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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야심경05-공의 인식

불교/반야심경

by 빛살 2007. 9. 5.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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空의    인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중생들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정견의 깊은 지혜로 육바라밀을 행하실 때에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환상이요, 실체가 없으며, 오온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게 살피시고 고해를 넘으셨다.

 

 

 불교에는 三世 三千의 제불(諸佛)이라 할 만큼 많은 불타의 명호(名號)가 있는데 역사적인 실재의 불타는 석존(釋尊)뿐이다. 그 외의 많은 불타는 석존의 깨달은 마음의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도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부처님의 자비가 인격화된 분이다.

 

 보살(菩薩)은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 bodhi-sattva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보리살타(菩提薩타)의 준말이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삿트바(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즉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라는 의미다. 간단히 말하면 구도자이다. 보살의 수행을 흔히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고 한다. 이 말은 먼저 깨달은 다음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을 구하는 그 자체가 중생 교화이며, 중생 교화가 곧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에서 관세음은 '아바로기뎌습벌라'의 번역으로 '중생의 음성을 두루 듣는다'는 뜻이다. 곧 중생의 음성을 듣고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므로 관세음, 모든 현상을 두루 관찰하듯이 중생의 구제도 자재하므로 관자재(觀自在), 모든 소리를 두루 들으므로 원통대사(圓通大士)라고도 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만약 한량없는 중생이 갖가지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복덕(福德)을 얻게 해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음신앙이 전개됨에 따라 다양한 관음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7관음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관음(聖觀音)
  여러 관음으로 변화되기 이전의 본래 관음을 말한다. 일반적으로 관음이라고 하면 이 성관음을 가리킨다. 하나의 얼굴에 두 개의 팔을 가진 평범한 모습이다.

 

2)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인도에서 성립한 최초의 변화 관음으로, 11면은 머리 부분에 있는 11가지 얼굴을 가리킨다. 자비롭게 웃는 모습, 성난 모습, 이를 드러내고 웃는 모 습, 크게 웃는 모습 등은 다양한 중생을 교화하는 방편을 상징한다.

 

3)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천 개의 손과 천 개의 눈을 가진 관음으로, 대비심(大悲心)이 무한하다고 하여 대비관음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조각이나 회화에서는 천 개의 손과 눈을 표현하기 어려우므로, 흔히 좌우 두 손에 한쪽에 20개씩 모두 40개의 손을 표현하는데, 이것은 불교의 세계관에서 지옥에서 천상까지를 25단계로 나누므로 하나의 손이 25단계의 중생을 구제한다고 생각하면(40×25) 천 개의 손이 되는 것이다. 40개의 손에는 각각 눈이 표현되어 있고 손마다 각기 다른 물건을 들고 있다.

 

4) 마두관음(馬頭觀音)
 
말의 머리를 머리 위에 얹고 있는 관음으로, 눈을 부릅뜬 분노의 모습을 하고 있다. 관음이라고 하면 대부분 인자하고 온후한 모습이지만, 불법을 듣고도 수행하지 않는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러한 무서운 얼굴을 한 관음이 나타나게 되었다. 보통 세 개의 얼굴에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모습이다.

 

 

 

 

 

 

5) 불공견삭관음(不空絹索觀音)
  견(絹)은 새를 잡는 망, 삭(索)은 고기를 잡는 그물을 뜻한다. 고뇌에 허덕이는 중생을 망과 그물로 구제하는 데 헛됨이 없다고 하여 불공(不空)이라고 한다. 모습은 일정하지 않다.

 

6)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손에 여의주와 법륜(法輪)을 들고 중생의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관음이다. 여의주는 보배를, 법륜은 바른 가르침을 상징한다. 보통 머리를 비스듬히 하여 사유하는 모습이다. 여섯 개의 팔을 가지고 있는데, 오른쪽 두 번째 손에 여의주를, 왼쪽 세 번째 손에 법륜을 들고 있다.

 

7) 준제관음(准提觀音)
  칠구지불모(七俱佛母)라고도 한다. 구지는 산스크리트 '코티'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으로, 千萬을 뜻한다. 그리고 준제는 '찬디'를 소리나는 대로 적은 것이다. 원래 찬디는 힌두교 시바신의 비(妃) 두르가의 별명이다. 이 관음은 오랜 과거에 한량없는 부처를 낳은 어머니라고 한다.

 

 

 

 

 

 

 화엄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조리(早離)와 즉리(卽離)는 어린 형제이다. 부모와 일찍이 사별하여 매일 울며 지냈다. 어떤 마음씨 나쁜 남자가 부모를 만나게 해 줄테니 이 작은 배에 타라고 유혹하였다. 그 형제는 속는 줄도 모르고 그 말에 따랐다. 작은 배는 나루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닿았다. 남자는 어린 형제를 내려 놓고, 배를 저어 되돌아 갔다.  두 형제는 온 섬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버이를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허기와 피로로 죽음에 다달아 아우인 즉리는 '우리 형제들의 박명(薄命)을 한탄한다.'고 말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형 조리는 아우를 달래면서 말하기를 '나도 처음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원망도 했으나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몸소 배운 것은, 어버이와 일찍이 이별하여 사람에게 속은 슬픔과, 배고프고 피로한 괴로움뿐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이 고뇌의 체험을 인연으로 하여 같은 비운에 빠져 울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하자. 남을 위로하는 것은, 곧 자기가 위로를 받는 도리가 된다고 우리는 배우지 않았는가.'라고. 아우는 형의 말에 감화되어 유쾌한 얼굴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숨을 거두었는데, 두 형제의 얼굴에는 고요하고 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형은 관세음보살, 아우는 대세지(大勢至)보살이었다. 이 섬이 보타락산(補陀落山: 백화산. 일광산이라 이름을 붙임)이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이다.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힘이 크다고 하여 대세지라고 한다. 흔히 대승의 보살행을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상구보리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하화중생下化衆生).'고 하는데,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수행을 분담한다. 대세지보살은 지혜로써 上求菩提를,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써 下化衆生을 담당한다.

 

이러한 보살의 수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바라밀이다.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 상태'·'완성'이라는 뜻이다. 중생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세계를 '이 언덕(차안此岸)'이라고 한다면,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찬 깨달음의 세계는 '저 언덕(피안彼岸)'이다. 그리고 보살이 실천하는 육바라밀은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배라고 할 수 있다.

 

보시바라밀

布施波羅蜜

보시는 남에게 베풀어 준다는 말이다. 재물이 필요한 사람에게는 재물을 주고(재시財施),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법을 베풀고(법시法施), 두려워하는 사람에게는 위안과 용기를 주는 것(무외시無畏施)이다. 그렇게 한없이 베풀면서도 어떤 조건을 내세우거나 보답을 바라지 않아야 하며, 베풀었다는 생각마저도 갖지 말아야 한다. 단나바라밀(檀那波羅蜜 dānā-pāramitā)의 번역.

지계바라밀

持戒波羅蜜

지계란 계율을 지킨다는 뜻이다. 살생하지 않으며(불살생不殺生), 음란한 짓을 하지 않으며(불사음不邪淫), 거짓말이나 이간질을 하지 않으며, 남을 괴롭히는 나쁜 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불망어不妄語). 탐욕을 부리지 않으며(불투도不偸盜),  술을 마시지 않는다(불음주不飮酒)를 오계(五戒)라 하며 이런 것을 지킨다는 뜻이다. 시라바라밀(尸羅波羅蜜 śῑla-pāramitā)의 번역.

인욕바라밀

忍辱波羅蜜

욕된 일을 당하여도 잘 참는 것을 말한다. 인내하고 남을 용서하며, 어려운 일을 당하여도 좌절하지 않는 자세이다. 찬제(羼提)바라밀의 번역.

정진바라밀

精進波羅蜜

끊임없는 노력을 말한다. 끝없는 번뇌를 끊고 무수한 중생을 피안으로 인도하기 위해 보살은 게으르지 않고 힘써 수행한다. 비리야바라밀(毘梨耶波羅蜜 vῑrya-pāramitā)의 번역.

선정바라밀

禪定波羅蜜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고 한 곳에 집중하는 것을 뜻한다. 번뇌와 망상에 의한 산란한 마음을 진정시켜 정신을 통일하는 수행 방법이다. 앞의 보시, 지계, 인욕, 정진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그 결과로 얻어지는 것이 선정바라밀이다. 선나바라밀(禪那波羅蜜 dhyāna-pāramitā)의 번역.

지혜바라밀

智慧波羅蜜

지혜는 산스크리트  '프라즈냐'를 번역한 말이며, 파리어 panna를 소리나는 대로 적어 반야(般若)라고 한다. 반야는 분별을 떠나 진리를 직관하는 깨달음의 지혜이다. 보살은 이런 지혜로 보시에서 선정에 이르는 다섯 바라밀을 행하면서 중생을 구제한다. 그러므로 지혜가 주가 되고 나머지는 찬조적 출연이라고 할 수 있다. 반야바라밀(般若波羅蜜 prajñā-pāramitā)의 번역.

 

 

오온(五蘊)에서 蘊(쌓으다, 모으다)이란 Skandha의 번역어로서 '활동을 해 가며 서로 모여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오온은 '판챠 스칸다(panca-skandha)'의 번역으로 오음(五陰)이라고도 하며 '존재, 존재하는 것의 내용, 존재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5종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오종(五種)의 물건이다. 각각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집합하여 만들어진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空的인 존재라는 말이다. 오온은 다음과 같다.

 

정신과 육체 중 육체. 형체가 있는 것. 물질.

matter, form

색온은 스스로 변화하고 다른 것을 장애하는 물체를 말한다. 인간의 육신을 위시해서 눈에 보이는 모든 물질은 색온에 해당한다. 색온의 본래 의미는 '무너진다'는 뜻을 갖고 있다. 물질의 특성은 언젠가는 없어져 버릴 것이며, 인간의 육신 또한 地, 水, 火, 風의 四大로 흩어져 사라지는 것이다.

감각.
sensation

수온은 고(苦)와 락(樂), 불고불락(不苦不樂)을 느끼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다시 말해서 수온은 괴롭다  즐겁다, 좋다 나쁘다, 달다, 쓰다 등의 감각을 느끼는 일차적인 마음의 감수 작용인 것이다.

감성(예술적인 것)
imagination

상온은 외부로부터의 사물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고 그것을 상상해 보는 마음의 요소를 말한다. 예를 들어 좋은 것은 받아들이고 싫은 것은 배척하는 등의 마음작용을 상온이라 한다. 상온은 일종의 지각 작용을 말하며 느낌이나 감각의 인상을 머리 속에서 정리하는 표상 작용을 일컫는 것이다.

행동 

action

행온은 인연으로 생겨나서 시간적으로 변하는 마음의 작용을 말한다. 즉, 앞에서 받아들인 마음의 작용이 계속 이어지는 상태를 행온이라 한다. 즉, 분별한 감정을 생각으로 굴려서 마음의 행위를 계속 이어 나가는 의지와 행동 작용을 말한다. 또한 잠재적이고 무의식적인 충동력을 행온이라 한다.

이성(지적인 것)
analytic knowledge

식온은 의식하고 분별해서 아는 마음의 인식작용을 말한다. 또한 식온은 모든 인식의 주체가 되는 마음의 작용을 이르는 말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인식을 한꺼번에 일컫는 것이 식온이다.

 

  

오온의 다섯 가지 중에서 수, 상, 행, 식의 네 가지 정신작용은 아주 미묘해서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 오온에서 색온은 인간의 육신에 해당되는 부분이고, 나머지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은 인간의 정식적인 면에 해당된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육체보다 휠씬 복잡하기 때문에 세분되어 나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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