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癖 (시벽)
이규보
年已涉縱心(연이섭종심) 나이 이미 칠십을 넘었고
位亦登台司 (위역등태사) 지위 또한 정승에 올랐네
始可放雕篆 (시가방조전) 이제는 시 짓는 일 놓을 만도 하건만
胡爲不能辭 (호위불능사) 어찌하여 그만 두지 못하는가.
朝吟類蜻蟀 (조음류청솔) 아침엔 귀뚜라미처럼 읊조려 대고
暮嘯如鳶鴟 (모소여연치) 저녁에도 올빼미인양 노래 부르네.
無奈有魔者 (무나유마자) 어찌할 수 없는 詩魔란 놈이
夙夜潛相隨 (숙야잠상수) 아침저녁 남몰래 따라 와서는
一着不暫捨 (일착불잠사) 한 번 붙어 잠시도 놓아주지 않아
使我至於斯 (사아지어사) 나를 이 지경에 이르게 했네.
日日剝心肝 (일일박심간) 날이면 날마다 心肝을 도려내
汁出幾篇詩 (즙출기편시) 몇 편의 시를 쥐어 짜내니
滋膏與脂液 (자고여지액) 내 몸의 기름기와 진액일랑은
不復留膚肌 (불복류부기) 다 빠져 살에는 남아 있질 않다오.
骨立苦吟哦 (골립고음아) 뼈만 남아 괴롭게 읊조리나니
此狀良可嗤 (차상식가치) 이 모습 정말로 우스웁구나
亦無驚人語 (역무경인어) 그렇다고 놀랄 만한 시를 지어서
足爲千載貽 (족위천재이) 천 년 뒤에 남길 만한 것도 없다네.
撫掌自大笑 (무당자대소) 손바닥을 부비며 홀로 크게 웃다가
笑罷復吟之 (소파부음지) 웃음을 그치고는 다시 읊조려 본다.
生死必由是 (생사필유시) 살고 죽는 것이 필시 시 때문일 터이니
此病醫難醫 (차병의난의) 이 병은 의원도 고치기 어렵도다.
<갈래> 한시(漢詩) <연대> 고려 시대 <제재> 시를 짓지 않고는 못 배기는 병 <주제> 시 짓기를 좋아하는 마음 <출전> 동국이상국집(東國李相國集) <특징>
1. 자신이 얼마나 시 짓기를 좋아하는 지를 반어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2. 솔직하고, 반성적인 어조
<짜임>
1. 1~10행 - 시 짓기를 그만두지 못함
2. 11~14행 - 시 짓기의 괴로움
3. 15~20행 - 시 짓기의 즐거움
4. 21~22행 - 시 짓기를 그치지 않을 것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