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44년 9월 연합군이 중국 윈난성 쑹산(송산) 위안소에서 살아남은 4명의 위안부들을 찍은 사진. 맨 오른쪽이 당시 22살이던 박영심.
사진출처=NARA.
해방 후 고향으로 돌아온 박영심은 1990년대 일본군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앞장섰다.
증언집을 발간하고 도쿄의 법정, 난징·쑹산의 옛 위안소를 찾아 진실을 알렸다.
남에 김학순이 있었다면 북에는 박영심이 있었다.
박영심은 2006년 8월 평양에서 작고했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는 10만~20만명으로 추산된다.
정부에 신고한 피해자는 240명. 이 중 생존자는 23명. 평균 연령 91세.(2019.02.20.)
‘위안부’ 연구·조사는 물론 증언도 채록할 필요가 있다.
* 배봉기 : 최초의 위안부 증언자, 1975년 오키나와. 1991년 10월 18일 오키나와에서 별세.
* 한국전쟁 시 유엔군 위안소(업자를 내세운 군 전용 위안소), 한국군 특수 위안소(군이 직접 설치 운영, 5종 보급품)
- 일본군 경력자들의 발상
▲ 부산 1951년 6월. 이경모 촬영(<격동기의 현장>, 121쪽). 강성현 제공 /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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