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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 여행

취미활동/국내여행

by 빛살 2013. 1. 1. 2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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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오전 10시 20분에 포항을 떠나서

오후 4시쯤 변산반도에 있는 '솔향에 취한 바다 펜션'에 도착했다.

시커먼 하늘에서 펑펑 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모처럼 기름진 돼지고기 바베큐로 저녁 식사를 하고 풍등에 소원을 적어 하늘로 날려 보냈다.

함박눈 속에서도 힘차게 솟아 올라 이내 서해 바다로 사라져 버린다.

마치 어린 시절의 눈 내리는 밤처럼 마음이 설렜다. 

잠을 자다가 많이 뒤척였다.

 

 

2012년의 마지막 날.

눈을 뜨자마자 문을 열고 날씨를 살폈다.

눈은 지치지도 않고 계속 퍼붓는다.

테라스의 난간 위에도 지붕 위에도 소복히 쌓였다.

TV에서는 20cm의 적설량이란다.

하얀 눈 세상에 갇혀 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다.

 

 

아침밥을 먹는데 방 안이 무척이나 환했다.

눈빛 때문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밖으로 나오니 맑은 하늘에서 햇살이 쏟아지고 있었다.

눈은 더욱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우리가 묵은 펜션 바로 앞에 있는 집들이 동화 속 풍경처럼 아름답다.  

 

 

엊저녁 기름진 음식에 탈이 났는지 막내가 끙끙댄다.

맏이에게 간호를 부탁하고 아내랑 내소사를 찾았다.

길은 거짓말처럼 깔끔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찾아오는 사람마다 소생하기를 바란다」는 발원으로 절 이름을 내소사(來蘇寺)라 했단다.

일주문을 들어서자마자 펼쳐지는 전나무 숲길.

많은 사람들이 모두 즐거운 표정으로 걷고 있었다.

쭉쭉 뻗은 나무와 달리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천왕문을 들어서자 본격적인 절의 풍경이 펼쳐진다.

누구나 한 번쯤은 국사나 미술책 등에서 보았을 대웅보전의 창살 무늬로 유명한 절.

규모가 아담하고 절집들이 수수하지만 품격이 느껴진다.

 

 

개인적으로 이 절집 중에서 가장 정감이 가는 건물이다.

왼쪽은 스님들의 공부방인 '설선당', 오른쪽은 스님들의 거처인 '요사채'이다.

산봉우리의 높이에 맞춰 지은 지붕들이 조상님들의 자연친화 사상을 잘 보여준다.

자연에 순응하고 자연과 어울릴 줄 아는 겸허함도 읽어 낼 수 있다.

곧은 기둥으로 단정하게 나뉘어진 벽면이 몬드리안의 추상화를 떠오르게 한다.

그러나 왼쪽 벽면의 굽은 기둥 하나가 파격을 이루며 한국적인 미를 표현하고 있다.

내 마음 속의 풍경으로 오래 기억될 것이다.

이번 여행은 여기서 끝나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막내가 걱정이 된다고 해서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아내가 막내 간호를 하기로 하고, 맏이랑 채석강엘 왔다.

다시 눈이 내리기 시작한다.

채석강은 말 그대로 강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통해 바닷가라는 것을 확인했다.

썰물 때 와야 제대로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적벽강도 해변이었다.

하지만 찾아가는 길이 눈에 덮여 있어 가질 못했다.

 

 

새만금방조제를 찾았다.

군산쪽까지 갔다오리라 마음을 먹고 차를 몰았다.

일직선으로 곧게 뻗은 길을 10분 이상 달려도 어디쯤인지 분간이 되지 않는다.

지루하고 졸립고 볼 것도 별로 없고 해서 15분쯤 달리다 유턴해서 다시 돌아왔다.

길어도 너어어~어~무 길었다.

오토캠핑장에서 해넘이 행사를 한다는데 캠핑장은 보이지도 않았다.

날씨 때문에 해넘이도 볼 수 없겠지만.....

 

 

내리는 눈 속에서도 아주 잠깐 동안 해님이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2012년이 사라지기전 마지막으로 보내는 손짓 같았다.

해님 덕을 톡톡히 본 하루였다.

 

 

1월 1일 새해.

방안에서 밤새 내린 눈을 보며 체인을 감을까 말까 고민을 했다.

그러나 밖으로 나와 눈이 녹는 것을 보는 순간 고민이 사라졌다.

 길은 녹은 눈으로 엉망진창이다.

갈 길이 멀더라도 새해 첫날 마음도 다질 겸 석정문학관에 들르기로 했다.

바로 길옆이라 찾기도 쉬웠다.

소박한 문학관 건물 한 채와 고택 한 채가 전부였다.

눈에 덮여 있어 정갈한 맛이 났다.

아쉽게도 문을 열지 않았다.

 

 

 

 

문학관 건물 맞은편에 있는 고택이다. 겉모양은 말 그대로 초가삼간이다.

일제 강점기 때 친일하지 않은 우리 문학인들은 이육사, 윤동주 등 몇 안 된다.

그 중에 한 사람이 신석정이다.

석정은 민족적 양심을 지켜 창씨개명도 거부했다.

왜, 갑자기 다까기 마사오, 오카모토 미노루가 떠오르는지 모르겠다.

 우리말과 글을 쓰지 못하게 하자 절필하고,

조용히 전원에 묻혀 조국이 광복 될 날만 기다려왔다.

우리는 문학적 성과를 바탕으로 일신의 영달을 위해 권력에 빌붙고, 

거친 정치적 언사를 토해내는 인사들을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석정은 가난 속에서도 오로지 시와 교육으로 일생을 보내신 분이다.

산처럼 살기를 바라시던 분.

시 한 편을 가슴에 새긴다.

 

 
들ㅅ길에 서서
 
푸른  山이  흰  구름을  지니고  살듯
내  머리  위에는  항상  푸른  하늘이  있다.
            
하늘을  향해  森林(삼림)처럼  두  팔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崇高(숭고)한  일이냐
 
두  다리는  비록  연약 하지만  젊은  산맥으로  삼고
不絶(부절)히  움직인다는  둥근  地球(지구)를  밟았거니……
푸른   山처럼   든든하게   地球를   드디고   사는  것은   얼마나   기쁜   일이냐
 
뼈에  저리도록  「生活(생활)」은  슬퍼도  좋다
저문  들ㅅ길에  서서  푸른   별을  바라 보자……
 
푸른  별을  바라보는  것은  하늘  아래  사는  거룩한  나의  日課(일과)일거니……

 

 

        새해에는 좀더 조화롭게 외부 세계와 소통하면서도 내 자신을 잃지 않도록 노력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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