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옥천사에서

취미활동/국내여행

by 빛살 2012. 11. 4. 19:44

본문

 

26일간을 병원에서 지내다가 지난 달 26일 퇴원을 했다.

집에 와서 물을 바꿔 그런지, 심신이 쇠약해져서 그런지 밥만 먹으면 두드러기가 나 고생을 했다.

29일부터 에스병원 부근에 있는 조익피부과의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 중에서 가장 편한 의사가 피부과 의사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응급환자 없지, 잘못 진료해도 목숨과 상관없지, 쉽게 낫지 않아 손님 끊길 염려 없지...

간단히 주사 한 대 맞으면 나을 줄 알았는데 내일도 또 오란다.

 

철길을 따라 타박타박 걷고 있노라니 여기저기 피어 있는 나팔꽃이 눈에 뜨인다.

여름날 아침 일찍이 피었다가 한낮이 되면 지고 말아 서양에서는 '아침의 영광(morning glory)'이라 불리는 꽃인데, 이 서늘한 가을날 오후에 활짝 꽃을 피우고 있다니!

지금 이곳 생태계도 내 몸처럼 혼란을 겪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바람에 흔들리고 있는 꽃들을 보면서 생명의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가을인가 보다.

 

 

왜일까?

나도 모르게 절 안으로 발걸음이 옮겨졌다.

98년 무렵에 양학동으로 이사를 와 이 절옆을 무수히 지나쳤지만 오늘에야 절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이런 게 인연일까?

'성취문'이라는 현판이 좀 세속적이라고 생각하면서 문을 들어서니 대웅전이 바로 눈앞에 있고 오른쪽으로 옥천연화정이라는 특이한 건물이 있었다. 가서 확인해 보니 복을 비는 곳이었다.

다시 대웅전 왼쪽으로 돌아가니 기념식수비가 있었다.

 

티베트 왕사 링린포체가 불기 2535년 5월 13일 이곳에 와서 나무를 심은 것을 기념하는 비였다.

기념비 뒤의 둥근 나무를 링린포체가 심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불기 2535년은 서기 1991년에 해당한다.

'10여 년의 세월이 흘렀는데도 무슨 나무이길래 이렇게 키가 작을까'라고 생각하며 주위를 살펴보았지만 이 나무 이외에는 기념할 만한 나무는 없었다.

 

집에 와서 검색을 해 보았다.

옥천사 카페를 찾을 수 있었다.

나무를 심은 주인공, 링린포체이다.  당시 나이 8세.

에게, 이런 어린 스님이 이름만 들어도 경건함이 느껴지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

 

달라이 라마는 '바다와 같은 지혜를 가진 스승'이라는 뜻으로 티베트의 정치적 왕이자 종교적 지도자의 명칭이다.  

티베트 사람들은 달라이라마를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긴다.

지금의 달라이라마는 14대인데, 알고보면 1대에서 지금까지 달라이라마는 단 한 사람이다.

1대가 죽은 뒤 환생을 하여 2대가 되고, 2대는 다시 환생하여 3대가 되고해서 지금까지 이어진다고 티베트 사람들은 믿고 있다.

달라이라마의 일대기를 다룬 '쿤둔(kundun-달라이 라마의 또 다른 이름)'이라는 영화를 보면 환생하여 왕이 되는 과정을 어느 정도 엿볼 수 있다.

 

린포체는 '환생이 확인된 승려'를 가리킨다. 살아있는 부처라는 의미에서 활불(活佛), 생불(生佛)이라고도 한다.

링 린포체는 달라이 라마의 스승으로 22번이나 환생을 거듭했다고 한다.

전생의 나이까지 다 합치면 링린포체의 나이는 몇 살이나 될까?

과연 환생은 있는 것일까?

내 짧은 소견으로는 판단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신비롭기만 하다.

 

사진을 보면서 나무의 비밀을 풀었다.

링린포체가 심은 나무는 죽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 기념비를 세운 것이다.

갑자기 허탈해지는 건 무슨 까닭일까?

 

다른 절에서는 보기 힘든 제단이다.

일종의 암석 숭배, 거석 숭배라고 할 수 있겠지.

중앙의 알처럼 또는 태양처럼 둥근 돌은 생명력을 의미하고, 단단한 돌들은 영속성을 의미하는지도 모르겠다.

참 묘한 절이다.

 

 '여기서부터는 제당입니다. 올라가지 마세요'라는 글 중에서 '제당' 때문에 한참을 헷갈렸다.

내가 알기로는 제당은 제사를 지내는 당집으로 무속적인 성격이 강한 건물인데 어떤 곳이기에 출입까지 금지시킬까?

나중에 확인하니 齋堂은 '제당'이 아니라 '재당'이다. 齋(재계할 재)와 齊(가지런할 제)를 혼동한 것이다.

사전을 찾아보니 재당은 '선사의 식당'으로 나온다.

허걱, 대체 선승들이 무엇을 먹길래 사람들의 출입을 막을까?

이상한 상상을 하다가 이내 생각을 고쳐 먹었다.

사십구재와 같이 재를 올리는 신성한 공간, 이렇게 해석을 하니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가을날 늦은 오후,

야윈 햇살 속에서 아직 두드러기가 낫지 않아 근질근질한 몸으로 경내를 떠돌았다.

방장산 터널로 올라가는 찻소리가 가끔씩 귓가를 스칠 뿐 조용하다.

갈비뼈만 아니면 정중하게 허리라도 숙였을텐데 고개만 까딱거렸다.

조금은 가라앉은 마음으로 보광문을 나서 이제는 흉물이 되어버린 신도브래뉴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조금가다가 왼쪽으로 돌아보니 아, 관세음보살. 그리고 '옴 마니 반메 훔' 

 

 

관세음보살 본심미묘 육자대명왕진언 '옴 마니 반메 훔' 

"옴 - 연꽃(般若) 속의 보석(方便)이여! - 훔(이 완전한 합일이여)”

'취미활동 > 국내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의성 고운사  (0) 2015.02.13
송구영신 여행  (0) 2013.01.01
신돌석생가  (0) 2010.08.21
봉하마을 방문  (0) 2010.07.28
부처님 오신 날에  (0) 2010.05.23

관련글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