空의 인식 觀自在菩薩 行深般若波羅蜜多時 照見五蘊皆空 度一切苦厄
중생들을 보살피는 관세음보살님께서 정견의 깊은 지혜로 육바라밀을 행하실 때에 현상계의 모든 존재는 환상이요, 실체가 없으며, 오온의 집합체에 지나지 않는다고 밝게 살피시고 고해를 넘으셨다. 불교에는 三世 三千의 제불(諸佛)이라 할 만큼 많은 불타의 명호(名號)가 있는데 역사적인 실재의 불타는 석존(釋尊)뿐이다. 그 외의 많은 불타는 석존의 깨달은 마음의 상징적 존재이다. 그러므로 관세음보살도 하나의 상징적 존재로 부처님의 자비가 인격화된 분이다.
보살(菩薩)은 대승불교를 실천하는 이상적인 인간상을 말하는데, 이는 산스크리트 bodhi-sattva를 소리나는 대로 옮긴 보리살타(菩提薩타)의 준말이다. 보디(bodhi)는 깨달음을, 삿트바(sattva)는 살아 있는 존재, 즉 중생을 뜻하므로 보살은 '깨달음을 구하는 중생'이라는 의미다. 간단히 말하면 구도자이다. 보살의 수행을 흔히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提 下化衆生).'고 한다. 이 말은 먼저 깨달은 다음 중생을 교화한다는 뜻이라기보다는 깨달음을 구하는 그 자체가 중생 교화이며, 중생 교화가 곧 깨달음을 구하는 일이라는 의미다.
관세음보살에서 관세음은 '아바로기뎌습벌라'의 번역으로 '중생의 음성을 두루 듣는다'는 뜻이다. 곧 중생의 음성을 듣고 고뇌에서 벗어나게 해주므로 관세음, 모든 현상을 두루 관찰하듯이 중생의 구제도 자재하므로 관자재(觀自在), 모든 소리를 두루 들으므로 원통대사(圓通大士)라고도 한다. 법화경 관세음보살보문품에 의하면, '만약 한량없는 중생이 갖가지 고뇌를 받을 때,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그 음성을 듣고 여러 가지 모습으로 변하여 중생을 어려움에서 벗어나게 해주고 복덕(福德)을 얻게 해준다.'고 하였다. 이러한 관음신앙이 전개됨에 따라 다양한 관음이 생겨났는데, 그 가운데 7관음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1) 성관음(聖觀音)
2) 십일면관음(十一面觀音)
3) 천수천안관음(千手千眼觀音)
4) 마두관음(馬頭觀音)
5) 불공견삭관음(不空絹索觀音) 6) 여의륜관음(如意輪觀音)
7) 준제관음(准提觀音)
화엄경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조리(早離)와 즉리(卽離)는 어린 형제이다. 부모와 일찍이 사별하여 매일 울며 지냈다. 어떤 마음씨 나쁜 남자가 부모를 만나게 해 줄테니 이 작은 배에 타라고 유혹하였다. 그 형제는 속는 줄도 모르고 그 말에 따랐다. 작은 배는 나루에서 멀리 떨어진 이름도 없는 작은 섬에 닿았다. 남자는 어린 형제를 내려 놓고, 배를 저어 되돌아 갔다. 두 형제는 온 섬을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어버이를 찾았으나 있을 리가 없었다. 결국은 허기와 피로로 죽음에 다달아 아우인 즉리는 '우리 형제들의 박명(薄命)을 한탄한다.'고 말했다. 말없이 듣고 있던 형 조리는 아우를 달래면서 말하기를 '나도 처음에는 세상을 저주하고, 사람을 원망도 했으나 이렇게 멀리 떨어진 작은 섬에서는 어쩔 수가 없다. 다만 몸소 배운 것은, 어버이와 일찍이 이별하여 사람에게 속은 슬픔과, 배고프고 피로한 괴로움뿐이다. 그러나, 다음에 이 세상에 태어날 때에는, 이 고뇌의 체험을 인연으로 하여 같은 비운에 빠져 울고 있는 사람들을 구원하도록 하자. 남을 위로하는 것은, 곧 자기가 위로를 받는 도리가 된다고 우리는 배우지 않았는가.'라고. 아우는 형의 말에 감화되어 유쾌한 얼굴로 서로를 부둥켜안고 숨을 거두었는데, 두 형제의 얼굴에는 고요하고 맑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형은 관세음보살, 아우는 대세지(大勢至)보살이었다. 이 섬이 보타락산(補陀落山: 백화산. 일광산이라 이름을 붙임)이다.
대세지보살은 관세음보살과 함께 아미타불을 보좌하는 협시보살(脇侍菩薩)이다. 지혜의 광명으로 중생을 구제하는 힘이 크다고 하여 대세지라고 한다. 흔히 대승의 보살행을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상구보리上求菩提),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한다(하화중생下化衆生).'고 하는데, 대세지보살과 관세음보살은 이러한 수행을 분담한다. 대세지보살은 지혜로써 上求菩提를, 그리고 관세음보살은 자비로써 下化衆生을 담당한다. 이러한 보살의 수행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육바라밀이다. 바라밀은 '저 언덕에 이른 상태'·'완성'이라는 뜻이다. 중생들의 어리석음과 탐욕으로 생기는 괴로움의 세계를 '이 언덕(차안此岸)'이라고 한다면, 지혜와 자비로 가득 찬 깨달음의 세계는 '저 언덕(피안彼岸)'이다. 그리고 보살이 실천하는 육바라밀은 '저 언덕'으로 건너가는 배라고 할 수 있다.
오온(五蘊)에서 蘊(쌓으다, 모으다)이란 Skandha의 번역어로서 '활동을 해 가며 서로 모여 있는 것'이라는 의미이다. 오온은 '판챠 스칸다(panca-skandha)'의 번역으로 오음(五陰)이라고도 하며 '존재, 존재하는 것의 내용, 존재를 존재하게 하고 있는 5종의 집합'이라고 할 수 있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오종(五種)의 물건이다. 각각 독자적인 활동을 하면서 집합하여 만들어진 일시적인 존재에 불과하다. 空的인 존재라는 말이다. 오온은 다음과 같다.
오온의 다섯 가지 중에서 수, 상, 행, 식의 네 가지 정신작용은 아주 미묘해서 정확하게 선을 그을 수 없다. 오온에서 색온은 인간의 육신에 해당되는 부분이고, 나머지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은 인간의 정식적인 면에 해당된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육체보다 휠씬 복잡하기 때문에 세분되어 나누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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