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얼빈 도리공원(哈爾濱道里公園) 유치환 사람의 솜씨로 꾸며진 꽃밭 하나 없이 크나큰 느릅나무만 하늘로 어두이 들어서서 머리 우에 까마귀떼 종일을 바람에 우짖는 슬라브의 혼(魂) 같은 울암(鬱暗)한 수음(樹陰)에는 나태한 사람들이 검은 상념을 망토같이 입고 혹은 벤취에 눕고 혹은 나무에 기대어 섰도다 하늘도 광야같이 외로운 이 북쪽 거리를 짐승같이 고독하여 호올로 걸어도 내 오히려 인생을 윤리(倫理)치 못하고 마음은 망향(望鄕)의 욕된 생각에 지치었노니 아아 의식(衣食)하여 그대들은 어떻게 스스로 족하느뇨 창량(蹌踉)히 공원의 철문을 나서면 인거(人車)의 흘러가는 거리의 먼 음천(陰天) 넘어 할 수 없어 나누은 광야는 황막(荒漠)히 나의 감정을 부르는데 남루한 사람 있어 내게 인색한 소전(小錢)을 욕구하는도다 - (1942년) *도리공원 1909년 10월 23일 거사 3일전 안중근의사가 찾았던 곳. 독립되기 전까지 이곳에 묻어달라고 유언. 중국공산당 혁명가 이조린의 이름을 따서 현재는 자오린공원(兆麟公園)이라 함. |
<북만주와 유치환>
○ 일제 어용단체 활동
- 40년 봄부터 북만주 빈강성(賓江省) 연수현(延壽縣) 신구(新區)의 "자유이민촌 가신흥농회" 농장을 경영하며 일제어용단체인 하얼빈협화회에 근무함. 1945년 6월 귀국.
○ 친일 논설 기고
- <만선일보>에 “대동아전쟁과 문필가의 각오” 기고(1942.2.6.)
○ 친일시
십이월의 북만(北滿) 눈도 안 오고
오직 만물을 가각(苛刻)하는 흑룡강 말라빠진 바람에 헐벗은
이 적은 가성(街城) 네거리에
비적(匪賊)의 머리 두 개 높이 내걸려 있나니
그 검푸른 얼굴은 말라 소년같이 적고
반쯤 뜬 눈은
먼 한천(寒天)에 모호히 저물은 삭북(朔北)의 산하를 바라고 있도다
너희 죽어 율(律)의 처단이 어떠함을 알았느뇨
이는 사악(四惡)이 아니라
질서를 보전하려면 인명(人命)도 계구(鷄狗)와 같을 수 있도다
혹은 너의 삶은 즉시
나의 죽음의 위협을 의미함이었으리니
힘으로써 힘을 제(除)함은 또한
먼 원시에서 이어온 피의 법도로다
내 이 각박한 거리를 가며
다시금 생명의 험열(險烈)함과 그 결의를 깨닫노니
끝내 다스릴 수 없던 무뢰한 넋이여 명목(暝目)하라!
아아 이 불모한 사변(思辯)의 풍경 위에
하늘이여 은혜하여 눈이라도 함빡 내리고지고
- “수(首)”(국민문학(42년 3월)
* 비적: 독립운동가 또는 떼도둑(당시는 독립운동가의 의미로 쓰임)
“전야”- 학병 지원 촉구(춘추, 43년 12월)
“북두성” - 대동아공영권 수립 축원(조광, 44년 4월)
-유치환, 친일인명사전 수록 보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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