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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상도에서 파생된 벽화

불교/벽화

by 빛살 2015. 12. 21. 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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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팔상도에서 파생된 벽화 

 

통도사 팔상탱-도솔래의상

 

석가모니의 생애를 묘사한 팔상도는 사찰의 팔상전(八相殿, 捌相殿)이나 영산전(靈山殿)에 많이 봉안되어 있다.

우리나라의 팔상도는 대체로 불본행집경(佛本行集經)에 쓰인 내용을 중심으로 묘사한 것이 대부분이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팔상탱화 속에는 한꺼번에 여러 가지 내용을 담고 있어서 일반인들이 알아보기가 매우 어렵다.

 

예를 들면, 위의 팔상도는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인데 그 속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실이 묘사되어 있다.

 

① 마야궁에서 마야부인에게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내려오는 꿈을 꾸는 장면

② 바로 그 옆에 있는 입태전에서 입태되는 장면

③ 소구담(싯다르타의 조상)이 도적으로 몰려 죽는 장면

④ 왕과 왕비가 꿈의 내용을 바라문에게 묻는 장면

 

이상의 내용이 복잡하게 그려져 있으므로, 사찰의 벽에는 위의 사실 중에서 한두 가지만 발췌하여 누구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그려 놓았다.

 

 

 

1. 강도솔상(降兜率相)

마야궁에서 의자에 앉아 잠든 마야부인의 꿈속에 도솔천에서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홀연히 나타나 부인의 오른쪽 옆구리로 들어가는 장면.

화가의 화법과 개성에 따라 여러 가지로 표현되지만 모두 마야부인의 꿈에 흰 코끼리를 탄 호명보살이 나타나 마야부인 몸 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을 소재로 하고 있다.

 

 

 

2.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마야부인이 궁전을 떠나 해산을 하기 위해 친정으로 가는 도중 룸비니 동산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산기를 느껴, 무우수(無憂樹) 나뭇가지를 잡고 서서 오른쪽 겨드랑이로 아기를 낳는 장면.

 

 

 

* 구룡토수(九龍吐水)

아기 부처가 태어나자 하늘에서 아홉 마리 용이 나타나서 입으로 물을 뿜어 몸을 깨끗하게 씻어 주었다.

태어난 아기 부처는 동서남북으로 각각 일곱 발자국씩 걸은 다음, 한쪽 손으로는 하늘을, 또 다른 손으로는 땅을 가리키며

"천상천하 유아독존 (天上天下 唯我獨尊) 삼계개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 - 하늘 위 아래로 오직 나만이 존귀하구나. 삼계가 고통 속에 있으니 내 마땅히 편안케 하리라." 라고 외친다.

 

 

 

3. 사문유관도(四門遊觀圖)

태자가 출가하기 전 사대문 밖을 나가 사람들이 생로병사의 고통을 받는 광경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고 출가를 결심하게 된다.

태자는 동문 밖으로 나갔다가 노인을 보고 명상에 잠기었으며, 남문 밖으로 나갔다가 병자를 보고 인간의 고통을 생각하고, 서문 밖으로 나갔다가 장례식 장면을 보고 인생의 무상함을 뼈저리게 느꼈으며 북문 밖으로 나갔다가 수행하는 사문(沙門)을 보고 출가할 것을 결심하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다.

 

 

 

4. 유성출가상(逾城出家相)

수행자를 만난 후 태자의 인생관은 점차 변모되었고, 마침내 부왕에게 출가하여 수도할 수 있도록 허락해 줄 것을 간청하였다.

정반왕은 크게 놀라 온갖 말로 회유하였지만 태자의 결심은 추호의 흔들림도 없었다. 결국 부왕은 태자에게 왕위를 이을 왕손을 얻기 전에는 출가할 수 없다는 조건을 내세워 같은 석가족인 이웃나라 콜리성의 야쇼다라 공주와 결혼을 시켰다. 결혼을 하면 마음이 돌아설 것이라는 부왕의 생각도 해탈의 길을 찾으려는 태자의 생각을 바꾸지는 못하였다.

마침내 아들 라훌라('장애'라는 뜻)가 태어나자 태자는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에 마부 찬다카를 깨워 애마 칸타카를 타고 카필라의 성벽을 뛰어넘어 동쪽을 향하여 어둠을 뚫고 달렸다.

"나는 하늘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다. 많은 중생이 삶과 죽음의 고통 속에 있지 아니한가. 
 나는 이를 구제하기 위하여 집을 나가는 것이니 위 없는 깨달음을 얻기 전에는 결코 돌아오지 않으리라." <오분율>

왕궁이 멀어지자 태자는 말과 마부를 돌려보내고 값비싼 옷을 벗어 사냥꾼의 낡은 옷과 바꾸어 입고 스스로 머리와 수염을 깎은 뒤 당시의 유명한 수행자들을 찾아 외롭고 힘든 수행의 길에 들어섰다. 왕위의 자리도 버리고 사랑하는 아내 야쇼다라와 아들 라훌라마저 뒤로 한 채 깨달음의 길로 나아간 이 날이 태자 나이 29세 되던 해 음력 2월 8일이었다. 이 때부터 싯달타 태자는 수행자 고타마라고 불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당시의 유명한 수도자들을 찾아 인도 남쪽의 신흥 공업국가인 마가다국으로 향했다. 그곳에는 훌륭한 종교가들이 운집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당시 높은 명성을 얻고 있던 알라라 칼라마의 문하에서 그가 가르치는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라는 수행을 배웠는데 곧 스승의 경지에 도달해 버렸다. 다시 그는 다른 스승인 웃다카 라마풋타에게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이라는 선정을 배웠지만 그 경지 역시 곧 도달해 버렸다. 수행자 고타마는 스승에게서 배운 선정을 통해서는 괴로움에서 벗어나 영원한 행복과 평화를 얻을 수 없음을 알았다. 그래서 그들 곁을 떠나 독자적인 수행을 시작하였다.

 

 

 

5.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행의 길을 나선 싯다르타는 마가다국을 거쳐 여기저기 방랑하다가 마침내 네란자라강 근처에 있는 우루벨라 마을에 도착하였다. 그는 마을 어귀에 있는 숲 속에서 고행하고 있는 바라문과 사문 수행자들을 만났다. 그곳은 수행에 아주 적합한 곳이었으므로 싯다르타는 거기에 자리를 잡고 고행을 시작하였다. 여기에서 그는 깊은 명상에 잠겨 순수하고 겸허한 마음을 찾았다. 그리고 두려움을 극복하였으며 자신이 태어나고 존재하는 이유를 깨닫게 되었다. 그는 신체에 대한 집착과, 정신적 속박, 탐욕을 버리고자 혹독하게 고행하였다.
그 결과 깊은 명상에 잠긴 싯다르타의 모습은 하루하루 달라졌다. 야위어 팔과 다리는 마른 수수깡처럼 말라갔으며, 몸은 쭈글쭈글해졌고, 엉덩이는 낙타 다리처럼 가늘어 졌으며, 등뼈의 뼈마디가 드러나 마치 구슬을 꿰어 놓은 것처럼 앙상하였다. 낡은 집 천장에 댄 나무 골격이 드러나듯이 갈비뼈들이 그대로 드러났다. 눈은 깊숙이 들어가 보이지 않게 되었으며 마치 호리병박이 베어지면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속이 말라붙고 쭈글쭈글 해지듯이 그렇게 두피도 말라 비틀어지고 쭈글쭈글해졌다. 이러한 극단적인 고행으로 인해 그의 몸은 극도로 쇠약해졌으며 피부색깔도 흰색에서 검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6년이나 계속된 이러한 극단적인 고행은 그를 깨달음으로 이끌지 못했다. 이에 극단적인 고행으로 인한 신체적 쇠약은 그가 풀고자 노력했던 문제들을 푸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깨닫고 고행을 그만 두었다. 그는 자신이 얻고자 하는 해답은 기쁨으로 이끄는 것이며 기쁨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몸의 힘을 회복하여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러한 결심으로 인하여 그가 스스로의 고행을 그만두자 처음부터 그와 함께 한 5명의 수행자가 그를 유혹에 빠진 자라 비난하며 떠나게 되었다. 하지만 싯다르타의 이러한 실천적 체험은 나중에 그의 교리에서 중도(中道)로 반영된다. 

 

 

 

6.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

고타마는 고행을 포기한 뒤 세나 마을 장자의 딸인 수자타가 올리는 우유죽(파야사) 공양을 받아 기운을 회복하고 목동 스바스티카(吉祥)가 바친 부드럽고 향기로운 풀(길상초)을 보리수 아래에 깔고 그 위에 앉아서,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는 그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굳게 다짐했다. 금강석보다 굳센 의지 때문인지 부처님은 그 자리에서 깨달으셨고, 깨달은 그 자리를 훗날 금강보좌(金剛寶座)라 불렀다.


고타마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 하자 마왕 파순은 다급해졌다. 먼저 자신의 세 딸-탄하(갈애), 아라티(혐오), 라가(탐욕)-을 보내 고타마를 유혹하도록 하였다. 마왕의 세 딸은 온갖 교태를 부리며 유혹하였으나 고타마는 수미산처럼 미동도 하지 않았다.
"너희들의 몸은 비록 아름답지만 모든 악이 가득해 견고하지 않고 부정이 흘러 생로병사가 항상 따른다. 손에는 팔지, 귀에는 귀고리를 흔들면서 교태 섞인 웃음으로 탐욕의 화살을 쏘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그대들의 욕망을 독약으로 안다. 칼날에 발린 꿀은 혀를 상하게 하고 사악한 욕정은 독사의 머리와 같으니 내 이미 모든 유혹을 뛰어넘었다. 너희들은 모두 본래 모습을 드러내고 물러가거라."
이렇게 말하자 마왕의 세 딸들은 모두 추한 노파로 변해 탄식하며 물러갔다.

 

마왕은 화가 나서 고타마를 향해 태풍과 폭우를 보내고 창칼, 불화살, 돌을 던지며 악귀를 동원하여 수행을 방해했다. 그러나 수행자 앞에서 그것은 모두 꽃으로 변하여 흩날릴 뿐이었다. 유혹과 폭력으로도 수행을 막지 못한 마왕은 직접 고타마 앞에 나타나 이야기하기 시작하였다.

"그대에게는 전륜성왕의 지위가 보장되어 있지 않은가? 세간을 다스리는 위대한 왕이 되어 그들을 지배하고 오감의 쾌락이 주는 미묘한 맛을 마음껏 즐기라. 그대가 추구하는 도는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피로만 더할 뿐임을 어찌 알지 못하는가?"

이렇게 회유하자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을 향해 다음과 같은 준엄한 사자후를 한다.

"게으른 자의 무리여, 사악한 자여, 그대가 여기에 온 목적은 무엇인가?
그대가 말하는 그 좋은 공덕이란 그것이 아무리 좋다 하더라도 나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다.
그런 것은 그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말해 주어라.
……
나는 이렇게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고 있다.
그러므로 내 마음은 어떤 욕망에도 끌려가지 않는다.
보라, 내 존재의 이 순수를.
그대의 제1군대는 욕망(카마)이며, 제2군대는 혐오(아라티)이며, 제3군대는 기갈(굽피파사)이며, 제4군대는 갈애(탄하)이다.
그리고 그대의 제5군대는 나태(티나 밋다)이며, 제6군대는 공포(비르)요, 제7군대는 의혹(비치킷차)이며, 제8군대는 위선과 고집(마카 탐바). 그리고 그릇된 방법으로 얻은 이익과 명성이며, 자신을 칭찬하고 남을 경멸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그대의 전 병력이며 검은 마군이다.
그러므로 용감한 자가 아니면 너를 이겨낼 수 없으리.
그러나 용감한 사람은 그대의 공격을 이렇게 잘 막아내고 있다.
……
악마여, 사람들도 저 신들마저도 그대의 군대를 격파할 수 없지만, 그러나 나는 지혜의 힘으로 그대의 군대를 쳐부수리라.
굽지 않은 질그릇을 돌로 쳐 깨뜨리듯이" <숫다니파타>

그리고 수행자 고타마는 머나먼 과거 세부터 한량없는 세월동안 선근공덕을 쌓아왔기에 악마의 군대를 물리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였다. 그러자 마왕 파순은 그것을 누가 증명할 수 있는지 말해보라고 외쳤다. 수행자 고타마는 오른손을 내밀어 땅을 가리키며 '이 땅은 능히 일체의 물건을 내어 차별이 없는 평등한 행을 하도다. 원컨대 지금 진실을 말하라'고 했다. 이때 땅을 지키고 있던 지신(地神)이, '가장 큰 대장부시여, 내 당신을 증명하리다. 제가 아나이다'라고 외치자 대지와 삼천대천 세계의 국토는 두루 크게 진동하였다. 마왕은 이 우렁찬 소리에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고 말았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 고타마는 마왕의 항복을 받고 아무런 방해도 없이 깊은 선정에 들었다. 
일반적으로 절에서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 불상을 보면 왼손은 가부좌한 발 위에 올려놓고 오른 손은 무릎 위에서 아래로 땅을 향하는 항마촉지인을 취하고 있는데, 이것은 부처님께서 마왕에게 항복 받으신 장면을 나타낸 것이다.


이제 수행자 고타마에게 어떤 장애도 없게 되었다. 깨달음을 끝까지 가로막고 있던 악마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모든 구속이 사라진 수행자 앞에 세상의 이치가 확연히 드러난 것이다. 그 이치는 '모든 것이 서로 의지하여 일어나고, 이것이 있기에 저것이 있고, 이것이 멸하기에 저것도 멸하는 것이다'라는 연기(緣起)의 진리이다. 수행자 고타마는 바로 이 연기의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한편 부처님의 깨달음을 방해한 악마들의 면면을 다시 살펴보면, 이들이 수행자 고타마가 마지막까지 버리지 못한 세간에 대한 애착을 보여주는 듯하다. 끝까지 그를 붙들고 있던 욕망 가운데 가장 먼저 끊을 수 있었던 것을 바로 육체의 욕망 즉, 색욕이었다. 이 세 딸의 이름이 첫째는 은애(恩愛), 둘째는 상락(常樂), 셋째는 대락(大樂)이라는 것을 보아도 성적 쾌락을 은유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그리고 마왕의 공격은 마왕의 여덟 가지 군대라고 표현된 욕망, 혐오, 기갈, 집착 등 마음속의 온갖 번뇌를 뜻하는 것이다. 그리고 마왕이 마지막으로 제시한 것은 전륜성왕의 자리였다. 이것은 곧 권력욕을 뜻한다. 즉, 권력욕은 색욕과 공포 보다도 더 질기고 뿌리가 깊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권력욕은 한 개인이나 한 가정을 파멸시키는데 그치지 않고 한 국가와 민족, 세계를 파멸로 몰아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욕망이다. 결국 이 세 가지 욕망을 극복한다는 것은 다시 말해 육체적, 정신적, 제도적 속박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말한다. 마왕의 온갖 유혹과 물리적 위험, 그리고 회유를 극복하는 이 장면은 우리가 가져야 할 불퇴전의 수행 자세가 어떠한 것인지 잘 말해주고 있다.


이와 같이 마왕의 항복을 받은 수행자 고타마는 붓다가야의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어 부처님이 되셨다. 이때가 부처님이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이날은 사실상 불교가 시작된 역사적인 날이며 불교에서는 성도절(成道節)이라 하여 뜻깊은 날로 삼고 있다. 성도절은 수많은 마왕의 군대를 항복 받고 깨달은 날이며, 인간의 몸으로 신의 세계를 뛰어 넘어 대자유인의 시대를 연 날이다.
[출처]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작성자 무구

 

 

 

7.녹원전법상(鹿苑傳法相)

()를 깨치신 부처님은 자신과 함께 고행하던 다섯 비구에게 맨 처음 깨달음을 전했다. 그들은 매우 총명하고 숙세의 선근이 있는 수행자였기에 부처님은 이들에게 먼저 법을 설하기 위해 부다가야에서 수백떨어진 녹야원(鹿野苑)으로 향했다. 도중에 발타라사나발타라리라는 두 명의 상인을 만났다. 이들은 부처님의 위의에 존경심이 절로 일어나 꿀에 볶은 밀을 공양했는데 이들이 최초의 귀의자다.

 

이어 부처님은 녹야원에서 다섯 비구를 만났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을 전혀 모르는 다섯 비구는 자기들끼리 부처님을 아는 척하지 않기로 했지만 부처님의 위의가 예전과는 다르고 사람을 압도하는 기운과 몸에서 나는 광채에 저절로 이끌려 부처님이 곁에 오자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자리를 권했다.

 

다섯 비구는 고타마여, 멀리서 오시느라 고단하시겠습니다라고 말을 건네자 부처님은 이제부터 나를 고타마라고 부리지 마라. 여래(如來)라고 불러라. 나는 이제 여래가 되었다고 말했다. 여래란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 사람이라는 뜻과 함께 진리의 세계에서 설법하러 온 사람이란 뜻도 포함하고 있다.

 

부처님은 다섯 비구에게 수행자들이여, 이 세상에는 두 가지 극단으로 치우치는 길이 있다. 하나는 육체의 요구대로 자신을 맡기는 쾌락의 길이요, 다른 하나는 육체를 너무 지나치게 학대하는 고행의 길이다. 사문은 이 두 가지 극단을 버리고 중도(中道)를 배워야 한다. 여래는 바로 중도의 길을 깨달았고, 그 길에 의하여 열반에 도달한 것이다. 도는 몸을 괴롭게 함으로써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또한 몸과 마음을 편안하고 즐겁게 함으로써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괴로움과 즐거움의 두 변을 여의고 중도를 행하는 자만이 도를 얻는 것이니라라고 말씀했다.

 

또한 부처님은 네 가지의 거룩한 진리인 사성제(四聖諦)’를 설파했다.

태어나는 것은 괴로움이고, 늙는 것도 괴로움이며, 병을 앓는 것도 괴로움이며, 죽는 것도 괴로움이다. 사람과 헤어져야 하는 괴로움이 있는가하면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야하는 괴로움도 있다. 이같은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과 욕망의 깔려있기 때문으로 이를 없애기 위해서는 여덟 가지 바른 길, 팔정도(八正道)의 실천을 통해 도를 얻어야 한다고 말씀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은 중도와 사성제 등 여러 가지 법문을 설하였는데 이것을 초전법륜(初轉法輪)이라 한다.

 

 

 

8.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진리의 수레바퀴를 굴리신 지 45. 그동안 부처님께서는 항상 중생 속에서 동고동락하셨다. 그러나 80세가 되신 해에 부처님은 아난 존자에게 '나는 이미 모든 법을 설했고 내게 비밀은 없으며 육신은 이제 가죽끈에 매여 간신히 움직이고 있는 낡은 수레와 같다.'고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마지막 설법을 하였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기 자신에 의지하라.

진리에 의지하고, 진리를 스승으로 삼아라.

진리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등불이 되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 장아함경 > < 유행경 >

 

​​이것이 유명한 자등명 법등명 (自燈明 法燈明)의 열반 유훈이다.

 

그리고 생애 마지막 전법의 길을 떠나시어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의심나는 것이 있는가를 세 번이나 물으신 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당부하셨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하니 부지런히 정진하여 고통의 속박에서 벗어나라.

 

길에서 나서 길에서 살다 길에서 가시니 이 날이 음력 215일 열반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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