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이 백년지대계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겠으나 유독 우리나라의 교육은 맥락도 철학도 없이 이리저리 뜯어고치다 애먼 국민들에게 혼란만 가중시켰던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하도 많이 당해서인지 이제는 정권이 바뀌면 으레 새로운 정책이 나오겠거니 생각할 지경인데 이게 결코 정상이라 할 수는 없다. 교육 정책이 바뀌면 공교육 현장은 말할 것도 없고 대학과 기업의 인재 선발과, 장기적으로는 국가 경쟁력에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변화가 필요하다 하더라도 당사자들에게 변화에 따른 부담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향으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맞다. 정당과 이념을 초월한 일관된 교육 철학이 근본이 되어야 함은 두말 할 필요도 없다. 교육은 결코 정권의 과시용 실적 만들기 대상이 될 수 없으며 권력자의 사적인 의지로 아무렇게나 주무를 수 있는 밀가루 반죽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에 과거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현 박근혜 정부까지 지난 10여 년을 돌아보면서 그간에 쏟아낸 수 많은 교육 정책들은 무엇이 있었고, 그것이 시간이 흐르면서 어떤 결과로 이어졌는지를 간략히 나마 돌아보고자 한다.
노무현 정부 (2003~2007, 교육인적자원부) 주요 정책 - 만 5세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보육 - 학생선발 방식 등을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토록 위임 - 정부 보증 학자금 대출제도 도입 - 의학전문대학원 제도 도입 - 공교육 정상화: 수준별 이동수업, 방과후학교 실시 - 교원평가제, 교육감 직선제, 개방형 이사제 시행 - 3불 정책 (본고사, 기여입학, 고교등급제 금지) - 사교육비 경감대책, EBSi로 사교육을 대체하는 온라인 공교육 시도 - 2008 대입제도 개선안: 내신9등급 세분화(원점수+석차등급제), 수능 영역별 9등급제, 입학사정관제 도입 |
노무현 정부는 '자율과 다양성의 교육'을 표방하며 공교육 질을 높이는데 초점을 두었다. '공교육 정상화를 통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을 본격적으로 마련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부터였다. 평준화를 보완하고 수월성 교육을 추진한다는 목적으로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목고를 확대했고, 자립형사립고나 자율형공립고 등을 새로 만들기도 했다. 사교육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방과후학교를 확대했고, 본격적인 인터넷 시대를 맞아 교육행정의 효율화를 위해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이 도입되었다.
참여정부를 표방하며 겉으로는 교육의 민주화를 추진코자 했으나 준비되지 못한 자율화는 혼란을 더 크게 초래했다. 지방대학 중점육성을 통해 대학 서열화를 극복하고자 하였으나 별 영향을 주지 못했고, 특목고 등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서 고교 평준화도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명박 정부로 넘어가서는 특목고가 고교서열화 논란의 정점에 서게 되었다.
2008 대입제도 개선안이 발표되자 수능과 학생부의 등급만으로 우수한 학생을 선발하기 어렵다는 문제가 지적되었고, 대학들은 변별력 확보를 위해 논술이나 면접 등을 강화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죽음의 트라이앵글'이라는 말이 회자된 배경이다. 마침 정부가 대학자율화를 표방하자 서울대가 먼저 2008 대입제도에서 논술고사를 강화하겠다고 발표했고, 다른 대학들도 앞다투어 통합형논술을 도입하고 학생부와 수능반영률은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본고사 부활의 신호탄이라는 사회적 논란이 커지자 교육부의 권고에 따라 대학들도 '학생부 50% 이상 반영, 논술고사 최소화'로 한발 양보했다. 2008학년도 수능에서 성적을 등급으로만 표시하게 했으나, 변별력 확보가 힘든데다 입시 혼란을 가중시킨다는 등의 이유로 이듬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2009학년도부터 즉시 폐지되었고, 이전처럼 표준점수와 백분위를 함께 표시하는 방법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임기 말인 2007년에 입학사정관제 도입을 확정 지었고, 10개 대학을 지정해 예산을 지원하며 시범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다.
2003년 제도 도입 때부터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의학전문대학원은 한 대학 내 의대와 의전원이 함께 운영되면서 많은 문제점을 초래했고, 이후 2011년부터는 대학이 자율적으로 의전원과 의대 중 선택하기로 결정함에 따라 대부분의 대학이 과거의 의대 체재로 돌아섰다.
무엇보다도 5년 임기 동안 교육부 장관이 다섯 차례나 교체되며 교육 정책의 일관성을 잃었고 교육부 관료들에 대한 장악력도 부족했다는 평가를 피하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자율과 다양성' 정책들이 민주적인 분위기를 만드는 데는 도움이 되었지만 대학 입시제도가 더 복잡해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자율화 분위기 속에서 교육 단체들과 대학들이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고, 대입제도와 3불정책 등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은 커졌지만 뚜렷한 성과로 남긴 것은 없었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명박 정부 (2008~2012, 교육과학기술부) 주요 정책 - 학교 자율화, 학교장과 교육감의 권한 강화, 교장 공모제 도입 -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 기숙형공립고 150개+마이스터고 50개+자율형사립고 100개 - 학교간 경쟁을 통한 교육의 질 향상: 학업성취도 평가(일제고사) 부활, 성적공시제도 도입, 학교 및 교원평가 - 대학입시 완전자율화: 입학사정관제 확대, 복잡한 대입 전형 -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 영어회화 전문강사, 국가영어능력평가시험(NEAT) 도입 - 대학 등록금 후불제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 - 수능체제 개편: 등급제 보완, 수준별 수능체제, 응시과목 축소 - 주5일제 수업 전면 시행 |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자율과 경쟁을 내세운 신자유주의가 기본 방향이었다. 다양하고 질 높은 교육을 할 수 있도록 교장에게 학교 운영의 권한을 돌려주는 자율화 정책은 학생 선택권을 확대한다는 것이 목적이긴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우수한 학생들을 독점하던 기존 특목고의 위상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었다. 재단의 뒷받침과 교장의 의지에 따라 학원강사를 데려와서 수업을 하는 것도 가능해지면서 이런 교육 차별화를 적극 추진할 수 있는 특목고가 더욱 관심을 받게 되었다.
고교 평준화 정책의 단점을 보완하고 특목고로 집중된 입시 과열을 완화하기 위해 본격 도입된 자사고 정책은 당초 목표로 삼았던 100개에 도달하지 못하고 51개교를 만드는데 그쳤다. 특히 서울지역 자사고는 모집 첫해에 부정입학이 쏟아졌고 이후부터 정원을 채우지 못하는 학교가 속출했다. 일반고에 비해 국영수 위주의 수업을 더 많이 하면서 3배 가까이 비싼 수업료로 고교 서열화를 초래하였고, 최근에는 일반고 슬럼화의 주범으로 몰리고 있는 상황이 되어 존폐논란이 일고 있다. 마이스터고를 선정해 집중 투자한 정책은 상대적으로 높은 취업률을 달성하며 고졸취업을 장려하는 분위기를 이끌었으나, 기존 특성화 고교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 주었고 교육여견차를 더 심화시켰다.
학업성취도 평가와 진단 평가를 일제고사 방식으로 전환한데다 교육정보 공시제도를 통해 그 결과를 공개('학교알리미')하면서 학교간 학력 경쟁은 더 과열되었다. 일제고사 기간이 다가오면 일부 학교에서는 수업이 파행적으로 운영되는 폐단도 생겨났다. 전국의 학교들이 성적으로 비교되는 상황이 되자 경쟁교육이 강화되었고 단순 암기 위주의 교육과정 획일화를 초래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과도한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고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영어로 대화가 가능하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했던 영어 공교육 완성 프로젝트는 결과적으로는 영어 학원에게만 좋은 일을 시켜주는 것으로 끝났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초∙중등학교에서 영어회화 수업이 늘어나면서 추가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교사자격증이 없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6000명을 뽑았다. 하지만 몇 년이 지나 학교들이 예산 문제를 들어 계약을 연장하지 않으면서 집단 해고 사태를 불러왔다. 해외 영어시험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고 실용영어 중심의 평가를 확대하려는 취지에서 도입된 NEAT는 수능 영어시험을 대체하겠다는 로드맵으로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교육과정 개편과 연계되지 못하고 예비 시행 단계에서 수 차례 오류가 발생하는 등 문제를 일으키며 학교 현장에서 철저히 외면당했다. 결국 고등학생을 위한 2,3급은 한번도 치러보지 못하고 폐기되었으며 개발비 465억원의 예산이 세금으로 낭비된 대표적 실패 사례로 꼽힌다.
참여정부 때부터 시행한 학자금 대출제도는 대학진학률을 높이는 데는 일부 기여했지만 등록금 대출을 받은 대학생들이 졸업 후에 대출금을 갚지 못해 신용불량자가 되는 사태를 막지는 못했다. '취업 후 학자금 상환제'는 시행 4년 만에 상당수가 대출금을 갚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정부가 청년 신용불량자를 오히려 양산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후 박근혜 정부에서 학자금을 연체하고 있는 5만8000명의 연체액 2883억 가운데 국민행복기금으로 1100억 원을 떠 맡게 되어 세금 낭비와 모럴 해저드 논란을 일으켰다.
노무현 정부부터 지속적으로 추진해 온 대학 자율화는 2000가지가 넘는 대입전형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 되었고, 이후 현 정부는 '대입 간소화' 정책으로 복잡해진 대입제도를 정리하고 있는 중이다. 노무현 정부가 도입했던 입학사정관제를 본격적으로 확대한 것은 이명박 정부였다. 성적 보다는 잠재력과 소질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선발 제도를 표방하였으나 '스펙 경쟁'으로 과열되는 양상이 나타났고, 이런 입시를 준비하기에 유리하다는 이유로 특목고가 다시 주목을 받게 되었다. 한편 정성평가가 가진 주관적 판단의 모호성, 공부 이외에 비교과 활동까지 챙겨야 하는 상황에서 수험생의 부담 가중, 각종 스펙을 관리하고 자기소개서를 첨삭해주는 새로운 사교육이 유발되는 문제점 등이 생기며 과도기를 겪었다. 현 정부에서는 '학생부 종합전형'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고, 공인 어학 성적이나 교외 수상 실적 등을 기입하지 못하게 하고 있다. 하지만 입학사정관제로 합격한 학생 중에 교사에 의해 학생부 활동 기록이 조작된 사례가 최근 적발되어 입학사정관제의 신뢰성에 타격을 입었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수능의 변화는 빠지지 않았다. 2011학년도부터는 사교육을 억제하고 공교육을 정상화한다는 방침에 따라 EBS 교재의 연계율을 70%까지 높이기 시작했다. 학생들 사이에는 오류가 많은 EBS 교재를 암기하는 폐해가 생겨났고 수능 난이도 조절에 잇따라 실패하며 논란이 커졌다. 2014학년도 수능에서는 선택형 수능을 통해 학력 격차를 줄이겠다는 의도로 국·영·수 과목에 대해 수준별(A,B형) 선택 평가제를 도입했다. 하지만 취지와 달리 특목고 등의 성적 쏠림 현상이 심화되고 일반고 침체가 여전한 것으로 나타나자 현 정부에서 2015학년부터 영어영역의 수준별 수능을 폐지했고, 남아있는 국어와 영어의 수준별 시험도 2017학년도부터 폐지될 예정이다.
박근혜 정부 (2013~현재, 교육부) 주요 정책 - 고교 의무(무상) 교육 단계적 실시, 0~2세 보육료 지원, 3~5세 누리과정 확대, 국공립 어린이집 증설, 반값 초등 방과후 돌봄기능 강화, 반값 대학등록금 정책 - 대입제도 간소화 (수시는 학생부 위주, 정시는 수능 위주), 전문대 수업연한 규제 완화 (1~4년) - 중학교 자유학기제 시행, 모든 중·고교에 진로교사 배치 - 국가수준 학업성취도 평가 개선 (초등 폐지, 중학교 과목 축소) -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 규제에 관한 특별법(선행학습금지법) 시행 |
박근혜 정부에서의 교육 정책은 '복지'로 요약될 수 있다. 하지만 '고교 무상교육'과 '초등 온종일 돌봄학교∙방과후 학교 무상지원' 등을 포함한 교육 공약 가운데 예산조차 확보하지 못한 것들이 태반이라 임기 내 실현에 차질이 예상된다. 다른 복지공약들도 산적한 상황이라 우선순위에 밀려 흐지부지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꿈과 끼를 살리는 교육'을 표방하며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시행하고 있으며, 장기적으로는 고교 교육과정에서의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하지만 수능을 바꾸지 않고서는 통합 교육과정의 의미를 살릴 수 없기 때문에 향후 수능 개편을 둘러싸고 많은 진통과 혼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특히 진보교육감의 당선으로 자사고 폐지 문제, 역사교과서 국정화 문제 등을 둘러싸고 갈등이 확대되고 있는데다, 세월호 사태, 경기침체, 청년실업 등 사회적으로 풀어야 할 난제들이 많아 교육 분야의 획기적인 혁신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2018학년도부터 고등학교의 문·이과 구분을 폐지하고, 기존 국∙영∙수에다 '공통사회', '공통과학' 과목을 이수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 '2015 개정 교육과정안'이 발표되어 세부 안을 마련 중에 있다. 수능에서는 2017학년도부터 한국사 과목을 필수 과목으로 지정했고, 교육 과정에 소프트웨어 관련 내용을 포함시키도록 했다.
수험생의 입시 부담을 줄이고 대입 제도의 혼란을 막기 위해 비슷한 전형을 통합하고 명칭을 이해하기 쉽게 개편하는 등의 '입시 간소화' 정책을 추진 중이며, 아울러 논술 등의 대학별고사를 지양하도록 하는 방안도 함께 진행형이다. 하지만 수시 전형이 여전히 복잡하고 특목고 등에 유리하다는 지적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공교육 정상화를 위해 선행학습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지만 수능 등 대입제도의 근본적 변화 없이는 선행학습을 근절할 수 없다는 현실인식과 사교육 규제 내용이 대부분 빠져있어서 유명무실해졌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교과 운영의 재량권이 상대적으로 많은 특목고 등과의 형평성도 고려되지 않아 일반고 소외현상을 더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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