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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원 어부사

한문/중국한시

by 빛살 2011. 3. 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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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자사 굴원영정>

 

            漁父辭

                                屈原

夫屈原이 旣放에 游於江潭하며 行吟澤畔할새 顔色이 樵悴하고 形容이 枯槁하니

 

漁父가 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로 至於斯오.


屈原이 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이 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로 見放이로다.


漁父가 曰

 

聖人은 不凝滯於物하고 而能與世推移하나니, 世人이 皆濁이어든 何不其泥而揚其波하며,


衆人이 皆醉어든 何不飽其糟而其하고, 何故로 深思高擧하여 自令放爲오.

 
屈原이 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이오 新浴者는 必振衣라 하니 安能以身之로 受物之汶汶者乎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


漁父가 莞爾而笑하고 鼓而去하며 乃歌曰,


滄浪之水가 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 滄浪之水가 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 하고,

 
遂去하여 不復與言이러라. 

 

굴원이 이미 쫓겨나 江潭에서 노닐고 못가를 거닐면서 詩를 읊조릴 적에 안색이 초췌하고 몸이 수척해 있었다.
漁父가 그를 보고는 이렇게 물었다.
"그대는 三閭大夫가 아닌가? 어인 까닭으로 여기까지 이르렀소?"
굴원이 대답했다.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한데 나만 홀로 깨끗하고,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는데 나만 홀로 깨어 있으니
그래서 추방을 당했소이다."
어부가 이에 말했다.
"聖人은 사물에 얽매이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을 따라 옮기어 나가니, 세상 사람들이 모두 혼탁하면 왜 그 진흙을 휘젓고 흙탕물을 일으키지 않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해있으면 왜 그 술 지게미를 먹고 薄酒를 마시지 않고는
무슨 까닭으로 깊은 생각과 고상한 행동으로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소?"
굴원이 이에 대답하였다.
"내 듣기로, 막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冠을 퉁겨서 쓰고, 막 목욕을 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어 입는다 하였소이다. 어찌 몸의 반질반질한 곳에 外物의 얼룩덜룩한 것을 받겠소? 차라리 湘江에 뛰어들어 강 물고기의 배속에서 葬事를 지낼지언정 어찌 희디흰 純白으로 世俗의 먼지를 뒤집어 쓴단 말이요?"
어부는 빙그레 웃고는 배의 노를 두드려 떠나가며 이에 노래를 불렀다.
"滄浪의 물 맑으면 내 갓 끈을 씻으리요, 滄浪의 물 흐리면 내 발을 씻으리요."
그는 마침내 떠나가고 굴원은 다시 그와 더불어 말하지 못하였다.

 

굴원(屈原/BC 343 ?~BC 277 ?)

 

중국 전국시대의 정치가·비극 시인으로 초(楚)의 왕족과 동성(同姓). 이름 평(平). 원 자. 생몰연대는 기본자료인 《사기(史記)》 <굴원전>에 명기(明記)되지 않았기 때문에 여러 설이 있으나, 지금은 희곡 《굴원》의 작자인 궈모뤄[郭沫若]의 설에 따른다. 학식이 뛰어나 초나라 회왕(懷王)의 좌도(左徒:左相)의 중책을 맡아, 내정·외교에서 활약하였으나 법령입안(法令立案) 때 궁정의 정적(政敵)들과 충돌하여, 중상모략으로 국왕 곁에서 멀어졌다. 《이소(離騷)》는 그 분함을 노래한 것이라고 《사기》에 적혀 있다.


그는 제(齊)나라와 동맹하여 강국인 진(秦)나라에 대항해야 한다는 합종파(合縱派)였으나, 연형파(連衡派)인 진나라의 장의(張儀)와 내통한 정적과 왕의 애첩(愛妾) 때문에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왕은 제나라와 단교하고 진나라에 기만당하였으며, 출병(出兵)하여서도 고전할 따름이었다. 진나라와의 화평조건에 따라 자진하여 초나라의 인질이 된 장의마저 석방하였다. 제나라에 사신으로 가 있던 굴원은 귀국하여 장의를 죽여야 한다고 진언했으나, 이미 때는 늦었고 왕의 입진(入秦)도 반대하였으나 역시 헛일이었다. 왕이 진나라에서 객사(客死)하자, 장남 경양왕(頃襄王)이 즉위하고 막내인 자란(子蘭)이 영윤(令尹:재상)이 되었다. 자란은 아버지를 객사하게 한 장본인이었으므로, 굴원은 그를 비난하다가 또다시 모함을 받아 양쯔강 이남의 소택지로 추방되었다.

《어부사(漁父辭)》는 그때의 작품이다. 《사기》에는 <회사부(懷沙賦)>를 싣고 있는데, 이는 절명(絶命)의 노래이다. 한편 자기가 옳고 세속이 그르다고 말하고, 난사(亂辭:최종 악장의 노래)에서는, 죽어서 이 세상의 유(類:법·모범)가 되고 자살로써 간(諫)하겠다는 결의를 밝히고 있는데, 실제로 창사[長沙]에 있는 멱라수(汨羅水)에 투신하여 죽었다. 그의 작품은 한부(漢賦)에 영향을 주었고, 문학사에서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높이 평가된다.(출처 : 동아대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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