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5년 이래로 모두 46명의 남성들이 1,000일을 채웠다. 2명의 수도승은 이 과정을 두 번 치러냈고, 한 사람은 2,500번째 날에 자살했다. 또 승려 오쿠노 겐준은 이 과정을 세 번이나 완수해냈지만, 지게에 실려서 다닌 마지막 세 번째 수행 때는 매일 달리지 않았다. 이 수행을 치르는 수도승은 대부분 삼십대였지만, 사카이라는 수도승은 2,000번째 날에 예순한 살이 되었다. 이 수련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고 자살 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중간에 쓰러져 죽은 수많은 무명 수도승들의 무덤이 그 길을 따라서 여기저기에 만들어져 있다.
이 승려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운동선수들은 아니지만, 나무를 팬다거나 무거운 것을 들어 옮기는 일 같은 육체적인 노동과 채식을 곁들인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을 통해 체력을 단련하고 힘을 길렀다. 아침식사는 오전 1시 30분에 했는데 대개 국수나 밥, 감자, 콩, 채소, 꿀, 견과류 등을 섭취했다. 하루 다섯 번의 소식(小食)은 매일 마라톤을 완주해낼 수 있는 충분한 칼로리와 에너지를 공급했다. 히에이 산의 베테랑 가운데 한 명이었던 사카이는 하루 25마일을 달릴 때에도 매일 딱 1,450칼로리(보통 성인 남성 2,300~2,500칼로리)만을 섭취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건한 체력을 유지했다. 그들이 영적인 기질이 그런 체력과 인내심의 원천이었다. 1,000일의 수행을 완수한 사람들은 가장 높은 불교 성인의 지위를 누리게 된다.
이러한 고된 의식은 불교의 가르침에 견주어 이해되어야 한다. 불교의 가르침은 지력만으로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드시 육체적으로도 경험되어야 하는 것이다. “너의 눈을 통해 배우고, 너의 다리로 수련하라.” 이렇게 수도승의 수련은 사람의 마음 안에 부처의 심성이 생겨나게 만든다.
히에이 출신의 인물들 가운데서 그야말로 가장 강인한 사람은 아마도 가난한 어부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하코자키 분노일 것이다. 어린 시절부터 허드렛일을 하며 방랑한 그는, 뚜렷한 삶의 방향도 없이 아무렇게나 살다가 한바탕 소동을 일으켜 감옥에 들어갔는데, 바로 거기서 영적인 자각을 하게 되었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그가 공원에서 목을 매려고 할 때 어떤 천태종 승려가 밧줄을 끊고 그를 히에이로 인도했다고도 한다. 그는 아내와 아이들을 친척들 손에 맡기고, 사람들에게 구걸을 해가면서 그 산으로 향했다.
사찰의 수도승들은 이 누더기 차림의 알 수 없는 사내를 받아들이는 것이 내키지 않았지만, 한 승려가 그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그렇게 해서 하코자키는 오쿠노 겐준을 실어 나르는 지게꾼이 되었다. 겐준은 다리를 못 썼고, 매일 도는 산길을 지게에 실려서 다녔다. 그러나 새로 지게꾼이 된 하코자키가 모퉁이를 너무 급하게 도는 바람에, 불구였던 겐준은 앉아 있던 자리에서 튕겨 나와 비탈로 구르고 말았다. 하코자키는 몹시 혼이 났고, 다른 절로 옮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 절 역시 그에게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나를 받아주지 않는다면, 그냥 죽어 버릴테다!” 하코자키는 이렇게 말하고 사찰의 출입문 앞에 주저앉았다. 그는 빗자루로 매를 얻어맞고, 얼음같이 차가운 물 양동이 세례를 받으면서, 먹지도 마시지도 않은 채 그 자리를 나흘이나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닷새째 되던 날, 절 사람들은 그를 안으로 들였고 그는 열성적으로 금욕적인 삶을 시작했다.
누구도 하코자키만큼 멀리까지 걷고 뛰지 못했고, 누구도 하코자키만큼 그렇게 많이 기도하고 일하지 않았다. 그는 산속의 계곡 틈새에서 홀로 지내려 했고,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에는 아무런 관심도 기울이지 않은 채, 결가부좌로 앉아서 자신의 활동들을 지속할 수 있게끔 원기를 회복하고 스스로 의지를 북돋웠다.
한 젊은 산악인이 쏟아지는 폭우를 피해 동굴 속의 은신처를 찾다가 뜻밖에 하코자키의 얼굴을 보게 됐다. 당시 9일 동안 단식 중이었던 하코자키는 마치 조각상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다. 하코자키를 보고 놀란 젊은이는 겁을 잔뜩 집어먹고 동굴에서 기어나와 마을로 내처 달아나버렸다고 한다. 하코자키는 주로 연말이 되면 자신의 몸을 정화하기 위해서 음식과 물 없이 잠도 자지 않으면서 9일간 단식 수행을 했으며, 그렇게 단식을 한 횟수가 적어도 서른여섯 번은 되었다.
9세기 이래로 지금까지 흰옷을 입은 수많은 수도승들이 히에이 산을 넘어 다녀 왔다. 금욕주의와 극기를 실천하고 규정된 의식을 치르는 동료집단의 구성원이 된다는 점에서 그들은 운동선수들과도 닮았다. 수도승들은 여전히 활동 중이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볼 때, 그들은 최고의 운동선수보다 더 극한에 이른 사람들이다.
수도승들은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인을 능가하고자 할 때 극한으로 치닫는다. 세계 최고의 주자들과 완강한 일본의 수도승들은, 아마도 자신을 돋보이게 만들고 탁월한 위업을 이루고픈 충동을 비롯해 몇몇 인간적인 동기들을 공유하고 있는 것 같다.
<러닝-한 편의 세계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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