 묻혀 있던 일제강점기 고조선, 낙랑 관련 조사 자료, 사진 건판들도 최근 대거 공개돼 담론의 기반과 논의할 역량이 일정하게 확보된 것이다.
중국 자오양 십이대영자 유적에서 나온 청동인물장식.
대회장에서는 이런 배경 아래 한민족의 형성과 고조선, 위만조선의 왕검성과 낙랑군 조선현의 위치, 비파형 동검·토기 문화와 고조선의 관계 등 공동주제를 놓고 중견, 소장 연구자 10여명의 발표와 토론이 이어진다. 고고학은 물론 문헌사에서도 고민해왔고, 고조선 강역을 중국 중원까지 넓혀보는 유사역사학계와 첨예한 대립을 빚어온 주제들이다.
중국 랴오양(요양) 탑만촌 유적에서 출토된 선형동부 거푸집. 인물상이 돋을새김돼 있다.
사전공개된 발제문들 가운데 눈길을 끄는 건 대회의 기획진을 꾸린 정인성 영남대 교수의 논문 ‘고고학으로 본 위만조선 왕검성과 낙랑’이다. 고조선, 낙랑 관련 일제 발굴 자료들을 꾸준히 연구해온 정 교수는 이 논문에서 위만조선의 도읍인 왕검성의 위치를 평양으로 보는 학계 다수의 통설을 부정한다. 고구려가 성을 쌓기 전 대동강 북쪽의 평양성 자리에는 위만조선 시기로 비정할 만한 기와나 토기 등의 고고학적 근거가 거의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 이유다. 위만조선의 왕검성은 중국 랴오둥 반도 일대에 있었고, 위만조선 멸망 뒤 한 군현이 한반도 북부에 설치되면서 대동강 남단 혹은 북단으로 통치거점(조선현)이 옮겨갔을 것으로 본다는 주장이다.
평양 신성동 유적에서 나온 다뉴경(잔무늬거울).
첫 발표자인 이청규 영남대 교수는 비파형 동검 등의 청동기와 토기, 무덤 양식 등을 살펴볼 때 고조선은 기원전 1000년을 전후해 중국 동북지방 랴오허(요하)부터 서북한 일대에 존재했던 국가 실체라고 짚었다. 중국 동북지방, 한반도에는 동족의식을 가진 여러 종족이 있었는데, 그중 한 종족이 세운 나라가 고조선이었다는 관점을 내놓았다. 위만조선이 자체 철기를 제작해 한반도 삼한, 일본에 공급망을 형성했을 것으로 추론(김상민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사)하거나 고조선이 높은 제작 기술이 필요한 청동거울 ‘다뉴경’을 공유하는 네트워크를 형성했다가 붕괴되면서 한반도에 세형동검 문화권이 새롭게 발달했다는 주장(강인욱 경희대 교수)을 담은 논고들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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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817071.html#csidx573d42134d392f0887767b5c92f3eb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