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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학산에서

취미활동/등산

by 빛살 2013. 3. 19.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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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 항암 후 요런 차림으로 꾸준히 뒷산에 올랐다.

숙면, 섭생, 운동이 항암의 기본이라고 한다.

몸은 무겁지만 밝은 햇살- 음, 비타민D 합성으로 암치료를 돕는다지-

맑은 공기

나날이 색깔을 다리하며 언제나 그 자리에 있는 나무들

한결 기분이 좋아진다.

이번 일은 어쩌면 나에게 하늘이 내린 축복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2월 하순부터 목청이 덜 터진 개구리 소리가 들린다.

예전에는 듣지 못하던 소리다.

암에 걸려 프레드니소론정을 듬뿍 먹은 개구리 같다.

엄지손가락 크기 정도 되는 놈들이 알은 소담히도 쏟아 놓았다.

뱀에게도, 새에게도, 인간에게도 잡아 먹히지 말고 무럭무럭 자라나거라.

아, 너희들은 인간들의 몫으로 정해졌구나! 

양식장의 개구리니까.

 


산행 첫 날 발견한 야생화.

그 이름은 복수초.

이름 한번 무시무시하구나.

하지만 福壽草

복과 생명의 풀이라고 할 수 있겠지.

자신의 열로 주위의 눈을 녹이면서 꽃을 피우는 꽃이라고 한다.

심장 등에 좋아 약초로도 쓰이는데 독이 있어 잘 복용하지 않으면 골로 갈 수 있단다.

며칠 이 한 송이 꽃에만 정신이 팔려 있었는데 살짝 눈을 돌리니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있었다.

가히 복수초 군락지라고 할 수 있다.

넓게 볼 일이다.

넓게 볼 일이다.



나의 쉼터.

쉬도 하고, 물도 마시고, 맛 좋은 두유도 먹고.

혼자서 쉬고 있는데 까치가 동무해 주러 내려 왔다.

'헤이' 반갑다고 소리치니 '조까치'하며 날아간다.

딱따구리는 딱따굴하면서 나무를 쪼고

멋대가리 없는 꿩들은 푸드득 날아가 버린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조잘거리는 새들의 소리가 정겹다.

내 마음도 허공을 난다.



양학산에서 사람들이 가장 많이 다니는 코스를 걸었다.

햇볕과 바람을 가리는 빽빽한 소나무 때문에 조금은 썰렁한 기운이 돈다.

고개를 숙이면 길이 넓찍해 먼지 풀풀 나는 흙만 보이고

고개를 들면 아줌마 궁디만 눈 앞에서 실룩거린다.

에이, 볼 게 없다. 재미없다.

시불거리면서 걷고 있는데  

우리 아파트와 그다지 떨어지지 않은 곳에 '편백나무군락지'라는 팻말이 보인다.

화살표 방향으로 내려가는 길이 제법 험하다.

해송과 편백이 섞여 있고 대성사까지 길게 늘어져 있어 산림욕 효과까지야 있겠나 싶었다.

그냥 희소성의 가치지, 뭐.

지난 일본 여행이 생각난다.

히노끼, 일본인들은 편백을 이렇게 부른다지.

경제활동을 하지 않아도 일본인들이 5년 동안 먹고 살 수 있을 정도의 산림자원을 보유한 나라.

그 수종의 하나가 편백나무라고 한다.

울 나라 잘 사는 사람들 건축 목재로도 많이 사용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다.

항암이 끝나면 남해에 있다는 편백나무휴양림에서 며칠 푹 쉬었다가 와야겠다.

다시 올라오느라고 힘 좀 뺐다. 



내가 다니는 길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

생강나무꽃이다.

강원도 춘천 사람인 김유정의 <동백꽃>에 나오는 꽃이다.

'알싸하고 향긋한 노란 동백꽃 냄새'

산골에 왠 동백꽃? 거기다가 노란색?

생강나무꽃을 춘천 산골에서는 동백꽃이라고 했나 보다.

여하튼 아짐씨들 바람나기 좋은 계절이 돌아왔다.



황대권의 <야생초 편지>를 읽고 지금까지 나는 이 꽃이 딱지꽃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양지꽃이었다.



요건 남산제비꽃



요건 알지.

먹으면 먹을수록 취하는 꽃.

오늘(19일) 올라가니 활짝 피었던데 핸펀이 없어서 이 걸로 대신.


이렇게 산을 오르락내리락하니 어느새 항암도 2차가 끝났다.

나에겐 항암 후 5일이 가장 힘들다.

그 노무 프레드니소론정 때문에.

항암주사에 지지 말라고 생명력을 북돋우기 위해 먹는 약인데 스테로이드제이다.

운동선수들이 힘을 내기 위해 먹는 약이기도 하지.

기아의 모 야구선수가 이 약을 먹어 문제가 되기도 했다는데......

우선 목소리가 가라앉고, 몸이 후끈후끈거리고, 혈당이 제멋대로 오르고, 잠도 안 오고,

그래도 피곤하지 않고, 가끔씩 한밤중에 거시기도 불끈거리고....

그러다 보니 몰골이 이렇게 변했다.

면도 안 해도 될 정도, 눈썹만이라도 지키고 싶은 간절한 이 마음! 

이 참에 그냥 산사람이나 될까.



이 대나무 터널을 빠져 나오면 나의 산행도 끝


양학생활체육운동장에서 마무리 운동을 하고

이제는 할머니들 궁디 보면서 옷과 신발을 털고 

나의 애마 풋사과색 마티즈를 몰고 집으로 온다.

샤워를 하고 나면 한나절은 그냥 지나간다.

 

저 꽃이 붉은 열매로 알알이 맺혀 갈 때쯤

나의 영혼도 어느 정도는 발갛게 피어나도록 힘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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