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에 선 아이들
페터 회 지음, 박현주 옮김 / 뿔(웅진) / 2009년 12월
나에게는 낯선 작품이었다.
처음으로 접하는 덴마크 소설, 줄거리와 구성도 친근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차근차근 읽어가다보니 먹먹함 속에서도 가슴이 뚫리는 느낌이 들었다.
소설은 글쓴이와 같은 이름인 페터 회라는 인물의 1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서술된다.
1970년 전후에 있었던 사건을 1990년대에 회상하는 형식으로 과거와 현재를 무수히 교차시켜 약간의 집중력을 요구한다.
작품에서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주인공은 미혼모에 의해 버려진 고아로 추정된다.
영아 때부터 고아원을 전전하다가 빵부스러기집으로 불리는 왕립고아원으로 흘러들어가게 된다.
왕립고아원은 학습 능력은 영재 수준이지만 부적응자 내지는 문제아들을 위한 시설이다.
극심한 통제 속에서 아이들은 하나의 관리 대상으로 전락한다.
추위 때문에 라디에이터가 있는 화장실에서 자야 하는 열악한 시설에, 교사들의 성폭행까지....
주인공은 발상이라는 교사에게 성폭행을 당하지만 오스카 훔룸에 의해 구조된다.
용돈을 벌기 위해 개구리를 먹고,
시간을 지우기 위해 줄에 매달려 기차를 향해 날아가는 놀이는 하는 훔룸.
이 사건을 빌미로 해서 주인공은 빌학교로 옮기게 되고, 훔룸은 남아 있다가 결국 기차와 충돌해 죽게 된다.
빌학교는 학생과 학부모가 선호하는 초중등 과정의 사립명문학교이다.
주인공은 비네시몽이라는 검사에서 92점을 받은 보통수준의 지능을 소유한 자이다.(보통 90~110)
빌학교도 점심시간 운동장에서 휴식을 취하는 시간조차 감시하는 철저한 통제사회이다.
교장인 빌이 모든 일에 관여하고 폭력을 행사하여 학생의 청력까지 잃게 하는 사고도 있었다.
폭력에 의한 공포로 통제되는 집단이자 철저히 타인의 언어에 의해 조종되는 조직이다.
학교는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목표까지 도달하는 신이 내린 단계 향상용 기계에 지나지 않는다.
이곳에서 주인공은 2년 선배인 카타리나라는 여학생과 생각을 주고 받기 시작한다.
주인공이 집요하고 행동적이라며 카나리나는 사물과 현상을 통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두 명의 관계 위에 아우구스트 유윤이라는 문제적 인물이 보태진다.
병약하고 충동적인 성격의 아우구스트가 빌학교에 오게 된 이유를 밝혀가면서 학교의 계획은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정상적인 학생들과 경계에 선 아이들을 한 학교 안에서 교육시키는 통합교육의 실험대상으로 세 명은 이 학교로 오게 된 것이다.
경계에선 아이들.
경계를 만들기 위해서는 평가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 평가를 위해서는 시간이 전제되어야 할 것이다.
이 작품에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특히 3부에서는 시간을 설명하기 위해 많은 지문을 할애하고 있다.
글쓴이는 평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다.
아마 개인의 본질을 무시하고 인위적인 기준에 짜 맞추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과 같은 글쓴이의 말이 가슴이 저리도록 와 닿았다.
천성은 찢고 나가야 하는 구속복이 아니다. 천성은 축복이며, 모든 생명체에게 주어진 성장의 기회이다.
우리 인생의 안내서와 같은 것이다.
천성을 철저히 무시당하고 극도의 통제 속에서 타인의 기준에 의해 규정되는 삶을 살고 있는 빌학교의 학생들과 우리의 교육 현실이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주인공과 카타리나, 아우구스트는 학교에서 도망치고 이 와중에 아우구스트는 자살을 한다.
글쓴이가 시간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
선형적 시간이니 순환적 시간이니 하면서 서사적 진술과는 거리가 먼 설명을 늘어 놓은 까닭은 무엇인가?
선형적 시간만 존재하는 빌학교와 현실의 교육제도를 비판하기 위해서는 아닐까?
일정한 기간을 설정하고 교육한 후 평가를 통해 경계 안의 학생과 경계 밖의 학생을 구분하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일단 경계 밖으로 밀리나면 어둠의 저편으로 한 없이 추락하는 것이다.
"천성을 인정하고 천성에서 출발하는 교육,
일정한 기간 안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삶 전체를 통해 이루어지는 교육"
이 책을 읽으면서 가슴이 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은 것은 이런 깨달음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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