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고준> 고종석 지음, 새움출판사. 2010/12/04완
소설 <독고준>은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문에 해당하는 ‘1부 아버지의 일주기’, 본문에 해당하는 ‘2부 사계’, 후기에 해당하는 ‘3부 독고준 소묘’로 나눌 수 있다.
1부에서는 노무현 대통령과 독고준의 자살을 동시에 설정해 놓음으로써 독자의 관심을 충분히 끌어들인다. 더 이상 삶에서 아무런 의미를 찾을 수 없다는 무력감 때문에 자살한 노무현처럼 독고준도 그렇게 죽음을 택했다. 독고준의 일주기 때 소수종교(여호와의 증인)를 신봉하는 어머니에게서 아버지의 일기를 건네받은 딸 독고원은 2부에서 일기를 재구성한다. 계절적으로는 4월 혁명부터 3월까지, 역사적으로는 4월 혁명부터 이명박 당선시기인 2000년대 중반까지 아버지의 일기에 딸이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으로 엮어 놓았다.
2부는 소설적인 성격보다는 수필적인 성격이 더 강하게 느껴진다. 실재의 사건과 실존했거나 실존하고 있는 인물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으며 읽는 즐거움보다는 발견하는 기쁨을 주기 때문이다. 같은 실존 인물이라도 복거일, 최종천 등 몇몇 인물은 실명을 그대로 쓰고 대부분은 가명을 쓴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생각에는 한 계층을 대표할 수 있는 문제적 인물만 실명을 그대로 쓴 것 같다. 소설의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부에서는 독고준의 인물됨에 초점을 맞추었다.
3부는 독고준의 삶에 대한 해석이다.
서술자는 독고준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말로 자유, 균형, 소수자(차별)을 제시한다. 독고준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는 자유이며, 민중이기를 거부하면서 소수자를 옹호한다. 자신도 문단 내에서 소수자에 속하며, 특정 종교인인 아내, 레즈비언인 큰딸, 이혼남과 결혼하는 막내딸 등 가족 자체가 소수자들의 집합체이다. 그리고 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서 필수적인 요소가 균형 감각이라고 믿었다. 무엇이든지 극단을 지향하게 되면 퇴행을 불러오듯이 모든 일에는 균형이 필요하고, 이 균형은 절제라고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독고준은 소수자로서의 자신의 자유를 추구할 수 없는, 균형이 깨진 극단의 세력 앞에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으로 죽음을 택한 것이다. 마치 전직 대통령이 그러했듯이...
글을 읽으면서 독고준이라는 이름에 자꾸 <광장>의 이명준 이미지가 겹쳐졌다. 독고준을 주인공으로 했다는 <회색인>, <서유기>를 구태여 읽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에게는 '참 글을 읽지 않았다'는 자괴감과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하는 교양서로 받아들여진다.
참고) 책에서 언급한 인물들
현우림 : 강준만, 남지수 : 김해화, 성학인 : 윤성학, 김현진 : 이순현, 김혜선 : 양선희, 안희준 : 이재무,
오서경 : 오규원, 한경미 : 김경미
복거일, 최종천, 조은, 한택수
폴 리쾨르, 모리스 토레즈, 마티아스 폴리티키, 빅토르 하라, 파스칼 키냐르(낯선 이들)
봄비 민족문학작가회의 순천 지부에서 내는《사람의 깊이》제5집을 읽다가 남지수 씨의 <아내의 봄비>라는 시를 만났다. 그 둘째 연은 이렇다. “시장 벗어나 버스 정류장 지나쳐 길가에 쭈그리고 앉아 비닐 조각 뒤집어쓴 할머니 몇 걸음 지나쳐서 돌아보고 서 있던 아내 손짓해 나를 부릅니다 냉이 감자 한 바구니씩 이천원에 떨이미 해가시오 아줌씨 할머니 전부 담아주세요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마다하는 할머니 손에 삼천원 꼭꼭 쥐어주는 아내.” 비오는 봄날, 화자는 장보러 가는 아내를 따라 우산을 받쳐들고 순천 시장엘 간다. 때는 파장 무렵이다. 서둘러 장을 본 아내는 장짐을 남편에게 들리고 뒤따라 걷는다. 앞서 걷던 남편이 뒤돌아보니 아내가 멀리서 자기를 손짓해 부른다. 아내는 길바닥에 야채를 벌여놓은 할머니와 함께 있다. 할머니는 우산도 없이 비닐 조각을 뒤집어 쓰고 있다. 할머니는 아내에게 냉이와 감자 한 바구니를 이천원에 떨이해 가라고 한다. 아내에게 냉이와 감자가 꼭 필요했던 것은 아닐 것이다. 아내는 빗속에서 장사하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냉이와 감자를 사는 것이리라. 그런데 아내 생각에 냉이ㆍ감자 한 바구니 통틀어 이천원은 너무 싸다. 아내는 짐짓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럽다며, 봄비 값 천원을 쳐서 할머니 손에 삼천원을 쥐어준다. “빗방울 맺힌 냉이가 너무 싱그러운데/ 봄비 값까지 이천원이면 너무 싸네요.”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부분일 이 두 행을 뭉클한 유쾌함으로 되풀이 해 읽었다. 부부는 냉이와 감자를 마저 들고 횡단보도를 건넌다. 되돌아보니 할머니는 꾸부정한 허리로 아직도 아내를 바라보고 있다. 할머니의 눈길은 고마움의 눈길일 것이다. 화자는 그 순간 생각한다. “꽃 피겠습니다.” 그 꽃은 빗방울 맺힌 냉이만큼이나 싱싱한 꽃일 것이다. ‘아내의 봄비’에서 화자의 아내가 실천하는 것, 그리고 화자가 흐뭇하게 공감하는 것은 가난한 사람들끼리의 소박한 사랑이다. 사랑이라는 말이 거창하다면 그것을 연민이랄 수도 있을 것이다. 자기보다 힘든 이웃에 대한 연민 말이다. 만약에 인간사회가 진보해 왔다면, 그 진보의 과정이란 그런 연민의 확산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고운 연민의 마음은 이 노동자 시인이 다른 시들에서 자주 보여주었던 강인하고 헌걸찬 분노의 마음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비가 내릴 듯하다. 2002.4.19 金 ************************************************************************************* ‘독고준’을 읽다가 음미해 보고 싶은 부분이 있어 옮겨 봅니다. 메마른 나의 가슴에도 촉촉한 봄비가 내리는 듯했습니다. (김해화님의 ‘아내의 봄비’를 소재로 한 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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