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회를 하루 앞두고 제법 많은 비가 내렸다.
그렇지 않아도 험한 산길을 달려야 하는데 비까지 내려 길이 진흙탕이 되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경주에서 수년 간 살았던 오 선생님이 걱정하지 말란다. 경주 남산은 마사토로 덮여 있어 전국적으로도 물이 잘 빠지기로 유명하며, 밤새 비가 내렸어도 아침이면 산길이 깜쪽 같이 깨끗하다고 한다.
8시 40분쯤 출발지인 통일전에 도착했다. 출발 시간이 10시니까 꽤 일찍 도착한 셈이다. 여러 번 대회에 나가 보았지만 이렇게 일찍 도착하기는 처음이다. 햇살은 구름 속에 숨어 있고, 전원의 상큼한 공기에 기분까지 상쾌해 진다. 달리기에 좋은 날씨다.
주차를 시켜 놓고 몸을 풀다가 오주택님을 만났다. 얼굴 한 가득 웃음을 머금은 모습이 언제 보아도 좋다. 50이 훌쩍 넘은 나이지만 웃음에 소년 같은 풋풋함이 묻어난다. 요즘도 매일 10km 이상을 뛰신단다. 달리기에 대한 열정, 젊은이 못지 않은 인터넷 사용, 꾸준한 글쓰기 등이 오주택님을 만년 청년으로 만드나 보다.
짜아~ 잔! 드디어 착복.
화랑의 숨결이 녹아 있는 남산에서,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지었을 통일전 앞에서 경건 한 마음으로 새로 산 클럽복을 입었다. 몸에 찰싹 붙는 상의, 입은 듯 만 듯한 하의. 옆에 있는 오하수 선생님, 김태일 선생님 모두 좋다고 한다. 오늘 남산의 정기를 듬뿍 받아 이 옷만 입으면 저절로 힘이 솟도록 마음 속으로 기원해 본다.
배번에 관한 이야기 하나. 이번 대회는 여러모로 칭찬받은 대회였지만 독실하게 기독교를 믿는 가정에서는 참가하기가 어려울 듯, 마라톤 하느라고 신앙 생활에 소홀한 오 선생님. 사모님이 볼까 봐 집을 나오면서 황급히 배번을 가렸단다. 위 아래로 절 이름이 새겨져 있으니..
광장에서는 식전 행사가 거행되는 동안 주차장에서 몸을 풀었다.
잘 생긴 진강화님, 5월 29일 호미곶울트라 마라톤에 참가한단다. 마음 착한 과메기 이상원님, 박영인님이랑 현장 접수했단다. 대회 홈피에서는 현장 접수 안 한다고 했는데.... 클럽 유망주 신진우님, 사모님과 함께 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넉넉한 웃음의 염우정님, 포항마라톤클럽의 정다운 얼굴들이 보인다.
주차장을 돌면서 몸을 풀고 있는데 포마 유니폼이 눈에 들어 온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건넸는데 이름을 모르겠다. 토요달리기에 안 나간 지가 너무 오래 되었다. 나중에 알아보니 김태환님이었다. 토요달리기에 자주 나가야겠다.
출발.
연습을 충분히 하지 못하니 무작정 달리는 나쁜 버릇이 들었다. 목표 시간도 없고 페이스 분배고 뭐고도 없다. 냅다 달리다가 힘들면 속도를 낮추고 힘이 좀 생기면 다시 냅다 달리는 들쑥날쑥형 달림이가 되어 버렸다. 오늘도 출발과 동시에 냅다 달렸다. 수목원쯤에서 돌아 다시 통일전 조금 못 미쳐 장승권님을 만났다. 책자를 보고 장승권님의 참가를 알고 있었던 터라 작년 울릉도 오징어마라톤 때 찍은 사진을 갖고 왔다. 대회가 끝나고 다시 만나기로 하고 앞서 나갔다.
3km쯤에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었다. 처음에는 호기롭게 달려나갔지만 곧 힘에 부쳐 걷기 시작했다. 해발 450m 정상까지 길고도 급한 경사의 오르막이 이어졌다. 끝까지 걸었다.
내리막길에서는 냅다 달렸다. 오르막보다 더 긴 내리막이 포석정까지 이어졌다. 반환점을 돌아 긴 오르막을 걷다가 등에 105회 뭐라고 쓰여진 옷을 입고 달리시는 할아버지를 만났다. 느린 속도였지만 쉬지 않고 꾸준히 달리신다. 할아버지도 포항 사신다며 격려해 주신다.
다시 내리막에서 속도를 낸다. 힘껏 달려 결승선을 통과했다. 하지만 무언가 허전했다. 왜 일까?
광장에서 이주형님을 만났다. 환한 얼굴이 꼭 부처님 같다. 고향이 이 부근이란다. 오늘따라 표정이 더 온화해 보인다. 장승권님을 만나려고 다시 결승점으로 갔다. 출발한 지 2시간 40분 정도 지난 것 같다. 잠시 후 스님이 막 결승점을 통과했다. 반팔 티에 바지는 회색 승복 차림이다. 결승점 통과 직후 휘청거리는 다리를 보았다.
순간 허전함의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반 이상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힘든 산길 마라톤이었지만 오르막은 거의 걸었기 때문에 내 안에는 아직 연소되지 않은 에너지가 남아 있었던 것이다.다리가 휘청거릴 정도로 달리고, 힘든 오르막에서도 이를 악물고 한발한발 꾸준히 내딛는 그런 인고의 정신이 아직 내게는 없었다. 달리러 온 것이지 걸으러 온 것이 아닌데 말이다.
2시간 55분이 지나 마지막 주자가 결승점을 통과했다. 결국 오늘도 장승권님을 못 만나는구나. 총회 때는 만날 수 있겠지. 이렇게 남산산길마라톤은 끝났다.
기록은 01:56:5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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