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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17. 11. 14.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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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산성 / 김훈 / 학고재 / 2007.05.17.


영화 <남한산성>이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으며, 북한을 둘러싸고 미·중·일 주변 강국들의 움직임이 역동적이라 소설 남한산성을 다시 읽으면서 강대국을 대하는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지 생각해 보고 싶었다. 특히 트럼프가 정권을 잡고 있는 미국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그 실마리를 찾고 싶었다.


김훈의 문장은 지식인의 문장이다. 정제되고 안정적이다. 또한 사관처럼 상황을 지켜보고 그것을 최대한 설명을 절제한 채 제시하고 있다.  딱딱한 느낌을 줄 수도 있지만 짧은 문장으로 몰입도를 높이고 독자로 하여금 깊은 여운에 잠기게 한다.


今日不可無崔遲川和戰論

百歲不可無三學士主戰論


오늘날에 있어서 최명길(호, 지천)의 화전론이 없을 수 없고, 긴 세월로 볼 때 삼학사의 주전론도 없을 수 없다는 뜻이다. 백범 김구 선생이 남북 협상을 위해 북으로 떠날 때 그 심정을 이 대구로 표현했다고 전해진다. 얼마간 비슷한 상황이라 할 수도 있다. 전략전술은 때에 따라 신축자재하여야 하는 것이다.-한겨레, 11/16 남재희 칼럼


화전론이 현실에 바탕을 둔 전술이라면 주전론은 이념에 바탕을 둔 전략이다.

전술 없는 전략이 있을 수 없고 전략 없는 전술이 있을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최명길이 옳다. 전략과 전술을 모두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욕은 혼자서 먹고 있다. 입으로는 결사항쟁을 외치면서도 속으로는 빨리 성에서 나가기를 바라는 주전론자들, 화전을 생각하면서도 입 밖에 내지 못하는 영의정 김류를 비롯한 기회주의자들을 대신해 최명길은 무거운 짐을 혼자서 지고 있는 것이다.


김상헌이 최명길을 비난하면서 한 말,

" 명길은 울면서 노래하고 웃으면서 곡하려는 자입니다."

정체성을 지키면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이러한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김상헌은 전략만 있다. 만약 김상헌의 길로 가면 현실은 철저히 괴멸할 것이다. 전략의 바탕을 이루는 이념도 따져 봐야 한다. 김상헌이 지키고자 하는 이념이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 그것은 '再造之恩'이라는 선조가 만들어낸 통치 이데올로기가 아닌가. 뿌리 없는 말일수록 요란하고 위험하다. 우리의 역사는 이런 말들이 지배해왔다. 그래서 목소리 큰 놈이 이긴다는 말이 생겼을 것이다. 백성의 고통을 헤아리는 최명길의 낮은 목소리가 훨씬 울림이 크다. 


1500년대 후반에 태어난 사람은 임란, 정묘호란, 병자호란을 모두 겪었다고 한다. 말 그대로 <헬 조선>에서 살았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왕권이 유지된 것은 '재조지은'의 이데올로기를 굳건히 지켰기 때문이다. 민족적 비극을 전화위복의 계기로 삼지 못하고 오히려 퇴행적 행동을 일삼아 결국 국권상실로 이어진다.


남한산성에서 인조는 철저히 관찰자로 존재한다. 현실을 스스로 파악하고 정리하며 결단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마치 청와대의 비밀장소에 있으면서 상황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일을 처리해 가는 박근혜 전 대통령이 떠오른다. 책임지고 하는 일이 없으니 책임질 일도 없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우리 지도자들이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이 번 포항지진에 대처하는 정부의 모습을 보면서 이제 우리 사회도 바뀌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현장을 중시하고 피해자 중심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이 희망의 빛을 준다.

그 밑바닥에는 대장장이 서날쇠와 같은 민중의 힘이 깔려 있을 것이다.

김상헌에게 죽임을 당한 뱃사공, 청나라 앞잡이 정명수도 시대의 산물이다.

이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박씨전>에 나오는 이시백을 조금 더 알게 되었으며, 읽으면서 소설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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