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도 비교적 얇고 수록된 17개의 단편도 길이가 짤막하다.
하지만 첫 작품부터 쉽게 읽히지 않는다. 읽으면서도 자꾸 뒤돌아 보게 되고 다 읽고 나서도 왠지 미로에서 헤매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그런 과정과 느낌이 싫지만은 않았다.
픽션은 허구, 소설로 번역된다. 소설은 개연성(가능성) 있는 허구이다. 그럴듯하게 꾸며진 이야기라는 뜻이다. 작품 속에서 반복해 나타나듯 세상(우주)은 '미로'이고, 어떤 개연성도 있을 수 있다면 길을 찾기 위해서는 순간에 집중하며 신중한 선택을 해나갈 수밖에 없다. 다중 우주설(평행우주, 메타버스 - 양자역학적 다중우주)에 의하면 내가 선택하지 않은 세계도 그대로 존재하고 그것도 무한히 확산해 나간다고 한다.
수록 작품들은 꿈(미로의 악몽, 거울의 악몽), 신화 등의 모티브가 중첩되어 신비주의적 색채가 강하다. 읽고 난 뒤에도 '미로'(무한성, 혼돈, 무질서, 우연)와 '거울', '영원회귀'(반복, 무한), '다중우주'(중첩, 무한성, 정체성 혼란) 등의 단어와 이미지가 맴돈다.
이제 무엇든지 함부로 단정짓지 말자. 무한한 세계에서 좁디 좁은 견해에 사로잡혀 고집을 부리는 것은 조그만 고치 안에서 웅크리고 있는 애벌레나 번데기 같은 행위가 아닐까!
세상(우주)은 미로와 답이 없는 수수께끼이다. 모든 시도가 쓸데없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계속 노력한다. 왜냐하면 기쁨은 해답이 아니라 수수께끼에 있다고 생각하니까.
나를 겸손하게 하는 책이다.
1부.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 추상적, 우주론. 어렵다.
<서문>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탐정소설, 나머지는 환상소설
<틀뢴, 우크바르, 오르비스 테르티우스>
1장. 비오이 카사레스는 우크바르의 어느 이교도 지도자가 거울과 성교는 사람들의 수를 늘리기 때문에 혐오스러운 것이라고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12)- 영미백과사전 "우크바르", 카사레스의 창작
2장. 허버트 애시에게 온 우편물- 틀뢴 제1 백과사전 11권 제목: 오르비스테르티우스.
* 틀뢴 건설자들: 비밀결사의 작품(애시도 집필자 중 1)
그 계획은 지극히 방대해서 필자 개개인의 공헌도는 정말로 미미하다. 처음에 틀뢴은 단순한 하나의 카오스, 그러니까 무책임한 방종과 같은 행위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이제는 그것이 코스모스이고, 아직 잠정적이기는 하지만 그것을 지배하는 은밀한 법칙들이 이미 명확하게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20-21)
* 우주관: 이 행성에 있는 국가들은 태생부터 관념적이다. 일원론. 관념론.
그들에게 세상은 독립적인 행위들로 이루어진 이질적인 연속물이다. 그것은 연속적이고 시간적이지만 공간적이지는 않다.(21)
틀뢴의 고전 문화가 오직 하나의 학문, 즉 심리학으로만 이루어져 있다는 것은 과장된 말이 아니다.(23) - 관념적. 우주를 공간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계속적으로 전개되는 일련의 정신적 과정으로 이해.
틀뢴의 형이상학자들은 진실, 심지어 그럴듯한 진실조차 추구하지 않고, 오직 놀라움만을 찾는다.(24) - 의제철학(허위임을 알면서도 설정하는 가설에 바탕을 둔 철학)을 바탕으로 함.
또 어느 학파는 우리가 여기서 잠들어 있는 동안 우리는 또 다른 어떤 곳에서 깨어 있고, 그래서 모든 사람은 사실상 두 사람이라고 주장한다.(25) - 다중우주. 정체성 혼란.
모든 작품들이 단 한 작가의 작품이며, 그 작가는 영원하고 익명이라는 생각이 확립되어 있어 저자명이 명시된 책은 거의 없다.(29)
* 흐뢴(Hron)과 그 복수형인 '흐뢰니르(Hronir): 누군가가 무언가를 잃어버렸을 때, 그것을 간절히 찾거나 혹은 그것이 존재한다고 믿는 과정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복제품. 틀뢴에서는 고고학자들이 유물을 발굴하는 게 아니라, '기대'를 통해 유물을 생산해낸다. 과거에 이런 유물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설이 실제로 땅속에 그 유물을 만들어내는 식이다.
3장. 후기
십 년 전에는 질서라는 외형만 갖추었다면 어떤 체계나 대칭도 - 변증법적 우물론,반유태주의, 나치즘 -인류를 매료시킬 수 있었다. 그러니 어떻게 틀뢴 앞에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있겠는가? 어떻게 질서 정연한 행성이라는 세밀하고 방대한 증거 앞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틀뢴의 성질과 틀뢴과의 접촉은 이 세상을 붕괴시켰다. 틀뢴의 엄밀함에 현혹된 인류는 그것이 천사들의 엄밀함이 아니라 체스 대가들의 엄밀함이라는 것을 잊고, 또다시 잊어버리는 중이다.(38-9)
<알모타심으로의 접근> 나는 너다.
미르 바하두르 알리가 지은 탐정소설 기법, 신비주의적 속성의 소설.
자유사상가 법대생의 인물 찾기. - 거기서 그는 이 비천한 사람이 한 친구,또는 한 친구의 친구를 반영하고 있었다고 가정한다. 그 문제를 다시 깊이 생각하면서, 그는 이런 신비스러운 결론에 도달한다. "지구의 어딘가에 누군가가 있는데 바로 그에게서 이러한 깨달음이 유래한다. 지구의 어딘가에는 이 깨달음과 동일한 누군가가 있다." 법대생은 그 사람을 찾는 데 평생을 바치기로 결심한다.(45)
* 파리드 알딘 아타르 <새들의 회의> : 자기들이 바로 시무르그(새들의 왕)이고, 시무르그는 그들 각자이며 동시에 모두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러저러한 애매한 유사성들은 찾는 주체와 찾는 대상이 동일하다는 것을 의미하는지도 모른다. 또한 찾는 대상이 찾는 주체에게 이미 영향을 끼쳤음을 의미할 수도 있다. 또 다른 장에서는 알모타심이 법학생이 죽였다고 생각하는 '힌두교도'라는 것을 암시하기도 한다.(저자 주. 50)
<피에르 메나르, '돈키호테'의 저자>
세르반테스의 작품과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은 글자상으로는 하나도 다르지 않고 똑같다. 그러나 피에르 메나르의 작품은 세르반테스의 작품보다 거의 무한할 정도로 풍요롭다. (그를 비방하는 사람들은 더 모호하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모호성은 풍요로움이다.)(63)
그는 모든 사람이 힘들게 일하더라도 그건 결국 헛된 행위임을 깨달았고, 그래서 그런 행위를 먼저 하기로 결심했던 것이다.
<원형의 폐허들>
꿈(환상), 환영 - 모든 것이 마법사처럼 꿈속에서 살고 있는 것이다.
그날 해가 질 무렵, 그는 석상의 꿈을 꾸었다. 그것이 살아서 몸을 떠는 꿈을 꾸었다. 그것은 호랑이와 말 사이에서 태어난 흉측한 잡종이 아니라, 동시에 사나운 두 동물이었을 뿐만 아니라 황소이기도 했고 장미나 폭풍이기도 했다. 여러 가지 형상의 이 신은 속세에서의 자기 이름이 '불'이며, 바로 그 원형의 신전(그리고 그와 비슷한 다른 신전들)에서 사람들이 자기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고 숭배했으며, 남자가 꿈꾸었던 환영에게 마술적으로 생명을 불어넣어 '불'인 자신과 꿈꾸는 남자를 제외한 모든 창조물들이 그 환영을 뼈와 살로 이루어진 실제 사람이라고 믿게 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리고 새로 창조된 그 인간에게 제의를 가르친 다음, 강 아래에 피라미드들이 아직 남아 있는 부서진 다른 신전으로 보내 그 허물어진 신전에서도 자신을 찬양하는 목소리가 들리도록 하라고 꿈꾸는 사람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꿈꾸는 사람의 꿈속에서 꿈꾸어진 소년이 잠을 깼다.(73)
안도감과 치욕감 그리고 두려움을 느끼면서, 그는 자기 역시 그를 꿈꾸고 있던 또 다른 사람의 환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바빌로니아의 복권>
바빌로니아 - 불확실성의 세계
복권: 1. 희망 2. +불운, 벌금 3. +구류 날짜 - 행운과 불운
회사- 복권 관리, 조작 -> 우연으로 돌림, 사람들은 우연을 믿음- 우연의 만연
* 카프카라고 불리는 성스러운 화장실(83): "운명이라는 거대한 장난(복권) 앞에서 인간의 기도와 고발이 모이는, 우스꽝스러우면서도 공포스러운 성소" 이를 통해 바빌론(우리가 사는 세상)의 질서가 얼마나 임의적이고 미궁 같은지를 시각화하고 있다.
<허버트 퀘인의 작품에 대한 연구> -놀라움의 추구
미로의 신- 독자가 탐정 역할, 에이프릴 마치- 역행하고 그물눈처럼 갈라지는 소설,
비밀의 거울- 프로이트적 희극, 성명서- 케인은 항상 독자란 이미 멸종된 종족이라고 주장하곤 했다. "잠재적이든 실제적이든, 작가가 아닌 유럽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거든"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하곤 했다. 또 그는 문학이 줄 수 있는 많은 행복 중 최고의 것은 상상이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런 행복을 누릴 수 없기에, 많은 사람들이 비슷하게 흉내 낸 것에 만족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대중'이라는 이름의 그런 '불완전한 작가들'을 위해 퀘인은 '성명서'에 실린 여덟 개의 이야기를 썼다.
<바벨의 도서관> 도서관- 우주
도서관은 하나의 구체이며, 그 구체의 정 한가운데는 어떤 종류의 육각형이건 육각형이고, 그것의 원주(원형의 책-유일신)로는 접근할 수 없다.
책들은 단 25개의 기호(알파벳 22자, 마침표, 쉼표, 공백)만으로 이루어져 있고 동일한 책이 두 권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진리가 이곳에 있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처음엔 환호하지만, 곧 절망에 빠진다. 수많은 책 중 '의미 있는 한 줄'을 찾을 확률은 거의 제로에 가깝기 때문이다.
각각의 책은 유일무이한 것으로서 대체가 불가능하지만('도서관'은 완전하고 완벽하기 때문에), 항상 그것에 대한 수십만 권의 불완전한 복사본이 있다는 사실이다.
어느 육각형 진열실의 어느 책장에는 '나머지 모든 책'의 암호 해독서이면서 완벽한 개론서가 존재하고 있음이 틀림없다고 사람들은 주장했다.
그들은 미쳐서 헛소리를 되뇌는 신성(divinity)처럼 모든 걸 긍정하고 부정하며, 마침내는 모든 걸 혼동한다.(107, 도서관은 무한해 보이고 법칙이 있는 것 같으면서도, 정작 알맹이는 혼돈으로 가득 차 있다.)
사실 '도서관'은 모든 언어 구조와 스물다섯 개의 철자 기호들이 만들어 낼 수 있는 모든 변형체들을 포함하고 있지만, 절대적으로 허튼소리는 하나도 없다. - 무질서해 보이지만 그 뒤에 숨겨진 거대한 질서가 있을지 모른다.
세상을 한계가 없는 것으로 상상하는 사람들은 가능한 책의 수에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있고 있다. 나는 그 오래된 문제에 대해 '도서관은 무한하지만 주기적이다.'라는 말로 해결책을 제안하고자 한다. 만일 어느 영원한 순례자가 어떤 방향으로건 도서관을 지나갔다면, 수 세기 후에 그는 동일한 책들이 동일한 무질서(무질서가 반복되면 질서가 될 것이다. 진정한 '질서'가) 속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확인할 것이다. 나의 고독함은 그런 우아한 희망'로 기뻐한다(109).
우주는 거대한 미로(인간의 지성으로 파악할 수 없는 복잡한 구조)이자 거울(우주를 복제하고 가짜를 만드는 불결한 존재)의 방이며, 인간은 그 속에서 희미한 의미의 실타래를 찾는 존재이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
스티븐 앨버트 박사는 유춘(독일군 스파이)의 조상인 '추이펀'이 남긴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이 실재하는 미로가 아니라, 모든 가능성이 동시에 일어나는 '시간의 미로'를 다룬 소설임을 밝혀낸다.
'두 갈래로 갈라지는 오솔길들의 정원'은 무질서한 혼돈의 소설(-우주의 이미지)이었습니다. 그리고 "모든 미래들이 아니라 몇몇 미래들"이라는 구절은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 두 갈래로 갈라지는 모습을 연상시켰지요. 작품 전체를 다시 한 번 읽고 저는 제 생각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소설에서 작중 인물은 여러 가능성과 마주칠 때마다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들은 버리게 됩니다. 거의 풀 수 없는 추이펀의 소설 속에서 작중 인물은 모든 것을 - 동시에 선택합니다. 그렇게 그는 몇 개의 미래들, 즉 몇 개의 미래들을 '창조하고', 그것들을 증식하면서 두 갈래로 갈라집니다. 거기에서 바로 그 소설이 가진 모순들이 설명됩니다.(3장에서 죽은 주인공이 4장에서는 살아있음)
* 우주의 이미지: 그는 무한하게 연속된 시간들을 믿었어요. 분산되고 수렴되고 병렬적인 시간들로 구성된 점차로 커져 가는 어지러운 시간의 그물망을 믿었던 거지요....시간은 셀 수 없이 많은 미래들을 향해 영원히 두 갈래로 갈라지거든요. 그 미래들 중의 하나에서 저는 당신의 적입니다."(127) - 다중 우주: "한 사람이 여러 대안 중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대안들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선택이 또 다른 세계를 만들어내며 공존한다"(모든 가능성은 어딘가에서 실제로 일어난다)
2부. 기교들
<1956년 후기> '남부'- 내 최고의 단편,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기억의 천재 푸네스> - 불면에 대한 긴 메타포, 자전적 요소가 강함.
푸네스는 말에서 떨어진 사고 이후,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하게 된다.
그는 힘들이지 않고 영어, 프랑스어, 포루투갈어, 라틴어를 배웠다. 하지만 나는 그가 사고하는 데는 그리 훌륭한 능력의 소유자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해 본다. 사고라는 것은 차이점을 잊는 것이다. 그것은 일반화하고 추상화하는 것이다. 푸네스의 비옥한 세계에는 상세한 것들, 즉, 곧바로 느낄 수 있는 세세한 것만 존재한다. - '망각'이야말로 인간이 세상을 이해하고 사유하게 만드는 필수적인 여과 장치이다.
<칼의 형상> 반전소설. 나와 타자의 동일성.
한 사람이 어떤 일을 한다면, 그건 마치 모든 사람이 그 일을 한 것과 마찬가지요. 그래서 어느 동산에서 있었던 단 한 번의 불복종이 모든 인류를 전염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는 전혀 부당하지 않소. 같은 이유로 한 사람의 유대인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 모든 인류를 구원하기에 충분하다는 사실도 전혀 부당한 일이 아니오. 아마 쇼펜하우어의 말에도 일리가 있는 것 같소. 나는 다른 사람이고, 다른 누군가는 모든 사람이며, 셰익스피어도 어떤 관점에서 보면 저 가엾은 존 빈센트 문이라오.
빈센트 문- 밀고자.
<배신자와 영웅에 관한 주제>
아일랜드, 퍼커스 킬패트릭(배신자이자 영웅)의 죽음에 대한 그의 증손자 라이언의 연구
역사의 순환적 성격- 킬패트릭과 카이사르의 죽음의 유사성(셰익스피어 작품 표절)
역사가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정교하게 짜인 각본(연극)일 수 있다.
<죽음과 나침반> 추리소설, 지적 오만, 미로.
나(레드 샤를라흐)는 세상이 하나의 미로이며, 거기에서 도망칠 수 없다는 느낌에 사로잡혔지. 북쪽으로 가는 척하든 남쪽으로 가는 척하든, 모든 길은 사실상 로마로 돌아오게 되어 있었으니까. 또한 그 미로는 내 동생이 신음하고 있는 사각형의 감방이고, 트리스트 르 로이 별장이기도 했어. 그런 밤들을 보내는 동안, 나는 두 얼굴로 바라보는 신과 열병과 거울을 관장하는 그 모든 신들에게 내 동생을 구속시킨 자(륀로트 탐정) 주변에 미로를 짜겠다고 맹세를 했다네. 나는 그 미로를 짰고, 그것은 굳건히 서 있네. 그 재료는 죽은 이교 연구자 하나, 나침반 한 개, 18세기의 어느 교파, 그
리스어의 한 단어, 단도, 페인트 공장의 마름모꼴일세.(180)
유대교 신비주의인 카발라(Kabbalah)를 플롯의 장치로 사용한다. 하느님의 이름인 '테트라그라마톤', 즉 야훼(JHVH)를 찾는 과정이 곧 살인의 과정으로 치환되며, 지식을 추구하는 행위가 역설적으로 파멸로 인도하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지나치게 똑똑한 것이 가장 큰 함정이 될 수 있다"는 보르헤스식의 서늘한 경고이기도 하다.
'직선 미로', '제논의 역설'
<비밀의 기적> 시간의 상대성(주관성)- 물리적 순간과 내면의 1년
야로미르 흘라딕- 미완의 비극 <적들--- 순환적 망상>의 저자.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1년의 시간이 필요함.
그는 신에게 자기의 작업을 끝낼 수 있도록 꼬박 일 년이라는 기간을 달라고 부탁했다. 전지전능한 하느님은 그에게 1년을 부여했다. 하느님은 그에게 비밀의 기적을 내렸다. 독일군의 탄환은 정해진 시간에 그를 죽일 것이었지만, 하사관이 명령을 내리고 군인들이 명령을 실행하는 사이에 그의 마음속에서는 일 년이 흐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당혹감에서 무감각의 상태로, 무감각의 상태에서 체념으로, 체념에서 갑작스러운 감사의 마음으로 옮겨 갔다.
그는 시간 속에서 움직이지 않은 채 세심하고 비밀스럽게 눈에 보이지 않는 자신의 고상한 미로를 만들었다. - 출구를 찾아가는 지적 행위
그는 자기의 희곡을 완성했다. - 예술은 작가의 정신적 완결 그 자체이다
<유다에 관한 세 가지 이야기> 성자
유다가 예수를 넘긴 것은 예수가 자신의 신성을 선언하고 로마의 압제에 대항하는 거대한 반란에 불을 붙이기 위해서였다고 추측한다. - 구원의 도구로서의 유다
유다는 하느님 안에서 충분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기에 지옥을 추구했다. - 유다는 신을 위해 가장 비천하고 혐오스러운 존재가 되기로 선택했다. 영적 희생자가 되어 예수의 인류 구원에 기여한다.
신은 완전히 인간이 되었다. 심지어 부정한 인간, 영원한 벌을 받아 끝없이 깊은 구렁에 빠질 정도의 인간이 되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그리스도는 역사의 복잡한 그물을 짜는 사람들 중에서 아무나 선택할 수 있었다. 그는 알렉산더나 피타고라스,
또는 루릭이나 예수가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비열하고 경멸스러운 운명을 선택했다. 그것이 바로 유다였다. - 신은 유다로 화신했다. "예수가 하늘에서 내려온 빛이라면, 유다는 그 빛을 완성하기 위해 가장 깊은 어둠 속으로 내려간 존재이다." 가장 낮은 자
그것은 하느님이 그런 무관심을 명하셨으며, 하느님께서는 자신의 가공할 만한 비밀이 이 땅 위에 유포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는 사실이었다.
<끝> 호세 에르난데스의 서사시 '마르틴 피에로(Martín Fierro)'의 재해석
정의의 사도로서 과제를 완수한 그는 이제 그 누구도 아니었다. 더 엄밀히 말해 그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이제 이 땅에서 그에게는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그는 이미 한 사람을 죽였던 것이다. 형제의 복수 -> 운명의 순환과 전이
<불사조 교파> 불사조 - 섹스
불사조 교파의 교도들이 지키는 유일한 종교 행위는 의식을 행하는 것이라고 증언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은 바로 '비밀'이다.
가장 생물학적이고 본능적인 행위(섹스)를 가장 숭고하고 신비로운 종교적 의식으로 둔갑시켜 설명한다.
<남부>
아마도 내 최고의 단편일 '남부'에 관해서는, 그것이 소설적인 사건들에 대한 직접적인 서술뿐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도 읽힐 수 있다는 점만을 이야기하고자 한다.(후기)
환상과 현실의 모호한 경계 - 실제 여행인가 환상 여행인가.
실제 병원 침대 위에서 죽어가고 있으며, 남부로의 여행은 그가 고통스러운 병원에서의 죽음 대신 꿈꿔온 '영웅적인 죽음'을 투사한 환상이다.
'내일 나는 내 농장에서 잠을 깰 거야.'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꼭 동시에 두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한 사람은 가을날을 보내면서 고향 땅을 조용히 걷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병원에 갇혀 체계적인 치료를 받고 있었다.
"밖으로 나가지."라고 다른 사람이 말했다.
그들은 나갔다. 달만에게는 희망이 없었기에 두려움도 없었다. 문턱을 나서며 그는 병원에서 보낸 첫날밤 주사를 맞고 있을 때, 이렇듯 넓은 하늘 아래서 칼싸움을 벌이며 적과 맞붙어 싸우면서 죽었다면 그것이 자기에게는 해방이며 행복이고 축제가 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이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거나 꿈꿀 수 있었다면, 이것이 그가 선택했거나 꿈꾸었을 죽음임을 알았다.
달만은 아마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도 모를 칼을 굳게 움켜지고 평원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