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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15. 12. 9.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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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 조선 선비의 자존심/ 한정주 지음/ 다산초당/ 2015.05.12


700쪽이 넘는 두툼한 책이다.

조선시대부터 지금까지 유명인의 호를 소개하고 있다. 호를 통해 <사기(史記)>의 '열전(列傳)'처럼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요약해 놓았다. 인물 백과사전이라 할 만하다.

 

사람들의 삶을 간단히 요약해 놓으니 삶이란 것이 그렇게 무겁기만 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양한 삶 중에서도 자기 자신의 삶을 사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 같다. 그러면서도 올바르게 살아가기 위해 삶의 안내자를 두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서계(西溪) 박세당(朴世堂)을 삶의 안내자로 삼고 싶다.

서계는 수락산 아래에 있는 개울이다. 그 개울을 끼고 있는 마을 '석천동'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농사 경험을 바탕으로 <색경>이라는 서책(書冊)까지 저술한다. 

서계는 '주자학'이라는 무기로 절대 권력을 휘두르던 송시열에 맞서다가 "뜻을  굽히고 몸을 욕되게 하며 그를 따라 주장을 거두느니 차라리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아 밭이랑 사이에 몸을 마치는 것이 낫겠다."며 벼슬길에서 물러난다. 그리고 동봉(東峰) 김시습이 살았던 수락산으로 내려와 농사를 지으며 후학을 가르치는 일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1680년 52세 무렵부터는 유학의 경전에 자신의 독자적인 견해와 주석을 단 <사변록(思辨錄)> 시리즈를 저술하기 시작한다. 또한 주위 사람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주자학자들이 금서이자 요서(妖書)로 배척한 <도덕경>과 <장자>에 주해를 다는 작업도 했다. 1702년 '조선의 주자'라고 추앙받던 송시열을 올빼미에 비유해 비판한 일로 일대 파란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사문난적(斯文亂敵)의 중죄를 뒤집어 쓰고 1703년 7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다.

 

이런 일을 미리 예견이나 한 듯 70세 무렵에 미리 쓴 묘지명이라 할 수 있는 <서계초수묘표(서계초수묘표)>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차라리 세상과 어울리지 못하고 홀로 쓸쓸하게 살아갈망정, 끝내 '이 세상에 나왔으니 이 세상에서 하라는 대로 하고 이 세상이 좋아하는 대로 하겠다.'는 사람들에게 머리를 숙이거나 마음을 낮추려고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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