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첫사랑을 만인이 기억케 하리
첫사랑이 준 애틋한 인상을 한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그 첫사랑의 아름답고 고결한 인상을 온 세상에 알리고, 7백년 세월이 지나도록 지워지지 않게끔 한 사람은 한 명뿐이다.
이탈리아의 시인 단테(1265~1321), 그는 첫눈에 반한 아름다운 소녀를 잊을 수 없어 문학작품 속에 영원히 살아 있게 했다.
다섯 살때 어머니를 여의고 외롭게 자라던 소년 단테는 아홉살 때 피렌체 귀족의 딸 동갑내기(한 살 아래) 베아트리체를 만나 첫눈에 반한다. 단테는 만남의 순간을 "그때부터 사랑이 내 영혼을 완전히 압도했네"라고 시집<신생>에 적고 있다. 가슴 가득 그리운 감정을 픔고 살아가게 되었으나 단테는 아버지의 명으로 열두 살 무렵 젬마 도나티와 결혼 약속을 한다. 당시의 풍습을 정확히 알수는 없으나 약혼식까지 하지는 않았던 듯하다.
<Henry Holiday, Dante and Beatrice, 1883, Oil on canvas,
9년 뒤인 열여덟 살 때였다. 사춘기를 지나고 나서 다시 베아트리체를 만난 단테는 지상의 천사, 구원의 여인이라고 생각하면서 몇 해 동안 온갖 열정을 쏟아 사랑한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은 단테의 소망을 들어주지 않는다. 베아트리체는 역시 집안에서 점찍은 시모네데 바르디라는 사람과 결혼했다가 1290년 6월 8일, 스물네 살의 젊은 나이로 죽는다. 단테가 16년 동안 쌓아올린 간절한 사랑의 탑이 그날로 산산이 무너져 내렸을까?
자포자기의 심정이 된 단테는 어릴 때 약혼했던 젬마와 그 이듬해 결혼식을 올린다.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도 단테의 마음을 돌리지 못했으니, 첫사랑을 잃어버린 상처는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단테는 베아트리체를 잊지 못해 10여 년 동안이나 타락한 생활을 한다.
서정시를 덧붙인 산문 <새로운 인생>에서 단테는 베아트리체와 만나게 된 과정을 설명한 뒤 "그녀의 매력은 덕에 감싸여 있기에 그 누구도 시샘하거나 헐뜯지 않네 / 오히려 같이 있는 다른 여인도 사랑과 믿음에 흐뭇해져 함께 빛나리"라며 그녀의 내적 아름다움에 대해 열렬히 찬미한다.
이어서 두 사람 인생이 엇나간 과정과 부고를 전해들은 날을 묘사했으며, 그녀가 죽은 뒤 고통스런 마음으로 쓴 몇 편의 시도 덧붙인다. 작품의 마지막 장에서 단테는 맹세한다. "그녀에 대한 내 참담한 심정이 이것으로 마무리될 수는 없다. 내 시는 이전에 존재한 적 없고 앞으로도 나오지 못할 정도로 열렬하고 숭고하리. 그것을 쓰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쓰지 않으리." 이 맹세는 그 유명한 <신곡>으로 실현된다.
<Lord Frederick Leighton, Dante in Exile, c.1864, Oil on canvas
60.04 x 100.00 inches / 152.5 x 254 cm, Private collection>
정치가의 길을 걸어간 단테는 당쟁의 회오리속에서 서른일곱 살 때 피렌체로부터 영구 추방이 결정되고, 체포시에 화형에 처해질 것이라는 끔찍한 선고를 받는다. 이 도시 저 마을을 방랑하면서 단테는 필생의 대작 <신곡>을 구상하고 1307년 (42세)에 집필을 시작, 13년에 걸쳐 완성한 뒤 바로 숨을 거둔다.
<신곡>의 '지옥편'은 첫사랑을 잃은뒤 타락한 생활을 한 자신의 모습이, '연옥편'은 영혼이 갱생하는 고통스런 과정이 반영되어 있다. 연옥을 빠져 나온 단테는 '천국편'에서 자신의 젊은 시절 연인이면서 우상이었던 베아트리체를 만나 그녀의 안내로 천국을 유람한다. 마음속 깊은 곳에 40년이나 간직해 온 그녀의 아름다운 영상을 천사로 만들어 영생케한 것이며 7백 년을 살아가게 했으니 사랑의 힘이란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것인지...
시인 T.S. 엘리엇은 "근대세계는 셰익스피어와 단테가 나눠 가졌다. 제3자는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말함으로써 근세의 문인 가운데 단테에 필적할 사람은 셰익스피어밖에 없다고 단정하였다. 공산주의혁명 이론가 엥겔스도 기독교적 상상력의 산물인 <신곡>의 가치를 인정, "봉건적 중세기의 종결과 근대적 자본주의의 단초는 한 위대한 인물을 표지로 삼을수 있다. 그 인물이 바로 이탈리아의 단테이다. 그는 중세기 최후의 시인이며 동시에 신시대 최초의 시인이다"라는 최고의 찬사를 바쳤다.
<신곡> 탄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은 자신의 첫사랑 베아트리체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이었다. 그녀는 비록 스물네 살 젊은 나이로 죽었지만 단테는 문학작품 속에 그녀의 영상을 새겨 넣어 만인의 가슴에 남겼으며, 이승에서 못다 이룬 사랑을 문학으로 성취하였다. 타인의 품을 찾아간 연인이었지만 '무너진 사랑탑'이 아니었던 것이다. (좋은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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