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지 높은 선승이 제자와 함께 길을 가고 있었다. 어느 마을 앞 개울가에 이르렀을 때, 한 처녀가 개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비가 많이 와 개울물이 불어나서 건널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선승은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처녀를 업어서 개울을 건네주었다.
그 뒤 제자는 길을 걸으면서도 스승이 여인을 업은 것이 계속 마음에 걸렸다. 참다못한 제자는 스승에게 물었다.
"출가한 몸으로 어떻게 여인을 업을 수 있습니까?"
스승이 말했다.
"이놈아 너는 아직까지 여인을 업고 있느냐? 나는 개울을 건네준 순간 그 여인을 내려놓은 지 이미 오래다."
선승은 지금 개울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한 사람을 만났고, 제자는 '처녀'에 얽힌 자신의 생각을 만났다. 선승은 그 사람을 다시 만나면 그때 그 상황에서 새로운 그 사람을 만난다. 그러나 제자는 여전히 '처녀'만 만난다. 당신은 누구를 만나겠는가?
-<인문학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불교수업, 김사업> 172-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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