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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의문학

한문/잡록

by 빛살 2011. 7. 10.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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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흠(申欽)(1566∼1628)

 

이정구(李廷龜)·장유(張維)·이식(李植)과 함께 '월상계택'(月象谿澤)이라 통칭되는 조선 중기 한문사대가(漢文四大家)의 한 사람이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경숙(敬叔), 호는 상촌(象村)·현헌(玄軒)·방옹(放翁). 아버지는 개성도사 승서(承緖)이며, 어머니는 은진 송씨로 좌참찬 인수(麟壽)의 딸이다. 7세 때 부모를 잃고 장서가로 유명했던 외할아버지 밑에서 자라면서 경서와 제자백가를 두루 공부했으며 음양학·잡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개방적인 학문태도와 다원적 가치관을 지녀, 당시 지식인들이 주자학에 매달리고 있었던 것과는 달리 이단으로 공격받던 양명학의 실천적인 성격을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문학론에서도 시(詩)는 '형이상자'(形而上者)이고 문(文)은 '형이하자'(形而下者)라고 하여 시와 문이 지닌 본질적 차이를 깨닫고 창작할 것을 주장했다. 특히 시에서는 객관 사물인 경(境)과 창작주체의 직관적 감성인 신(神)의 만남을 창작의 주요 동인으로 강조했다. 시인의 영감, 상상력의 발현에 주목하는 이러한 시론은 당대 문학론이 대부분 내면적 교화론(敎化論)을 중시하던 것과는 구별된다.

1585년 진사시·생원시에 합격하고, 1586년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했다. 1589년 춘추관원에 뽑히면서 사헌부감찰·병조좌랑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때에는 도체찰사(都體察使) 정철의 종사관으로 있었으며, 그 공로로 지평(持平)으로 승진했다. 이후 선조에게 뛰어난 문장력을 인정받아 대명(對明) 외교문서의 작성, 시문의 정리, 각종 의례문서의 제작에 참여했다. 1599년 큰아들 익성(翊聖)이 선조의 딸인 정숙옹주의 부마가 되었고, 1601년 〈춘추제씨전〉을 엮은 공으로 가선대부(嘉善大夫)가 되었다.

1608년 광해군이 즉위하자 한성부판윤(漢城府判尹) 예조판서가 되었다. 47세 때 계축옥사(癸丑獄事)가 일어나 선조로부터 영창대군의 보필을 부탁받은 유교칠신(遺敎七臣)의 한 사람이라 하여 파직되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정치권 밖에서 생활했다. 1616년 인목대비의 폐비사건으로 춘천에 유배되었다가 1621년 사면되었다. 이 시기에 문학을 비롯한 학문의 체계가 심화되어 〈청창연담 晴窓軟談〉·〈구정록 求正錄〉·〈야언 野言〉 등을 썼다.

1623년 인조반정과 함께 대제학·우의정에 중용되었다. 1627년 정묘호란이 일어나자 좌의정으로 세자를 수행하고 전주로 피난했으며, 같은 해 9월 영의정에 올랐다가 죽었다. 1651년 인조묘정에 배향되었고, 강원도 춘천의 도포서원(道浦書院)에 제향되었다. 63권 22책 분량의 방대한 〈상촌집〉을 남겼는데, 1981년 경문사에서 구두점을 찍어 영인본을 펴냈다.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yahoo 백과사전>

 

[한시]

 

桐千年老恒藏曲

梅一生寒不賣香

月到千虧餘本質

柳經百別又新技

 

오동나무는 천 년을 묵어도 제 곡조를 간직하고

매화는 평생을 춥게 지내도 그 향기를 팔지 않는다.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본바탕은 변하지 않고

버들가지는 백 번을 꺽여도 새 가지가 돋는다.

 

[시조]

*

곳지고 속닙나니 시졀도 변하거다

풀 속에 푸른 버레 나뷔 되여 나는듯다

뉘라셔 조화를 잡아 천변만화 하는고

 

<풀이>

꽃 지고 속잎 나니 시절도 변하는구나

풀 속에 푸른 벌레 나비 되어 나는구나

누가 조화를 부리어 이렇게 천변만화하는가

 

*

봄이 왔다 하되 소식을 모르더니

냇가에 푸른 버들 네 먼저 아는구나

어즈버 인간 이별을 또 어찌 하는가

 

<풀이>

봄이 왔다고 하나 소식을 몰랐더니

냇가에 푸른 버들 네가 먼저 아는구나

아아 인간 이별을 또 어찌 하는가

 

*

늦어 날서이고 타고 적을 못 보완자

결승을 파한 후에 세고도 하도 할사

차라리 주향에 들어 이 세계를 잊으리라

 

<풀이>

내 어찌 이리 늦게 태어나 태평한 태고적을 보지 못하였구나

새끼에 매듭으로 글을 삼던 때가 가니 세상에 고된 일이 많고도 많구나

차라리 술 많은 고장에 들어가 취하여 세상사를 잊어야겠다

 

*

술이 몇 가지요 청주와 탁주로다

다 먹고 취할선정 청탁이 관계하랴

달 밝고 풍청한 밤이어니 아니 깬들 어떠리

 

<풀이>

술의 종류가 몇 가지인가. 청주와 탁주 두 가지이다.

둘 다 마시고 취하면 그만이지 맑고 탁함이 무슨 상관인가.

달은 밝고 바람 맑은 밤이니 취하여 깨지 않은들 또 어떠랴.

 

*

남산 깊은 골에 두어 이랑 일어 두고

삼신산 불사약을 다 캐어 심근 말이

어즈버 창해상전을 혼자 볼까 하노라

 

<풀이>

남산 깊은 골짜기에 남 모르게 두어 이랑 밭을 갈아 놓고

삼신산에 난다는 불로초를 모조리 캐어다 심으며 하는 말이

아! 푸른 바다가 변해 뽕밭이 되는 오랜 세월을 혼자 누리리라

 

*

인간을 떠나니는 이몸이 한가하다

사의를 니믜차고 조기로 올라가니

웃노라 태공망은 나 간 줄을 몰래라

 

<풀이>

세상을 등지고 나니 이 몸이 한가롭다

도롱이를 걸치고 낚시터로 올라가니

우습다, 낚시꾼은 낚시에 빠져 내가 온 줄도 모르는구나

 

*

창 밖의 위석버석 임이신가 일어 보니

혜란 계경에 낙엽은 므스 일꼬

어즈버 유한한 간장이 다 그츨까 하노라

 

<풀이>

창 밖에 와삭바삭 낙엽 밟는 소리, 님이 오시는가 일어나 보니

혜란초 우거진 좁은 풀숲 길에 우수수 마른 잎만 떨어지고

아! 애간장이 타서 모두 끊어질 것 같구나

 

*

어젯밤 비 온 후에 석류꽃이 다 피었다

부용당반에 수정렴을 걷어 두고

눌 향한 기픈 시름을 못내 풀려 하느뇨

 

<풀이>

어젯밤에 비가 오고 나더니 석류꽃이 활짝 피었다

연꽃이 한창인 못 가 둔덕 위에서 구슬발을 걷어 올리고

누구 향한 사무친 근심을 풀어보려 하는 것인가

 

*

한식 비 온 밤에 봄빛이 다 퍼졌다

무정한 화류도 때를 알아 피었거든

어떻다 우리의 임은 가고 아니 오는고

 

<풀이>

한식날 밤에 비가 오고 나더니 산과 들에는 봄빛이 완연하다.

아무 뜻도 정도 없는 꽃과 버들도 꽃 피울 때를 알고 피었건만

어찌 우리 님은 한 번 떠나시고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시나.

 

*

헛가래 기나 져르나 기둥이 기우나 트나

수간모옥이 작을 줄 웃지 마라

어즈버 만산나월이 다 내 벗인가 하노라

 

<풀이>

서까래가 길거나 짧거나, 기둥이 기울거나 뒤틀리거나

서너 간 띠집이 작다고 비웃지 말아라

아! 저 산에 가득 퍼져 비친 달빛이 모두 내 벗인 것을

※ 만산나월(滿山蘿月)- 산에 가득 찬 덩굴에 비친 달빛

 

*

술 먹고 노는 일은 나도 왼 줄 알건마는

신릉군 무덤 위에 밭 가는 줄 못 보신가

백 년이 역 초초하니 아니 놀고 어찌하리

 

<풀이>

술 마시고 노는 일이 잘못인 줄은 나도 알고 있으나

신릉군 같은 이도 죽은 지 오래면 무덤이 밭이 되어 갈리는 것을 모르는가

백년을 산다 해도 하잘 것 없이 짧은 인생, 어찌 아니 놀 수 있겠는가

 

*

냇가에 해오라바 무슨 일로 서 있는다

무심한 저 고기를 여어 무엇 하려는다

아마도 한물에 있거니 잊었은들 어떠리

 

<풀이>

해오라기는 냇가에 무엇 때문에 서 있는 것이냐.

무심히 노는 저 물고기를 엿보아서 무얼 하려느냐

같은 물에 살고 있는 형편인데 잊고 내버려두는 것이 어떻겠느냐

 

1.갈래-풍자시

2.제재-당파 싸움

3.주제-당쟁을 그치고 서로 화평하기를 바람

한물-같은 조정

 

*

어젯밤 눈 온 후에 달이 좇아 비치었다

눈 후 달빛이 맑음이 그지없다

어떻다 천말부운은 오락가락하느뇨

 

<풀이>

어젯밤에 눈이 내리더니 눈이 멎자 달까지 밝게 비치고 있다

눈 위에 비치는 달빛이 한없이 맑도다

그런데, 어쩌자고 하늘가 저 구름은 오락가락하는 것이냐

 

*

초목이 다 매몰한 제 송죽만 푸르렀다

풍상 섞어 친 제 네 무슨 일 혼자 푸른

두어라 내 성이어니 물어 무엇하리

 

<풀이>

초목이 모두 잎 지고 눈에 덮였는데 솔과 대만이 푸르르구나

모진 바람 된서리가 섞여 휘몰아치는 때에 어찌 홀로 푸른 것이냐

그만두어라, 모두가 내 천성인 것을. 새삼스레 물어서 무얼하려느냐.

 

*

산촌에 눈이 오니 돌길이 묻쳤세라

시비를 열지 마라 날 찾을 이 뉘 있으리

밤중만 일편명월이 긔 벗인가 하노라

 

<풀이>

산골 마을에 눈이 내리니 좁은 돌길마저 눈에 묻혀버렸구나

사립문은 열어서 무엇을 하겠는가. 나를 찾을 이도 없는 것을

밤마다 찾아오는 한 조각 밝은 달만이 벗이 되어 주는구나

 

*

내 가슴 헤친 피로 님의 양자 그려내어

고당 소벽에 걸어두고 보고지고

뉘라서 이별을 삼겨 사람 죽게 하는고

 

<풀이>

내 가슴을 베어 헤쳐서 나온 피로 님의 모습 그려서

내 방 바람벽에 걸어 두고 보고 싶구나

누가 이별을 만들어 내어 사람 죽게 하는가

고당 소벽(高堂素壁)-높은 집의 흰벽. 집의 바람벽.

 

[산문]

 

숨어사는 선비의 즐거움

 

전원에 오래 살다 보니 이제 세속 밖의 사람이 되고 말았다. 우연한 기회에 전에 적어 두었던 글들을 뒤적이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기에 기록하여 조그만 책자로 엮고 그 속에 나의 뜻을 붙여 ‘야언(野言)’ 이라 이름 하였으니, 이는 나의 살아가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 적은 것이다. 야언이란 전원에 사는 사람의 꾸밈없는 이야기라는 뜻이니, 야인을 만나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한 것이라 하겠다.

입 속에 세상에 대한 비평을 담지 않고, 미간에 번뇌의 그림자를 드리우지 않는다면 세속에 살아도 신선이라 이를 것이다. 마음이 내키는 대로 꽃이나 대나무를 가꾸고 성미에 맞게 새나 물고기를 기르는 것, 이것이 산림에 묻혀 사는 사람의 생활이라 할 것이다.

한나라 양자운의 정자에는 배를 몰아 글을 배우러 오는 사람들이 많았고, 진나라 도연명의 국화길에는 술병을 들고 찾아와 사립문을 두드리는 손님들이 많았다. 하지만 생각하면 다 번거로운 일, 쑥대밭 속에 묻혀 살던 후한 때의 장중울이나, 눈 속에 갇혀 있어도 태평스럽게 누워 죽음을 기다리던 후한의 명신 원안의 처지가 차라리 낫지 않겠는가.

모든 병은 고칠 수 있으나 속기(俗氣)만은 고칠 수 없는 것. 다만 책이 그것을 고칠 수 있다. 술을 마시는 데는 진정한 아취가 있는데, 그것은 취하는 데에 있지 않고, 취하지 않는 데에도 있지 않다. 한 잔 술에 얼굴이 발그스름해지는 사람으로는 송나라의 소요부를 들 수 있고, 흠뻑 취하는 사람으로는 서진의 유백륜을 들 수 있다.

세속을 떠난 이의 고상한 행적과 숨어사는 이의 절묘한 운치에 대해서 마음에 맞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나 또한 절로 신기에 접하게 된다.

소탈한 친구와 만나면 나의 속됨을 고칠 수 있고, 통달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편벽됨을 깨칠 수 있고, 박식한 친구를 만나면 나의 고루함을 바로 잡을 수 있고, 인품이 높은 친구를 만나면 나의 타락한 속기(俗氣)를 떨쳐버릴 수 있고, 차분한 친구를 만나면 사치스러워지려는 나의 허영심을 깨끗이 씻어낼 수 있다.

사람이 명예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못하면 처자식 앞에서도 뽐내고 싶은 법, 그러나 마음 속 깊이 숨어 있는 그 욕심을 쫓아낸다면 잠을 자도 청초한 꿈을 꿀 수 있을 것이다.

일은 어느 정도 마음에 흡족하다고 생각할 때 그만 둘 줄 알아야 하고, 말은 자기 마음에 흡족하다고 생각할 때 멈출 줄 알아야 한다. 그렇게 하면 허물과 후회가 자연히 적어질 것이다. 어디 그뿐이겠는가? 그 속에 담긴 의미가 또한 무궁할 것이다. 일을 주선하다 보면 낭패를 보는 수가 있다, 무엇을 좋아하다 보면 결점이 나타나고, 욕심에 끌려 지나치게 연연하다 보면 어려운 일에 봉착하게 되고 마는 법이다.

책을 읽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이 없으며, 산과 물을 사랑하는 것은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이 없으며, 꽃과 달과 바람과 대나무를 완상하는 것도, 단정하게 앉아서 고요히 입을 다무는 것도 이로움만 있고 해로움이 없다.

물이 끓고 차의 향기가 맑게 번질 때 마침 문 앞에 손님이 찾아온다. 얼마나 기쁜 일인가. 하지만 새가 울고 꽃이 이우는데도 찾아오는 사람이 없다. 그러나 슬퍼하지 마라. 오히려 거기에 유연한 맛이 있나니, 진원(眞源)은 맛이 없고 진수(眞水)는 향취가 없는 법이다. 구름은 희고 산은 푸르며, 시냇물은 졸졸, 바위는 우뚝, 새들의 노랫소리를 꽃이 홀로 반기고, 나무꾼의 콧노래를 골짜기가 홀로 화답한다. 사방이 이렇듯 고요하니 사람의 마음조차 절로 한가롭구나.

뜻을 다 표현한 다음에 말을 마치는 것은 천하의 지언(至言)이다. 그러나 말을 마쳐도 뜻은 다함이 없어 은은한 여운을 남기는 것은 더욱 지언이라 할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하루에 착한 말을 한 가지라도 듣거나, 착한 행동을 한 가지라도 보거나, 아니면 스스로 착한 일을 한 가지라도 행한다면 그 날은 결코 헛되이 산 것이 아니라 할 것이다.

시는 자신의 적성과 능력에 맞게 쓸 일이다. 지나치면 고달파진다. 술도 마음을 부드럽게 하는 정도로 그쳐야 할 일이다. 지나치면 오히려 정신이 혼미해진다. 아름다운 풍류를 즐긴다 해도 지나고 나면 늘 슬퍼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맑고 고요한 시골에서 노닐게 되면 갈수록 더 깊은 정취를 맛보게 된다.

화려한 꽃은 향기가 적고, 향기로운 꽃은 색이 화려하지 못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부귀를 자랑하는 자는 인품의 향기가 없고, 인품의 향기를 뽐내는 자는 쓸쓸한 기색이 역력하다. 그러나 군자는 백세에 향기를 전할지언정 한 시대의 아름다운 자태로 남기를 원치 않는다. 한 시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영합하기 위하여 지은 문장은 훌륭한 문장이라고 할 수 없고, 한 시대의 사람들 모두에게 영합하기 위하여 다듬어진 인물은 참된 인물이라고 할 수 없다.

산 속에서 사는 것이 좋기는 좋으나 조금이라도 그것에 매여 연연해하면 이는 시장 바닥이나 조정안에서 사는 것과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서화를 사랑하는 것이 아취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이를 탐하는 마음이 있으면 또한 장사치와 다를 것이 없다. 한 잔 술을 마시는 일이 즐겁기는 하지만 한 순간이라도 남의 흥취에 따라가게 되면 또한 감옥 속처럼 답답하고, 손님을 좋아하는 것이 화통한 일이긴 하지만 조금이라도 속된 흐름에 떨어지게 되면 또한 고해(苦海)와 다를 것이 없다.

재주가 뛰어난 사람은 공경하고 삼가는 마음을 배울 것이며, 총명한 사람은 침착하고 중후함을 배울 것이다. 저속한 말은 장사치에 어울리고, 간드러진 말은 기생에 어울리고, 농담은 광대에 어울린다. 사대부가 이 가운데 어느 한 가지에라도 관계된다면 위엄을 잃고 말 것이다.

후덕하게 하느냐 아니면 야박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장단(長短)의 열쇠가 되고, 겸손하게 하느냐 아니면 교만하게 하느냐의 여부가 화복(禍福)의 열쇠가 되며, 양생(養生)을 하느냐 아니면 욕심대로 사느냐의 여부가 사람으로 남느냐 귀신으로 돌아가느냐의 갈림길이 된다.

이름을 날리게 되면 반드시 중책을 맡게 되지만, 잔재주를 부리게 되면, 반드시 뜻밖의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 보통사람을 보는 요령은 큰 대목에서 나대지 않는가를 살피는 데 있고, 호걸을 보는 요령은 작은 대목에서도 소홀히 함이 없는가를 살피는 데 있다.

노래와 여자를 너무 밝히면 허겁(虛怯)병에 결리고, 재물과 이익을 너무 밝히면 탐도병에 걸리고, 업적을 쌓는 데에만 골몰하면 정도를 이탈하는 주작(走作)병에 걸리고, 명예에만 집착하다 보면 과격하게 일을 처리하는 교격(矯激)병에 걸리고, 옛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지나치면 맹목적으로 남을 모방하는 호로(葫虜)병에 걸린다.

손님들은 흩어지고 대문은 닫히고 바람은 선들거리고 해는 떨어지는데, 술동이에 남은 술 기울이니 문득 시상(詩想)이 떠오르네. 산 속에 숨어사는 사람이 바라는 것이 이 밖에 더 무엇이 있겠는가? 긴 행랑 널찍한 정자, 굽이굽이 흐르는 강물, 휘어져 돌아오는 오솔길, 거기 흐드러지게 핀 들꽃, 울창한 대 숲, 산새와 갈매기, 그리고 질화로에 향을 사르고 설경을 바라보며 선(禪)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산중생활의 진정한 경계요 담백한 삶의 모습이라 하겠다.

해서 되는 것이 있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있는 것, 이것이 세간(世間)법이다. 해서 되는 것도 없고 해서는 안 되는 것도 없는 것, 이것은 출세간(出世間)법이다.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는 것, 이것이 세간법이다. 옳은 것도 없고 옳지 않은 것도 없는 것, 이것은 출세간법이다.

사슴은 정(精)을 기르고 거북이는 기(氣)를 기르고 학(鶴)은 신(神)을 기른다. 그래서 장수하는 것이다. 고요한 곳에서는 기(氣)를 단련하고 움직이는 곳에서는 신(身)을 단련하다. 군자는 일을 감당할 능력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을 모욕하지 않으며, 무식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 그래서 군자에게는 원망이 적은 것이다.

봄도 장차 저물어 가는데 숲 속으로 들어가니 굽은 길은 어슴푸레 뚫려있고, 소나무와 대나무가 마주 보고 있다. 들꽃은 향기를 뿜어내고 산새들도 즐겁게 지저귄다. 거문고를 안고 바위에 앉아 두서너 곡을 타니, 심신은 변하여 동천(洞川)의 신선인 듯, 그림속의 사람인 듯. 뽕나무 밭과 보리밭은 위아래에서 서로 아름다움을 다투고, 장끼는 따스한 봄볕 속에 짝을 부르고, 비둘기는 아침 보슬비 속에 노래한다. 전원에 묻혀 사는 사람이 누릴 수 있는 참다운 경치란 이밖에 무엇이 있겠는가.

때로는 스님과 함께 솔밭 바위에 앉아 인과(因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공안에 대하여 설왕설래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흘러 소나무가지 끝에 달이 걸린다. 이윽고 길에 비친 나무 그림자를 밟으며 집으로 돌아온다. 마음에 맞는 벗들과 한께 산에 올라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키는 대로 이야기하다가 그것도 따분해지면 바위 끝에 벌렁 누워 푸른 하늘에 두둥실 떠가는 흰 구름을 본다. 그러고 있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쁨이 밀려와 스스로 유유자적의 경지에 노닐게 된다. 서리가 내려 나뭇잎이 성긴 숲 속을 홀로 거닐다 나무 등걸에도 앉아 본다. 단풍잎은 흰 소매위에 떨어지고 산새는 가지에 날아와 유심히 내려다본다. 이 쓸쓸한 대지가 나에겐 오히려 맑고 넓기만 하구나.

문을 닫고 마음에 드는 책을 읽는 것, 문을 열고 마음에 맞는 손님을 맞이하는 것, 문을 나서서 마음에 드는 경치를 찾아 가는 것, 이것이야말로 사람이 추구해야 할 세 가지 즐거움이 아니겠는가.

서리가 내린 바위는 우뚝하고 못물은 고요하고 맑기만 하다. 깎아지른 절벽 끝에 담쟁이가 휘감은 고목 두서너 그루, 모두가 물 속에 거꾸로 그림자를 드리운다. 지팡이를 짚고 이곳에 이르니 마음이 함께 맑아지는 것 같다. 거문고는 오동나무 가지에 바람이 일고, 시냇물 소리가 들리는 곳에서 타야 어울린다. 자연의 음향이라야 거문고와 서로 잘 조화되기 때문이다.

살구꽃에 성긴 비가 듣고 버드나무에 산들바람이 불 때, 흥이 나면 흔연히 홀로 길을 나선다. 분주한 세상 밖에서 한가로움을 맛보고, 부족한 시간 속에 살면서 만족할 줄 아는 것은 은둔 생활의 정취요, 봄날 잔설을 쓸어내고 꽃씨를 뿌리는 것과 밤에 향을 피워 놓고 예언서를 보는 것은 은둔생활의 또 다른 기쁨이다. 문필생활은 흉년을 모르고 술이 있는 곳은 언제나 봄, 이것이 은둔생활의 참다운 맛이다.

쾌적한 밤 편안히 앉아 등불에 엷은 비단을 씌워 불빛을 은은히 밝히고 차를 끓인다. 밤은 깊어 아무 소리도 없이 사위가 그저 적막하기만 한데 개울물 소리만 간간이 들린다. 이런 밤 이부자리를 펴기 전에 잠시 책을 보는 것, 이것이 은둔생활의 첫 번째 즐거움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은 대문을 닫고 방 청소를 한다. 문밖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이미 끊어져 사방은 고요하고 실내 또한 적막하다. 이럴 때 앞에 가득히 쌓인 책 가운데서 마음이 내키는 대로 이것저것 뽑아서 펼쳐본다. 이것이 은둔생활의 두 번째 즐거움이다.

텅 빈 산 속에 한 해가 저무는데 고운 눈발은 사방으로 흩날리고 앙상한 나뭇가지조차 바람에 몸을 떤다. 추위에 놀란 새들이 들판에서 우는데 빈방에서 질화로를 끼고 앉아 있노라니, 차는 끓어 향기롭고 술은 익어 그윽하다. 이것이 은둔 생활의 세 번째 즐거움이다.

작은 배 한 척을 얻어 짧은 돛에 가벼운 노를 걸고, 책이며 솥이며 술 단지며 마실 것이며 차며 육포 같은 것들을 골고루 싣는다. 순풍을 만나 뱃길이 순탄하면 친구를 방문하기도 하고, 아니면 이름난 절간을 찾기도 한다. 노래 잘 부르는 기생 한 명과 피리 잘 부는 아이 하나와 거문고 잘 타는 사내를 태우고 마음 내키는 대로 안개 자욱한 물결을 헤치고 배를 몰아, 쓸쓸하고 답답한 심회를 풀기도 한다. 이런 경지야말로 취할 만한 최고의 운치라 하겠지만 우리나라에는 그럴 만한 곳이 없다. 게다가 이런 물건들을 구하기도 또한 쉽지 않다.

초여름 어느 날 집에서 가까운 숲으로 들어가서 마음 내키는 대로 이끼를 쓸고 바위에 앉아 본다. 대나무 그늘 사이로는 햇빛이 떨어지고 오동나무 그림자는 구름 모양을 하고 있다. 얼마 뒤에 산에서 구름이 일어 가랑비를 뿌리더니 문득 서늘한 기운이 감돈다. 의자에 기대 낮잠에 빠지니 꿈속의 정취 또한 현실과 과히 다르지 않았다. 집안일을 끝낸 다음 두서너 명의 동자를 따르게 한다. 그 중에서 튼튼한 자는 불을 지펴 밥을 짓게 하고 약한 자는 청소를 하거니 글을 베끼게 한다. 자녀들 가운데 믿을만한 자를 골라 공양을 드리도록 절로 보내고, 벗 가운데 각별히 생각나는 사람에게는 음식을 보내 안부를 묻는다. 이렇게 하고 나면 마음이 흡족해진다.

양나라 사람 종름의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에 의하면, 소한에 피는 꽃에는 매화와 동백과 수선화가 있고, 대한에 피는 꽃에는 서향과 난초와 산반이 있으며, 입춘에는 개나리와 앵두꽃과 망춘화가 피고, 우수에는 유채 꽃과 살구꽃과 오얏꽃이 피며, 경칩에는 복사꽃과 체당과 장미꽃이 피며, 춘분에는 오동꽃과 마름꽃과 버드나무 꽃이 있으며, 모란과 다미와 연화는 곡우 때 핀다고 했다.

세상을 사는 동안 한식과 9월 9일 중구만은 헛되이 보내지 말아야 한다. 사철의 변화 가운데 이처럼 계절감이 각별한 때가 다시없기 때문이다. 대나무 안석은 창가로 옮기고 부들로 짠 자리는 땅에다 편다. 높은 산봉우리는 구름 속으로 숨고, 냇물은 바닥이 보일만큼 맑다. 울타리 밑에는 국화를 심고 집 뒤에는 원추리를 가꾼다. 둑을 높이자니 꽃이 다칠까 걱정이고, 대문을 옮기자니 버드나무가 다칠까 걱정이다. 굽이굽이 돌아간 길은 안개 속에 잠겼는데 저 길을 따라가면 주막이 나오겠지. 맑은 강물 위에 해가 저물고 고요한 어촌에는 고깃배 두어 척이 그림처럼 매어 있다.

산 속에서 살려면 경서와 제자백가서와 역사서는 물론 약재와 방서(方書) 같은 것도 갖추어 두어야 한다. 그리고 좋은 붓과 좋은 화선지도 비치해 두고, 술이며 안주와 함께 고서화 같은 것도 마련해 두는 것이 좋다. 그리고 틈을 내어 버들개지를 모아 베개 속을 넣고 갈꽃을 모아 이불 속을 채우면 노년을 보내기에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깊은 산 속에서 고아하게 살아가려면 화로에 향을 피운 것 또한 빼 놓을 수 없는데, 벼슬길에서 물러난 지 오래다 보니 좋은 향은 이미 떨어지고 남은 것이 없다. 늙은 소나무와 잣나무 뿌리며 가지며 잎이며 솔방울 같은 것을 한데 모아 짓찧은 다음 단풍나무 진을 섞어서 동그랗게 빚어 두었다가 무료할 때 가끔 한 알씩 사르면 맑고 고상한 맛이 있어 좋다.

대나무 평상, 돌베개, 부들꽃을 넣은 요, 마차 안에서 기대앉을 수 있는 두툼한 자루, 부들꽃을 넣은 이불, 종이 방장, 평상, 등나무 의자, 부들을 심은 화분, 등긁이, 대나무 바리, 종, 경쇠, 도복. 문리(文履), 부채, 불진(佛塵 ), 산에 오를 때 신을 신발, 대나무 지팡이, 표주박, 운패(韻牌), 시통(詩筒), 등잔 같은 것은 모두 산중생활에서 없어서는 안 될 물건들이다.

 

<어휘 풀이>

* 양자운(揚子雲) : 중국 전한 말기의 사상가이며 문장가. 이름은 웅(雄). 자는 자운(子雲). 젊어서부터 박식하였으나 말을 더듬었기 때문에 서적만을 탐독하며 사색을 하였다. 30여 세에 비로소 대사마(大司馬)인 왕음(王音)에게 문재를 인정받아 성제(成帝)의 급사황문랑(給事黃門郞:궁중의 제사를 관장하는 관원)이 되어, 왕망(王莽)과 유흠(劉歆)과 동렬에 있었다. 나중에 궁정 쿠데타로 왕망이 신(新)의 왕실을 일으키매, 노년의 선비로서 대부(大夫)라는 직책에 취임하여 죽는 해까지 머물렀다. 이 점에 대해 송대(宋代) 이후의 절의관(節義觀)으로부터 비난을 받았거니와 원래 정세와 함께 부침하면서 일신을 보전하는, 말하자면 권력에는 겸유(謙柔)한 성격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 도연명(陶淵明, 365년 ~ 427년) : 중국 동진(東晋)의 시인. 자는 원량(元亮) 또는 연명, 본명을 잠(潛), 오류(五柳) 선생이라고 함. 그는 찾아오는 사람이 있어도 병을 핑계로 만나지 않았는데 당시 그 지방의 자사 왕흥이 도연명의 친구를 통해서 술로 도연명을 유인해 한번 만난 뒤로는 보고 싶을 때마다 숨어서 그의 동정을 살피다가 술과 쌀이 덜어지면 채워 주었다는 일화가 있다.

* 장중울 : 후한 때 사람. 늘 가난했는데 집 주위에는 사람 키가 넘을 정도로 쑥대가 우거졌으며, 문을 닫고 공부만 할 뿐 명예를 탐하지 않았으므로 당시 아무도 알아주는 사람이 없었으나, 유공만은 그를 인정했다고 한다.

* 원안(袁安, ? ~ 92년) : 중국 후한 초의 정치가. 자는 소공(邵公). 예주(豫州) 여남군(汝南郡) 여양현(汝陽縣) 사람. 원안 자신을 포함하여 4세대에 걸쳐 삼공(三公)을 배출한 후한의 명문가 여남 원씨(汝南 袁氏)의 시조. 원안이 벼슬길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에 정진하던 때에 눈이 많이 내려 굶주리게 되었는데, 원안은 집에 혼자 틀어박혀 잠을 잤다. 이따금 저잣거리를 시찰하던 현령이 눈을 치우지 않은 집을 발견하고는 굶어 죽은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눈을 치우고 집 안으로 들어갔는데, 그 집은 원안의 집이었다. 현령은 원안에게 왜 밖으로 나가 먹을 것을 구하지 않느냐고 물었는데, 이에 원안은 큰 눈으로 사람들이 곤경에 처했으니 밖에 나가면 폐를 끼치게 된다고 대답하였다. 이에 감복한 현령은 원안을 효렴으로 천거하였다.

* 소요부 : 소옹(邵雍, 1011년~1077년). 송나라의 사상가. 자는 요부(堯夫), 시(諡)는 강절(康節). 범양(范陽) 출신. 소옹의 집은 대대로 은덕(隱德)을 본지로 삼아 벼슬하지 않았다. 그도 몇 번인가는 소명을 받았지만 끝내 관도(官途)에 나아가지 않았다.

* 유백륜(劉伯倫) : 중국 서진 때 사람. 술을 몹시 좋아함. 노장사상을 숭상하여 청담과 술로 일생을 보낸 죽림칠현 중 한 사람. 언제나 한 단지의 술을 가지고 다니며, 삽을 메고 따라다니는 종자(從子)에게 ‘내가 죽거든 그 죽은 곳에 묻으라' 했다고 한다.

* 허겁(虛怯) : 마음이 실하지 못하여 겁이 많음.

* 탐도(貪饕) : 1. 재물이나 음식을 탐냄. 2. 칠죄종(七罪宗)의 하나. 먹고 마시기를 너무 지나치게 하며 재물을 탐내는 일.

* 주작(走作) : 침착하지 못하고 덜렁거림.

* 교격(矯激) : 성질이 굳세고 과격함.

* 호로(胡虜) : 오랑캐.

* 동천(洞天) : 도가(道家)에서 말하는 신선이 산다는 별천지.

* 공안(公案) : 불교 용어로 석가모니의 언어와 거동, 또는 선종에서 수행자의 마음을 연마하기 위하여 주어지는 시험 문제.

* 방서(方書) : 신선이 되는 방법을 기술한 책.

* 불진(佛塵) : 불자(拂子)라고도 하는 것으로 중국산 얼룩소의 긴 꼬리털을 묶어서 자루를 단 불구(佛具). 원래는 먼지를 털거나 파리를 쫓기 위해서 스님들이 쓰던 총채 비슷한 물건.

* 시통(詩筒) : 옛날 시인들이 한시의 운두(韻頭)를 얇은 대나무 조각에 서 넣어가지고 다니던 조그만 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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