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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60 완주 모악산

취미활동/등산

by 빛살 2021. 11. 26.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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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2021.11.19. 금요일
*시간: 03:32
*거리: 5.04km
*코스: 입구 표지석-선녀폭포-대원사-수왕사-정상(원점회귀)

-모악산(母岳山 793.5m): 산세가 아기를 안고 있는 어머니의 형상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
 계룡산 신도안, 풍기 금계동과 더불어 명당으로 이름 높음.
모악산 일대는 한국 신흥종교의 온상으로 이곳에서 발생한 증산교계(甑山敎系) 일색이다.
-대체로 평이한 코스
-정상을 kbs 송신소가 차지하고 있어 아쉬웠다.

등산로 입구
고은 시비

-슬픔에는 거짓이 없다 어찌 삶으로 울지 않은 사람이 있겠느냐
오래오래 우리나라 여자야말로 울음이었다 스스로 달래어온 울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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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나무와 나뭇가지와 깊은 하늘 속의 우듬지의 떨림을 보며
나 자신에게도 세상에도 우쭐해서 나뭇짐 지게 무겁게 지고 싶었다
아니 이런 추운 곳의 적막으로 태어나는 눈엽(嫩葉)이나
삼거리 술집의 삶은 고기처럼 순하고 싶었다
너무나 교조적인 삶이었으므로 미풍에 대해서도 사나웠으므로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 중에서
 
이런 시를 쓴 사람이 수십년 간 상습적으로 성폭행을 했다니!

주차장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오는데도 단군과 관련된 건물이 몇 있었다.
선녀폭포

<선녀폭포와 사랑바위>
먼 옛날 이곳 선녀폭포에서는 보름달이 뜨면 선녀들이 내려와 목욕을 즐기며, 수왕사 약수를 마시고, 모악산의 신선대에서 신선들과 어울리곤 하였는데, 어느 날 폭포 곁을 지나던 나무꾼이 선녀들의 아리따운 자태에 넋을 잃고, 그 모습을 잊지 못해 병을 얻고 말았다.
선녀들의 모습을 한 번만 더 보고 죽는 게 소원이었던 나무꾼은 보름달이 뜨자 폭포를 찾아와 선녀들을 지켜보던 중, 뜻밖에 한 선녀와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이들 두 남녀가 대원사 백자골 숲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입 맞추는 순간 난데없이 뇌성벽력이 요란하게 울렸고 두 남녀는 점점 돌로 굳어지고 말았다.
돌이 된 두 남녀의 모습이 마치 떨어질 줄 모르고 열렬한 사랑을 속삭이는 듯하다 해서 ‘사랑바위’라 부르며, 여기에 지성을 드리면 사랑이 이루어진다고 전해진다.

-입구에 프러포즈 광장이 있는 이유를 알겠다.
천일암-대원사 갈림길, 입구의 단군 관련 시설들이 이해된다.
대원사, 대웅전과 명부전. 정상의 kbs 송신탑이 보인다.

대원사(大院寺)는 고구려에서 백제로 귀화한 열반종(涅槃宗)의 개산조인 보덕(普德)의 제자 일승(一乘)·심정(心正)·대원(大原) 등이 670년(문무왕 10)에 창건한 사찰이다. 이들은 열반종의 교리를 배운 뒤 스승이 있는 경복사(景福寺)를 바라볼 수 있는 위치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그 뒤 1066년(문종 20) 원명(圓明)이 중창하였고, 1374년(공민왕 23) 나옹(懶翁)이 중창하였으며, 1612년(광해군 4) 진묵(震默)이 중창하였고, 1733년(영조 9) 천조(千照)가 중창하였다. 그리고 1886년(고종 23) 금곡(錦谷)이 중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사전>에서
증산 강일순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기도 하다.

수왕사

‘물왕이절’, ‘무량(無量)이절’을 한자로 옮긴 것이 수왕사. 680년(신라 문무왕 20년)에 보덕화상이 창건, 1125년(고려 인종 3년)에 숙종의 2왕자인 원명국사가 중창, 1597년(선조 30년) 정유재란 때 소실, 1604년(선조 37년) 진묵대사가 중건, 1951년 1월 10일 공비토벌작전으로 소실, 1953년 천석진사(千錫振師)가 재건.

수왕사 진묵조사전

진묵대사(震黙大師)
조선 중기 고승인 진묵조사 일옥(1562-1633)은 만경현 불거촌에서 태어났다. 7세때 전주의 봉서사에서 출가한 그는 불경을 한 번 읽으면 곧 암송하고 내용을 통달하였으므로 따로 스승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능엄경(楞嚴經)>을 즐겨 읽었고 좌선삼매에 빠져 끼니를 잊는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며, 선정의 높은 경지에서 유유자적하시며 중생을 제도하였다.
법력이 높았던 그를 유학자들은 ‘비록 승려이지만 유림의 행동을 하였다.’는 평을 하며 진도인(眞道人)이라 부른 것처럼 폭넓게 학문에 전념하였다. <성리대전>을 빌려 동구 밖에 나가기 전에 다 외웠다거나 신이한 풍수지리학과 공중을 날아다녔다는 등의 기행, 이적으로 석가의 소화신(小化身)으로 추앙받았다. 암울했던 시대에 대한 고뇌가 기인으로서의 진묵조사의 행적이었다. 선(禪)의 경지에서는 당대에 같이 살았던 서산대사와 버금가는 선지식이라 할 수 있다.-<대원사>에 있는 안내문에서

수왕사 부근의 이정표
중인리 갈림길 이정표
모악산정상 400m 이정표대로 계속 갔다.
송신소를 통과해야 정상에 갈 수 있는 듯, 코로나 때문에 개방 임시 중단 안내문
이곳이 정상을 대신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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