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늦게 일어나 빈둥거렸다.
잘못하면 하루 종일 빈둥거릴 것 같아 점심을 먹고 아내랑 집을 나섰다.
신항만을 거쳐 바닷가를 따라 북쪽으로 쭉 올라갔다.
유난히 더운 여름이다.
영덕 해맞이 공원과 풍력발전소 단지에 들렸다.
지금껏 신돌석 장군(1878.11.3.-1908.11.18)은 일자무식의 사냥꾼 출신인 줄 알았다.
그래서 유생 중심의 의병활동에서 배제된 줄 알았다.
오늘에서야 서당까지 다닌 평민 출신이라는 걸 알았다.
신 장군의 丹心인 듯 생가에 피어 있는 무궁화
충의사 사당에 모셔져 있는 신장군의 영정
30살에 운명하셨으니 청년의 모습 그대로이다.
충의사 전경
유물 전시관에서
울진 월송정에서 민족의 앞날을 걱정하는 모습과 그 마음을 표현한 시
월송정에 오른 나그네 갈 길을 잊은 채
낙목이 가로누운 단군의 옛 터를 탄식하네.
남아 스물일곱 이룬 것이 무엇인가
잠시 가을 바람 맞으며 감회에 젖네.
부하이자 고종사촌 동생인 김상렬 형제에게 도끼와 떡매로 살해되는 모습
현상금이 탐나 민족의 영웅을 죽였으나
일본 경찰들에게 죽여서 왔다고 욕만 먹었다고 한다.
지하에서나마 편안하실까?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 고생한다는 말처럼
유족은 지금도 가난에 찌들리고 있다고 한다.
반면 지역 출신 매국노 문명기의 후손들은 지금도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고.
무더운 날씨라 주차장이 텅 비어 있었다.
그래도 유물 전시관 방명록에는 20 명 가까이 서명이 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