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선 수행법의 일종으로서 화두(話頭)를 사용하는 선법.
간(看)이란 본다는 뜻이며, 화(話)는 화두를 말한다. 초조(初祖)인 보리달마(菩提達摩) 이래 중국의 선종은 인도의 선정(禪定)과는 매우 다른 독특한 양식의 수행법을 주장하였는데, 그것은 "곧바로 자기의 마음으로 향하여 그 본성을 보아 불타를 이룬다"(直指人心見性成佛)는 것이다. 보리달마 이후 오조(五祖) 홍인(弘忍)에 이르기까지는 단일한 계보로 이어왔으나, 이후 점수(漸修)를 주장하는 신수(神秀)의 북종선(北宗禪)과 돈오(頓悟)를 주장하는 혜능(慧能)의 남종선(南宗禪)으로 분파되었다.
초반에는 북종선이 우세하였으나, 안녹산의 난 이후 혜능의 제자인 신회(神會)의 활약으로 남종선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었다. 남종선은 다시 그 종풍에 따라 분파되어 임제종(臨濟宗)·조동종(曹洞宗)·법안종(法眼宗)·운문종(雲門宗)·위앙종(潙仰宗)의 오가(五家)를 형성하였다. 이 가운데 임제종이 가장 융성하였으며 선종의 정통으로 남았다. 고요히 앉아서 좌선하는 묵조선(默照禪)과는 달리 화두를 들고 철저대오(徹底大悟)하는 간화선은 당대 조주종심(趙州從諗)선사의 "개에게는 불성이 없다"(狗子無佛性)는 화두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오로지 화두만을 보는 것으로 수행의 방법을 삼아 이를 극력 제창한 사람은 송대에 임제종의 정통을 이은 대혜종고(大慧宗杲) 선사였다. 조동종의 묵조선에 반대하는 그의 활약에 힘입어 간화선은 임제종의 정통적인 수행법이 되었으며, 임제종의 융성과 함께 극히 성행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에 보조국사 지눌(知訥)이 대혜의 간화선을 받아들였으며, 〈간화결의론 看話決疑論〉을 저술하여 이를 널리 폈다. 이후 제자인 진각국사 혜심(惠諶) 등에 의하여 계승, 발전되면서 간화선은 우리나라 선수행의 정통적인 방법으로서의 위치를 확고히 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