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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26. 2. 1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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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모노/성해나/창비/2025.11.19.

7편의 단편소설을 묶어 놓았다. 웹툰을 보는 것처럼 선명하지만 수많은 신조어, 줄임말, 외국어, 낯선 사람들과 작품 이름이 등장해 검색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해 시간이 지체되기도 한다. 세대차이를 느끼게 하는 문체다.
"넷플릭스 왜 보냐. 성해나 책 보면 되는데."라는 박정민 배우의 말처럼 재미도 있지만 자신의 정체성과 세계에 대한 각성 없이 현실에 매몰되는 인물들이 처연해 보인다.

<길티 클럽: 호랑이 만지기>
길티플래저는 영어 길티(Guilty 죄책감이 드는)와 플레저(Pleasure 즐거움)를 합성한 신조어이며, 어떤 일을 할 때 죄책감•죄의식을 느끼지만, 또 동시에 엄청난 쾌락을 만끽하는 심리를 말한다. 유사한 표현으론 배덕감, 逸脫감이 있다.
소설은 유명 영화 감독 김곤이 치앙마이 타이거 킹덤에서 호랑이를 쓰다듬는 영상과 그에 대한 댓글을 소개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길티 클럽은 김곤의 세번째 작품 '길티 플레저'에서 따온 듯하다. 26명의 골수팬이 회원이고 '일부 단어(ex. 파주 세트, A군) 절대 금지', '김곤 감독님에 대한 비하 발언 및 욕설 일절 금지' 등 6가지 규정이 있다.
김곤이 눈물 연기 못한다고 애 팔뚝을 피멍 들 때까지 꼬집었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감독이 지는 순간 영화도 끝이라는 생각으로 나는 김곤을 옹호한다. 사실 여부를 따지지 않고 믿음으로 해결하려는 태도다. 독립 영화관에서 열린 GV에서 김곤이 사과를 하자 나는 믿음이 깨지는 허탈감에 빠진다.
치앙마이에서 발톱과 송곳니를 뺀 호랑이와 어울리면서 어쩐지 죄를 저지르는 것 같으면서도 묘하게 흥분되는 느낌을 받았다.
《그건 언젠가 느껴본 적 있는 감각이었다. 죄의식을 동반한 저릿한 쾌감, 그 기시감의 정체를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지독하고 뜨겁고 불온하며 그래서 더더욱 허무한, 어떤 모럴./ 떨쳐내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이제는 얼굴조차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의 말처럼, 이미 일어난 일은 없던 일이 될 수 없으니까.》

<스무드>
한국인 이민 3세대이지만 완벽한 미국인으로 살고 있는 듀이. 유명 미술가 제프의  전시회 매니저로 한국에 온다. 전시장은 고급 아파트에서 입주민만이 출입할 수 있다. 신작 <스무드>가 공개될 예정이다. 제프의 작품은 사전지식 없이도 감상할 수 있고 뭘 안다고 감상이 크게 달라질 것도 없었다.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나 역시도 그런 매끈한 세계를 추앙했다. 구 안쪽에 뭔가 숨겨진 것 같기도 했다. 제프의 작품에는 의도도 동기도 비밀도 없었다. 작품 의도를 물을 때마다 세프는 그저 어깨를 으쓱하고 말았다.
나는 고궁 구경을 가다가 태극기 집회 물결에 휩쓸린다. 대구에 있는 미군부대에서 프라이드치킨을 팔았던 할아버지의 안내로 의미도 모르면서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제대로 아는 것은 없지만 그들과 동화되어 간다. 자신과 세계에 대한 각성없이 주어진 환경에 매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혼모노> <-> 니세모노(가짜, 선무당)
30년 경력의 박수무당인 문수는 장수할멈을 지극히 모시며 쌀점으로 무업을 이어간다. 20대 초반의 신애기가 이웃으로 이사를 와서 장수할멈과 접신을 한다. 접신한 신애기가 나에게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느냐"는 말을 한다. 나는 니세모노로 전락한다.
주요 고객인 황보의원이 시장 선거에 나가고 나에게 굿을 부탁했지만 나중에 신애기로 바꾼다. 신애기가 굿하는 날 굿으로 대결을 한다. "삼십년 박수 인생에 이런 순간이 있었던가. 누구를 위해 살을 풀고 명을 비는 것은 이제 중요하지 않다. 명예도(무형문화재), 젊음도, 시기도, 반목도, 진짜와 가짜까지도./가벼워진다. 모든 것에서 놓여나듯. 이제야 진짜 가짜가 된 듯./........./ 하기야 존나 흉내만 내는 놈이 뭘 알겠느나마는.
마지막 부분이다. 흉내만 내는 놈은 누구일까?

<구의 집: 갈월동 98번지>
경동수련원의 설계자는 건축가 구보승이다. 하지만 원래 설계를 맡은 사람의 그의  스승 여재화이다. 워낙 바쁜 스승은 만만한 제자인 구보승에게 일을 맡긴다. 실제로 건물은 고문실을 갖춘 수감시설이다. "건축에서 가장 중요한 인간이야. 우리가 설계한 공간에서 생활할 사람들이지." 여재화가 구보승에게 한 말이다. 구보승은 건물의 목적에 대한 통찰없이 효율적인 고문환경을 만들려고 노력한다. 처음에는창을 없애려다가 빛이 인간에게 희망뿐 아니라 두려움과 무력감을 안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창을 낸다. 여재화는 건축 위에 인간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며 구보승을 "이상을 뺀 지독한 합리주의자"라고 한다. 여재화는 설계자 이름 구보승으로 올리고 구의 집이라 명명하며 자신은 책임자에서 빠진다.
한나 아렌트의 '무사유'가 떠올랐다. 타자의 입장에서 생각하지 못하는, 메타인지가 없는 존재.

<우호적 감정>
경기도 소서리 농촌 재생 뉴딜사업을 중심으로 모든 일이 이익 문제와 관련이 있으며 어떠한 방법으로든 이익을 지켜내는 사람을 중심으로 조직이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준다.

<잉태기>
부유층의 미국 원정출산을 중심으로 딸을 사이에 두고 어머니와 시부의 갈등을 다루고 있다. 자기 정체성의 혼란과 자식을 온전한 인간으로 대하지 않고 경쟁적으로 소유하려는 욕망이 충돌한다.

<메탈>
메탈 음악에 빠졌던 세 명의 코발트블루 같은 꿈이 회색빛으로 변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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