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큰 아이
박남희
나는 세상에서 가장 큰 아이를 알고 있다
덩치가 큰 것이 아니라
사랑의 마음이 가장 큰 아이,
사람들의 가슴 속에 따뜻한 생명을 불어넣으며
우주처럼 점점 크게 자라나는 아이를 알고 있다
일제시대 가난한 노무자의 아들로 태어나
가난 때문에 나무장수 고구마장수 등을 하며 떠돌다가
결핵에 걸려 고생을 하고 마을 교회 종지기 생활을 하면서도
열심히 동화를 써서 가난한 어린이를 돕고 싶어 했던
어른이면서도 아이보다도 더 맑은 영혼을 가진 아이,
자신이 직접 지은 작은 오두막집에서
강아지 한 마리와 가난하게 살면서도
평생 인세로 받은 돈 10억을
북한 어린이를 위해 써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먼 나라로 소풍간 아이,
강아지똥이나 몽실언니와 함께
지금도 수많은 아이들 가슴 속에서
밝게 웃고 있는 아이,
세상의 모든 어둠을
골 깊은 주름골짜기에 담아
세상에는 아름다운 햇살만 남겨놓고 떠난
일흔 살 선한 눈빛의 아이를 알고 있다
<유언장>
내가 죽은 뒤에 다음 세 사람에게 부탁하노라.
1. 최완택 목사 민들레 교회
이 사람은 술을 마시고 돼지 죽통에 오줌을 눈 적은 있지만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2. 정호경 신부 봉화군 명호면 비나리
이 사람은 잔소리가 심하지만 신부이고 정직하기 때문에 믿을 만하다.
3. 박연철 변호사
이 사람은 민주변호사로 알려졌지만 어려운 사람과 함께 살려고 애쓰는 보통사람이다.
우리 집에도 두세 번쯤 다녀갔다. 나는 대접 한 번 못했다.
위 세 사람은 내가 쓴 모든 저작물을 함께 잘 관리해 주기를 바란다.
내가 쓴 모든 책은 주로 어린이들이 사서 읽는 것이니 여기서 나오는 인세를 어린이에게 되돌려주는 것이 마땅할 것이다. 만약에 관리하기 귀찮으면 한겨레신문사에서 하고 있는 남북어린이 어깨동무에 맡기면 된다. 맡겨놓고 뒤에서 보살피면 될 것이다.
유언장이란 것은 아주 훌륭한 사람만 쓰는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도 이렇게 유언을 한다는 게 쑥스럽다. 앞으로 언제 죽을지는 모르지만 좀 낭만적으로 죽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나도 전에 우리 집 개가 죽었을 때처럼 헐떡헐떡 거리다가 숨이 꼴깍 넘어가겠지. 눈은 감은 듯 뜬 듯 하고 입은 멍청하게 반쯤 벌리고 바보같이 죽을 것이다. 요즘 와서 화를 잘 내는 걸 보니 천사처럼 죽는 것은 글렀다고 본다. 그러니 숨이 지는 대로 화장을 해서 여기저기 뿌려주기 바란다.
유언장치고는 형식도 제대로 못 갖추고 횡설수설했지만 이건 나 권정생이 쓴 것이 분명하다. 죽으면 아픈 것도 슬픈 것도 외로운 것도 끝이다. 웃는 것도 화내는 것도. 그러니 용감하게 죽겠다. 만약에 죽은 뒤 다시 환생을 할 수 있다면 건강한 남자로 태어나고 싶다. 태어나서 25살 때 22살이나 23살쯤 되는 아가씨와 연애를 하고 싶다. 벌벌 떨지 않고 잘할 것이다. 하지만 다시 환생했을 때도 세상엔 얼간이 같은 폭군 지도자가 있을 테고 여전히 전쟁을 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환생은 생각해 봐서 그만둘 수도 있다.
2005년 5월 1일 쓴 사람 권정생
<연보>
1937년 일본 도쿄 혼마치에서 출생.
1946년 귀국. 생활고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짐. 모친, 동생과 함께 청송에 있는 외가에서 지냄.
1947년 안동에 가족이 다시 모임.
1950년 6·25 전쟁으로 가족이 몇 해 동안 흩어져 지냄.
1951년 이 해부터 부산에서 재봉기 상회, 서점 등의 점원생활을 함.
1955년 결핵을 앓기 시작함. 이후 평생 병고를 겪게 됨.
1957년 결핵으로 피폐해진 몸으로 다시 고향으로 돌아옴.
1965년 집을 나와 대구, 김천, 상주, 문경, 점촌, 예천 등을 걸인으로 떠돌다 석 달 뒤에 귀가함.
1967년 안동군 일직면 조탑동에 정착해 이 마을교회의 문간방에서 지내며 교회 종지기 일을 함.
1969년 동화 <강아지똥>으로 월간《기독교 교육》의 제1회 아동문학상 수상.
1975년 동화집《강아지 똥》(세종문화사)을 펴냄. 제1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2007년 5월 17일 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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