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니치 가이호교(千日回峰行-1,000일간의 마라톤)02

 

 

 

히에이에 있던 수도승들은 천태종 승려들이다. 도보 순례는 명상, 지식 전수, 자기 희생, 자연 숭배, 선한 행실 등, 천태종의 모든 측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히에이에 있는 여러 사찰 중 한 곳의 주지가 되려면 연속 100일간의 순례 수행을 해야 한다.

 

초심자들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들과 동행하여 순례에 나선다. 지침서와 은밀한 구두 지시, 지형과 산길에 대한 필수 정보들을 얻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홀로 순례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수도승은 흰 옷을 입고, 허리에는 밧줄을 두르고 단도를 차야 했는데, 그것은 만일 이 시험 과정을 완수하지 못할 경우 자살을 각오해야 함을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한다.

 

수도승은 자정에 일어나서 1시간 내지 1시간 반 이후에 수행의 첫 단계를 시작하게 되어 있다. 그는 짚신을 신는데, 짚신은 빨리 해져버리기 때문에 하루에 많으면 다섯 번을 바꿔 신기도 한다. 건조한 날씨에는 며칠을 가기도 하지만, 비가 쏟아질 때는 몇 시간만에 신이 다 망가져버리기 때문에 수도승은 여벌로 몇 켤레를 더 가지고 다닌다. 비와 눈은 최악의 적이다. 신발을 망가뜨리고, 속도를 떨어뜨리고, 산길을 휩쓸어버리고, 호롱불을 꺼버리기 때문이다. 가장 심한 장마철에는 옷이 마를 날이 없다. 옷과 모자는 절대 벗어서는 안 되고, 주어진 경로는 한 치도 어긋남이 없이 노예처럼 졸졸 쫓아가야 하며, 먹거나 쉬기 위해 멈추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기도와 노래도 제대로 이행되어야 한다.

 

하루에 달려야하는 총거리는 18～25마일(29～40km)정도로, 도중에 불상, 성스러운 나무, 바위, 산마루, 폭포, 작은 연못 등에 도달했을 때는 몇 초 혹은 몇 분간 멈춰 서서 합장하고 기도한 후 서둘러 갈 길을 가게 된다. 수도승은 아주 빠르게 달리지는 못하는데, 멈추어야 할 장소가 255군데나 되고, 험준한 지형이 순례의 속도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순례는 날씨에 따라 아침 7시나 8시까지 계속된다. 고참 승려들은 젊은 수도승이 돌진하듯 급하게 내달리는 것을 못마땅해 하는데, 몸이 튼튼하고 발이 가벼운 것도 훌륭한 일이기는 하지만 올바른 예법을 갖추는 것도 못지않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도하고, 목욕하고, 점심 먹고, 사찰의 일들을 처리하고, 저녁식사를 한 후 수도승은 8시경 잠자리에 든다. 100일간 이런 과정이 반복되는데, 65일째에서 75일째 사이의 열흘간은 달리는 거리가 35마일(56킬로미터)로 늘어나고, 그 경로가 백만의 인구가 사는 교토(京都)를 관통하게 된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함으로써 수도승은 자신의 노력이 또한 바깥세계를 이롭게 하는 것임을 깨달을 수 있게 된다.처음 2주나 3주는 초심자들에게는 최악의 시간이다. 많은 것들을 기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안개 때문에 시계(視界)가 흐려지는 경우가 다반사인 산악지대에서 산길을 따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발이 짓무르고, 근육이 경직되고 열이 오르며, 설사 때문에 고통을 겪고, 엉덩이와 다리에는 통증이 생긴다. 한 달이 지나면 몸은 이렇게 반복되는 과정에 익숙해지기 시작하고, 두 달 정도가 지나면 수도승은 마음이 편하고 느긋한 상태가 된다.

 

열망이 큰 수도승들에게는 100일은 그저 준비 기간에 불과하다. 몇몇은 이 수행 과정을 1,000일 동안 실행하고 싶어 하며, 7년간 성스러운 마라톤을 뛰겠노라 맹세한 이도 있다. 처음 5년 동안에는 일곱 번의 100일 수행이 진행되고 그때마다 매일 25마일을 달린다. 6년째에는 거리가 38마일로 늘어난다. 마지막 해에는 정점에 이르는데, 100일 동안 하루에 52마일(84킬로미터)씩을 뛰고, 끝내기 전에 ‘간단히’ 25마일 달리기로 마무리 한다. 그 단계에 이른 수도승은 총 2만 9107마일(4만 6843킬로미터)을 달리는 셈이 된다.

<러닝-한 편의 세계사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