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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제산에서

취미활동/등산

by 빛살 2007. 9. 5. 2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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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운제산에 올랐다.
오천에 살 때는 한 달에 서너 번은 올랐던 발에 익은 산이다.
내일이면 대학수학능력시험.
세상사 모두가 그런가.
한쪽이 애를 태우며 고생할 때, 한쪽은 여유를 부리며 산행이나 하고...
모쪼록 수험생들에게 행운이 있기를

 

 

제법 긴 코스를 택했다.
수정사 입구에 나의 애마 마티즈를 세워두고 산행을 시작했다.
다른 등산로보다는 사람의 왕래가 뜸한 곳이라 낙엽이 제법 쌓여 있었다.
비가 온지 이틀 정도밖에 안 되었지만 건조한 늦가을 바람에 가랑잎들이 바짝 말라 있었다.
밟을 때마다 '바스락 바스락' 소리가 난다.
나도 저 낙엽처럼 세월의 바람에 떨어져 땅에 누워 있을 날이 있겠지.
지금의 나처럼 그 때의 나를 '바스락 바스락' 소리 나도록 밟고 가는 존재가 있을까?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자장암에 도착했다.
화장실, 요사채, 암자의 지붕 등 많은 것들의 모습이 바뀌어 있었다.
자장암 뒤쪽으로 가니 예전에는 없었던 석가모니 진신사리탑이 있었다.
정말 귀한 것들은 항상 현상의 뒤쪽에 숨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아래를 굽어보았다.
그리 높지 않았지만 가슴이 확 트인다.
알량한 자존심과 몇 푼 안되는 이익을 좇아 바둥대는 나의 모습이 보인다.
높은 곳에서 볼수록 시계는 넓어지는데, 왜 내 자신은 한없이 초라해질까.


 

 

자장암은 그대로 거기에 있었다.
태풍 매미 때문에 무너지고 날아가고 해서 모습은 바뀌어 가고 있었지만,
인간들이 더하고 보탠 것은 겉모습일 뿐.
천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자장암은 옛날 그대로의 자장암이었다.
그 이야기의 끝자락을 마음에 묻으며 내려왔다.

 

 

절을 찾는 사람들.
저마다 소중한 바람들을 가슴에 품고 왔겠지.
수백 년은 되었을 저 나무들도 각자의 꿈과 욕망으로 모습을 바꿔가고 있는데
길어야 일백 년 살 우리 인간들이야.....

 

 

다리를 건너 원효암으로 가고 있다.
귀족 중심의 불교를 거부하고 민중에게 불법을 전파하던 원효.
뒤돌아 보니 그를 닮은 듯 수수하기만 한 오어사의 전경이 눈에 들어 온다.
아무렴, 종교는 몸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존재해야지.
 

 

원효암으로 가는 길은 나무로 된 터널을 지나는 기분이다.
여름에는 우거진 나무들로 한낮에도 어둡다.
원효암에 이르니 처마에 걸린 곶감부터 눈에 들어온다.
정다운 이야기들이 주렁주렁 걸려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제부터 나의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원효암 옆에 나 있는 제법 가파른 오솔길을 오른다.
낙옆이 쌓여 있는 습지를 지나 계속 능선을 탄다.
헬기장에서 영일만을 바라보며 잠시 쉰다.
계속 대왕바위가 나를 따른다.
예전에는 낙옆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거센 바람 때문인지 낙옆을 구경하기가 힘들다.
약간은 아쉬웠다.


 

 

오늘 산행 중 가장 힘든 길을 오르고 있다.
산여 계곡에서 대왕바위를 오르는 길.
입산금지 팻말이 있었지만 무시하고 올라갔다. 신령님이시여, 용서하소서.
옛날에는 제법 사람들의 손을 탓지만 길이랑 로프를 보니 요즘은 사람들의 발길이 뜸한 것 같다.
저 멀리 경주쪽으로 산이 연이어 있었다.
 

드디어 대왕바위에 도착했다.
까마귀들이 맞이해 준다.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을 찾아 날아 온 것일까.
나 또한 자연이 흘린 음식 찌꺼기를 찾아 나선 한 마리 까마귀에 불과한 존재는 아닐지....
 

이제부터는 거의 내리막길이다.
한 시 조금 넘어서 시작한 산행을 5시 조금 넘어서 마쳤다.
4시간의 산행이었지만 일요일 상주곶감마라톤대회에서 하프를 뛰어서 그런지 제법 힘이 들었다.
하지만 겨울을 나기 위해 잎들을 떨구고 있는 나무들을 보면서
나의 삶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좋은 시간이었다.

2004-11-30 15: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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