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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의 유령

마음닦기/시

by 빛살 2021. 1. 30.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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면벽의 유령/안희연

 

여름은 폐허를 번복하는 일에 골몰하였다

 

며칠째 잘 먹지도 않고

먼 산만 바라보는 늙은 개를 바라보다가

 

이젠 정말 다르게 살고 싶어
늙은 개를 품에 안고 무작정 집을 나섰다

 

책에서 본 적 있어
당나귀와 함께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기도*
빛이 출렁이는 집

 

다다를 수 있다는 믿음은 길을 주었다
길 끝에는 빛으로 가득한 집이 있었다

 

상상한 것보다 훨씬 눈부신 집이었다
우리는 한달음에 달려가 입구에 세워진 푯말을 보았다
가장 사랑하는 것을 버리십시오
한 사람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늙은 개도 그것을 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버려져야 했다

 

기껏해야 안팎이 뒤집힌 잠일 뿐이야
저 잠도 칼로 둘러싸여 있어
돌부리를 걷어차면서

 

다다를 수 없다는 절망도 길을 주었다
우리는 벽 앞으로 되돌아왔다

 

아주 잠깐 네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늙은 개를 쓰다듬으며

 

나는 흰 벽에 빛이 가득한 창문을 그렸다
너를 잃어야 하는 천국이라면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프란시스 잠

<무크파란>창간호, 2015

 

원문보기:
http://www.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725413.html#csidx37e6bf753302cd1ba9be43e5965ef7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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