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야심경의 이해
대승불교와 반야심경
부처님 입멸 후 교단은 분열을 거듭하여 여러 파로 갈린다. 이 때를 부파불교(部派佛敎) 시대라고 한다. 이 시대의 특징은 각 부파마다 교법(敎法)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가 활발해져서 수많은 논서가 지어졌다는 점이다. 많은 논서의 출현으로 부처님의 교법을 체계화한 것은 부파불교의 큰 업적이었으나 그것은 또 지나친 분석과 복잡한 이론으로 불교를 난해하고 무미건조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처럼 부파불교가 출가자를 중심으로 이론적인 연구에 치우쳐 부처님의 근본 가르침에서 멀어져 가고 있을 때, 부처님의 참뜻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개혁운동이 일어났다. 기원 전후로 혁신적인 불교인들 사이에 퍼져 나간 이 새로운 운동을 대승불교(大乘佛敎)라고 한다.대승이란 산스크리트 마하야나의 번역으로, 큰 수레라는 뜻이다. 그들의 주장은 큰 수레이며 광대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대승불교 운동은 공사상(空思想), 반야사상(般若思想), 연기설(緣起說), 중도사상(中道思想), 유심사상(唯心思想), 열반사상(涅槃思想), 보살사상(菩薩思想) 등을 그 배경으로 한다. 그 중에서 공사상은 '반야심경'을 비롯한 대승경전에 공통적으로 깔려 있는 핵심적인 사상이다. 공사상은 존재의 원리를 파헤친 것으로 반야사상, 연기설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반야사상은 우주 삼라만상의 실상을 설한 공사상을 실천적인 면에서 완성할 때 얻어지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반야는 공의 이치를 완전히 체득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연기설은 우주와 인생의 영원히 변하지 않는 존재 법칙이다. 생사윤회의 순환고리인 십이연기는 부처님이 직접 깨달은 내용인 것이다. 연기법은 공사상을 바탕으로 하여 우주와 인생에 대해 절저히 파헤침으로써 존재의 실상을 올바로 이해하게 하는 중요한 이론이다. 대승불교 사상 중에서도 공사상, 반야사상, 연기설은 '반야심경'의 근간이 되는 중심사상이다.
오시교(五時敎)
부처님은 깨달음을 이루시고 사십구 년 동안 각처를 다니시며 가르침을 전하셨다. 그 가르침은 여러 계층의 사람들에게 설해졌기 때문에 그 양과 내용은 참으로 방대하다. 그렇게 하여 남겨진 말씀들은 역사적으로 내려오면서 전문적인 학자들에 의해 이론적으로 재정립되어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부처님께서 사십구 년 간 설하신 내용을 집대성한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팔만대장경의 내용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다섯 단계로 분류할 수 있다. 그것을 오시교라고 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화엄시(華嚴時) |
성도 후 최초 삼칠일 |
화엄경 |
깨달음 전체 |
아함시(阿含時) -녹원시(鹿園時) |
화엄시 이후 십이 년 |
아함경 |
객관적인 물질계의 가변성과 욕망의 절제 등 |
방등시(方等時) |
아함시 이후 팔 년 |
유마경,금광명경, 능가경,승만경,무량수경 |
연기의 법칙과 주관의 부정 |
반야시(般若時) |
방등시 이후 이십일 년 |
여러 반야경 |
부정의 부정을 통한 공의 세계 |
법화열반시 (法華涅槃時) |
반야시 이후 팔 년 |
법화경 |
부정의 부정을 통한 대긍정의 세계 |
아함시는 소승 경전에, 나머지는 대승경전에 속하며, 아함, 방등, 반야, 법화열반의 네 가지는 하나의 화엄으로 종합할 수 있다. 아함시를 녹원시(鹿園時)라고도 한다.
삼종(三宗)
오시교와 연관지어 불교경전을 내용적인 면에서 다시 삼종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부처님의 설법은 처음에는 자신이 깨달으신 전체 내용을 화엄사상으로 드러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차원이 너무 높아 아무도 알아 듣지 못했다고 한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을 통한 법락(法樂)을 여러 사람들에게 알려 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방법을 궁리를 하셨다.그것은 아주 낮은 단계로 끌어내려 차츰 높은 단계에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중생의 근기(根機)에 맞추어 세 가지 단계로 설해졌다. 오늘날 우리에게 전해진 모든 경전들은 이 세 가지 삼종의 범주 안에 들게 되는 것이다.
첫째는, 모든 현상계를 '있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상(相)과 유(有)의 차원이다. 이것은 가장 낮은 단계에 해당된다. 존재하는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다. 예를 들어 괴로움도 있고, 괴로움의 원인도 있고, 괴로움의 소멸도 있고,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도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곧 사성제(四聖諦)와 팔정도(八正道)를 말하는 것이다. 현실적으로 분명히 있는 괴로움과 그 괴로움에 대한 원인과 해결 방법이 있다는 입장에서 사성제와 팔정도가 설해진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십 년 간을 주로 모든 현상계가 있다고 하는 유와 상의 상식에서 법을 설하셨다. <아함경>은 주로 유의 입장에서 설해진 경전에 속한다. 유의 차원은 일반적인 상식이 통하는 세계로, 많은 부분이 방편설(方便說)로 이루어져 있다. 모든 것이 있다고 하는 유의 사상은 우리의 일반적인 상식과도 잘 통하는 세계이다. 또 있는 것을 있다고 하는 데서 출발하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납득할 수 있는 차원이다. 그러나 유의 상식으로 풀어지지 않는 많은 문제가 있다. 그래서 다음 단계가 설해진 것이다.
둘째는, 모든 현상계를 '없다'고 하는 입장에서 보는 공(空)과 무(無)의 차원이다. 이것은 모든 현상계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것이 아니라 텅 비어서 아무것도 없는 것으로 보는 입장이다. 여기서는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있는 것이 아니라 텅 빈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공의 사상을 낳게 했다. 모든 현상계는 텅 빈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실상을 공한 것으로 보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부처님께서는 이십일 년 간을 주로 공의 입장에서 법을 설하셨다. 반야부의 많은 경전들은 모두 여기에 속하며, '반야심경'은 바로 공이나 무의 입장에서 설해진 대표적인 경전이다.
셋째는, 모든 현상계를 존재하는 그 자체로 '진리'라고 보는 성(性)의 차원이다. 이것은 진성(眞性)·법성(法性)·진여(眞如)의 차원이다. 성의 차원은 현상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그대로 진리라는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으로 가장 차원이 높은 견해다. 부처님께서는 팔 년 간을 성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설하셨다. 성의 차원에서 설해진 경전으로는 <화엄경>,<법화경>,<능엄경>,<열반경> 등이 있다. 성의 차원은 또 '비유비무 역유역무(非有非無 亦有亦無)'라고 표현된다. 그것은 곧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며, 또한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이치를 말하는 것이다. 성의 입장은 우리가 흔히 잘 쓰는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말과도 잘 통한다. 다시 말해서 모든 것은 오직 마음이 만들어낸 것이므로 그대로 진리와 연결되는 것이다. 경전의 모든 말씀, 즉 팔만대장경은 相·空·性의 삼종으로 분류할 수 있다. 또 어떤 법문이든지 이 세 가지의 열쇠로 풀리지 않는 것은 없다
예를 들어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라는 선사의 법문을 빌려 삼종을 설명해 볼 수 있다. 상의 입장에서는 그대로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가 된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산은 산이 아니요, 물은 물이 아니다'가 된다. 마지막으로 성의 입장에서는 '산은 다만 산이요, 물은 다만 물이다'라고 보는 것이다.또 다른 예로 사홍서원에 나오는 '중생무변서원도(衆生無邊誓願度 )를 相·空·性의 각기 다른 안목에서 살펴 볼 수도 있다. 상의 입장에서는 제도해야 할 중생이 있는 것으로 보는 견해다. 그러나 공의 입장에서는 우주 만물이 본래 공한 것이기 때문에 중생 또한 공한 것으로 보아 공한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다. 성의 입장에서는 중생이 곧 부처이므로 부처인 중생을 제도한다는 견해다.
삼종을 우리의 삶에 비추어 볼 때, 있는 그대로가 전부인 양 착각하여 사는 것은 상이나 유의 입장이다. 그러나 인생이 공한 것인 줄 알면서 살아가는 것은 공이나 무의 입장이다. 공하다고 해서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살 것이 있는 것이다. 상의 입장에서는 사는 일 그 자체에만 매달려 살지만 공한 입장에서는 인생의 공한 일면을 들여다보면서 살아가는 지혜의 안목이 있는 것이다. 가장 차원이 높은 성의 입장에서는 우리의 인생을 진리 그 자체로보는 것이다. 그래서 진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어떤 경우라고 크게 뭉뚱그려 보면 위의 相·空·性 세 가지 견해에 비추어 볼 수 있다. 현상계를 볼 때 한 가지 견해로만 고집할 것이 아니라 보다 높은 차원으로 바라볼 줄 아는 지혜의 안목이 필요한 것이다.
삼관(三觀)
相·空·性 삼종과 함께 우리의 안목은 보는 관점에 따라 다시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이것을 삼관이라고 말한다.
첫째는 공관(空觀)이다. 모든 현상을 공하다고 보는 관점이다. 공관은 결국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관찰하는 입장이다. 다시 말해서 삼라만상의 실체는 본래 공한 것이며, 인연에 따라 잠깐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이다. 공관은 삼종에서 무와 공의 입장에서 현상계를 이해하는 차원과 같은 맥락에서 생각할 수 있다.
둘째는 가관(假觀)이다. 모든 현상계는 본래 공한 것인데 거짓 모습에 속아서 보는 것을 말한다. 가관은 앞의 삼종 중 유와 상의 입장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가관은 모든 현상을 가상의 입장에 집착해서 보는 안목을 말한다.
셋째는 중도관(中道觀)이다. 중도관은 현상계를 그대로 진리의 차원에서 보는 안목을 말한다. 중도관은 가장 이상적이고 차원 높은 입장으로, 삼종 중 성의 견해와 연결된다고 할 수 있다.
이상으로 오시교와 삼종, 삼관을 통하여 <반야심경>의 경전 상 위치와 내용적인 면을 대강 살펴보았다. 결론적으로 말해 '반야심경'은 반야부 경전의 중심이며, 동시에 불경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팔만대장경 전체의 정수(精髓)는 반야부의 경전이며, 그 반야부의 정수가 바로 '반야심경'인 것이다.
길주의 청원유신선사가 강단에 올랐다.노승이 30년 전 아직 참선을 하기 전에는
산을 보니 산이고 물을 보니 물이었다.
그 뒤에 선지식을 만나 가르침을 받고 조금 깨친 것이 있게 되자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이제 망상이 모두 그친 경지가 되고 보니
이전 그대로 산은 단지 산일 뿐이고, 물은 단지 물일 뿐이로다.
대중들이여, 이 세 가지 견해가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만일 이것을 터득한 사람이 있다면, 그는 이 노승과 같은 경지에 있음을 인정하리라.
吉州靑原惟信禪師上堂 (길주청원유신선사상당)
老僧三十年前未參禪時 (노승삼십년전미참선시)
見山是山 見水是水 (견산시산 견수시수)
及至後來親見知識 有箇入處 (급지후래친견지식 유개입처)
見山不是山 見水不是水 (견산불시산 견수불시수)
而今得箇休歇處 (이금득개휴헐처)
依然見山祗是山 見水祗是水 (의연견산지시산 견수지시수)
大衆這三般見解是同是別 (대중저삼반견해시동시별)
有人緇素得出 許汝親見老僧箇 (유인치소득출 허여친견노승개)
-속전등록(續傳燈綠) 22권 청원유신선사의 상당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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