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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도서관 없는 일제 유산의 기형적인 학교를 넘어서-이덕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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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살 2007. 9. 9.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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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교육 제도가 본격적으로 보급되던 일제시대, 식민지 조선의 땅엔 전세계 어느 국가의 학교와도 다른 학교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교실도 있고, 교무실도 있고, 실습실, 매점, 식당도 다 있는데 조선의 학교에는 '도서관'은 허용되지 않았다. 학교에 '도서관'은 없다. 기원전 그리스 아카데미 학당에도 있었던, 조선시대 서원이나 성균관은 말할 것도 없고,고구려시대 태학과 경당에도 있었던, 교육 기관이라면 당연히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었던 '도서관'이 일제시대 학교에선 용납되지 않았다.

그래서 조선엔 운동장이나 교실은 있으되 도서관 없는 학교가 만들어진다. 그리고 학생들은 오로지 조선총독부가 발행했거나 검열을 거친 교과서만을 배울 수 있었고 볼 수 있었다. 그 외의 책을 놓아두거나 가르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학생들은 스스로 교과서 외의 책을 보는 것은 모두 불온하게 여겼다. 일제시대 중고등학교 대부분에서 '00독서회 사건'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적발되고 무더기로 처벌되곤 했다. 일제에게 있어서 이렇게 '독서'라는 단어 자체는 식민지 교과서 교육과 대치되는 말로 그 자체로 독립운동이요 체제전복운동이었던 것이다.

일제는 '도서관'의 사회 정치적 의미를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조선총독부 도서관 열람 규칙을 보면 조선인들들에겐 오로지 신서(新書)만이 열람 대상이었다. 새 책만 볼 수 있게 한 것은 조선인들에 대한 친절함이 아니라 즉 조선총독부 집권 이후에 검열을 받아 출판된 책만 자유로운 열람이 허용이 되었고 외국에서 발간된 책이나 옛날 책들은 모두 열람이 금지되었다.

그러나 해방이 되고 나서도 '도서관' 없는 이상한 학교는 계속된다. 1공화국 때도, 5공화국 때도 심지어 지금도 그들 교육 관료들에겐 '도서관' 없는 학교가 전혀 이상하지 않다. 심지어 이 체제에 지난 수십 년 간 익숙해진 교사들도 마찬가지다. 혹 '도서관'이 명목상 존재한다면 그것은 낡은 책 창고이거나, 도서는 없고 다시 교과서만을 확대 재학습하는, 그래서 명문대 입학의 문을 통과하는 교리 문답을 준비하거나 다음 관문인 고시공부를 위해 높은 칸막이가 쳐졌던 독서실이었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도서관'이라는 사전적 의미도 바꾸고 도서관 독서 진흥법에서 말하는 법률적 의미마저도 무시하고 있다. 자료가 없고, 이것을 관리하고 중계자 역할을 하는 사서가 없는 도서관은 법적으로 분명히 도서관이 아니다. 오로지 한국에서만이 책상만 있어도, 사서가 없어도 그것이 '도서관'이라고, 버젓이 도서관이 있다고 통계에 잡아 놓고 있는 불법이 무감각하게 자행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교육의 붕괴를 외치고 있다. 아무리 유명한 학원이라도 못 갖추고 있기 때문에 공교육 기관이 가장 경쟁력 있는 것은, 바로 학교의 운동장과 도서관, 실험실 등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학원이 학생들에게 수천 권의 양서와 웹 서핑을 위한 인터넷 PC, 수십 종의 정기간행물, 수백 종의 참고 도서를 갖추어 학생들의 학습 공간으로 제공하기는 힘들다. 그러한 학원에서는 각종 기자재를 사용하면서 다양한 과학 실험을 할 수 없다. 다양한 체험학습도 제공하지 못한다. 공교육의 교육 환경 개선과 경쟁력은 이런 것들을 우선 갖추어야 한다. 공교육 기관이 교육의 기본인 본질적인 학습 자료 및 교육정보센터인 도서관 하나 제대로 못 갖추고 있는 부분부터 우선해서 개선해야 한다. 또한 그 부분은 사교육으로 대체할 수 없다. '도서관' 없는 이런 일제 유산의 기형적인 학교부터 개선하는 것이야말로 공교육 정상화의 지름길이다.
-도서관 없는 일제 유산의 기형적인 학교를 넘어서-  

2003.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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