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낼시티에서 저녁을 먹고 나카가와 강변을 걸었다.
한없이 정숙해 보이던 도시가 밤이 되니 서서히 꿈틀대기 시작한다.
몇 안 되는 야타이(포장마차)에도 사람들이 들어 앉아 있고 음식냄새가 풍겨나기 시작한다.
숙소 부근에 있는 천신중앙공원(덴진주오코엔)에는 색소폰을 연주하는 한 사람, 성경을 들고 전도하는 두 사람, 모두 세 사람이 군중과 소통을 시도하고 있었다.
숙소로 돌아오다 보니 상점마다 가판대에 잡지 같은 책이 꽂혀있었다.
가지고 가려다가 돈을 받고 파는 책인 줄 알고 그냥 지나쳤다.
나중에 알고 보니 유흥업소를 소개하는 무가지였다.
9시 조금 지나 14층에 있는 목욕탕으로 갔다.
옷가지와 휴대품은 그냥 바구니에 담아두면 된다.
한국에서는 로커에 넣어 자물쇠를 채워 두는데 이런 면에서는 한국보다 개방적이다.
일본에서 욕실에 들어갈 때는 청소하는 아줌마 때문에 반드시 중요 부분을 가리고 수건을 갖고 들어가야 한다고 한다.
14층에서의 목욕, 이렇게 높은 층에서 목욕할 날이 또 올까?
목욕을 마치고 동료들의 술판에 끼여들었다가 12시에 잠자리에 들었다.
몸은 피곤했지만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자다가 깰 때마다 창밖으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시끄러운 소리 때문에 잠에서 깬 건지, 잠에서 깨어나니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는 건지 비몽사몽 혼몽 중에 밤을 보냈다.
천진중앙공원에서 커낼시티 방향으로 찍은 사진
6시 20분이 조금 안 되어서 밖으로 나왔다.
대한민국은 아직도 취침중일텐데 이 거리는 초저녁처럼 흥청거린다.
쾌활하게 웃고 떠들면서 어딘가로 총총히 사라지는 젊은이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택시들의 행렬
어두운 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까마귀 울음소리
낯설고 괴기스럽기까지 한 분위기다.
7시쯤 되니 이런 소란도 어둠과 함께 사라졌다.
술과 그 동안의 여정으로 분명 지쳐 있을텐데도 약속시간이 되니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한다.
멋진 놈들이다.
강을 따라 하카타항까지 달려서 갔다오기.
후쿠오카를 찾았던 한국인 중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있을까?
길을 잃고 헤맨 울릉도 일주 달리기, 베이징과 홍콩, 선전에서의 새벽 달리기....
결코 잊을 수 없는 나만의 달리기를 생각하면서 절룩거리는 다리를 이끌고 중앙공원으로 갔다.
까마귀, 갈매기, 이름 모를 새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객실에서 짐을 챙겼다.
까마귀들도 아침을 챙기느라 바쁘게 날아다닌다.
일본 사람들이 까마귀를 대하는 마음은 한국 사람들이 비둘기를 대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한다.
흔하게 볼 수 있으면서도 친밀감이 가는 새로 받아들인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중국이나 일본과 같이 옛날에는 까마귀를 태양을 상징하는 새로 여겼고,
반포지조(反哺之鳥)라 하여 효를 상징하는 새로도 여겼다.
고구려는 삼족오라고 하여 세발까마귀를 나라새로 삼았었다는대 언제부터 우리는 까마귀를 기분 나쁜 새로 생각하기 시작했을까?
고구려의 삼족오
시간의 육중한 자물쇠를 열고 들어가 / 우리의 옛사랑 三足烏를 만나고 싶다
말갈기 휘날리며 광야를 달리던 / 고구려의 해 속에 살던 세 발 달린 새
아침 해와 함께 떠오르고 / 저녁 해와 함께 지다가
죽으면 무덤까지 따라갔다는 / 고구려 사람들의 꿈, 아름다운 까마귀여
너로 하여 무덤들은 대낮처럼 밝아 / 고구려엔 슬프고 어두운 죽음 하나도 없었지//
오늘 다시 사뿐히 이 땅으로 날아오너라 / 산다는 것은 원래 웅혼한 것이라고
이렇게 작고 치졸한 것이 아니라고 / 증거처럼 푸드득 깃을 쳐보아라
모두가 허리 굽은 빈혈의 시대 / 너무 빨라 미친 시간의 바퀴를 세우고
네 검고 신성한 깃털을 뽑아 / 어깨마다 훨훨 매달아보리라
- 문정희, 그리운 까마귀
하지만 일본에서는 아직도 사랑을 받고 있었다.
일본축구협회 엠블럼이 까마귀(삼족오)라고 한다.
일본축구협회 엠블럼
12시 20분에 하카타항을 떠났다.
후쿠오카는 하늘과 땅 바다가 하나로 잔뜩 흐려있었다.
외국이라는 생각이 크게 들지 않는 땅.
그러면서도 이질감이 크게 느껴 지는 곳.
그냥 그대로 거기에 놔둔 채 떠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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