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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계절

마음닦기/시

by 빛살 2019. 9. 10.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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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랑하는 계절 / 나태주

 

내가 제일로 좋아하는 달은

11월이다

더 여유있게 잡는다면

11월에서 12월 중순까지다

 

낙엽 져 홀몸으로 서 있는 나무

나무들이 깨금발을 딛고 선 등성이

그 등성이에 햇빛 비쳐 드러난

황토 흙의 알몸을

좋아하는 것이다

 

황토 흙 속에는

시제時祭 지내러 갔다가

막걸리 두어 잔에 취해

콧노래 함께 돌아오는

아버지의 비틀걸음이 들어있다.

 

어린 형제들이랑

돌담 모퉁이에 기대어 서서 아버지가

가져오는 봉송封送 꾸러미를 기다리던

해 저물녘 한 때의 굴품한* 시간들이

숨쉬고 있다

 

아니다 황토 흙 속에는

끼니 대신으로 어머니가

무쇠 솥에 찌는 고구마의

구수한 내음새 아스므레

아지랑이가 스며있다

 

내가 제일로 종하하는 계절은

낙엽 져 나무 밑둥까지 드러나 보이는

늦가을부터 초겨울까지다

그 솔직함과 청결함과 겸허를

못 견디게 사랑하는 것이다

* 굴품한 : '배가 고픈 듯한', '시장기가 드는 듯한'의 충청도 방언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나태주 시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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