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동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전생에 수행하시던 시절의 이름이다. 설산에서 오로지 해탈의 도를 얻기 위해 가족도 부귀영화도 버리고 수행하고 있었다.
이를 본 제석천이 설산동자를 시험하기 위해 무서운 나찰의 모습으로 변신하여, 하늘나라에서 설산으로 내려왔다. 설산동자에게 가까이 가서
“諸行無常 是生滅法(제행무상 시생멸법- 이 세상의 모든 존재는 덧없이 변화하는 것으로 이것이 바로 생하고 멸하는 우주의 법칙이다.)”이라는 게송(偈頌)의 반만 읊어 주었다.
설산동자는 게송을 듣고 깨달음에 몹시 기뻤다. ‘확실히 이 세상 만물은 무상하며, 생하여 멸하지 않는 것이 없다. 이것이야말로 내가 구하고자 했던 것이다. 이것은 틀림없는 하늘의 소리다.’ 라고 생각한 동자는 급히 일어나 소리쳤다.
“저의 주위에 누가 계신지요?”
그러나 주위에는 무시무시한 나찰 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설산동자는 나찰에게 물었다.
“이 게송의 의미는 삼세의 모든 부처님께서 한결같이 가르치는 바른 길입니다. 그런데 나찰이여, 당신은 어디서 이처럼 거룩한 게송을 들었습니까?”
나찰이 힘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그런 것에 전혀 관심이 없다. 며칠 동안 먹지를 못해 다만 배가 고플 뿐이다. 이 게송은 허기와 갈증에 지쳐 그저 헛소리를 해본 것에 불과하다. 그러니 내게 먹을 것을 달라.”
해탈의 도에 목마른 동자는 나찰과 대화를 이어갔다.
“나찰이여, 만약 그 게송의 전부를 알려 준다면 당신의 제자가 되겠습니다.”
“나머지 게송을 읊을 기력마저 없으니 더 이상 말을 시키지 마라.”
“그렇다면 무엇을 원하십니까?”
“나는 인간의 살과 피를 원한다.”
“잘 알았습니다. 제게 나머지 게송을 마저 들려주시면 이 몸을 당신의 먹이로 바치겠습니다.”
“아니, 그대는 오직 여덟 글자 때문에 자신의 몸을 바치겠다는 말인가?”
“흙으로 만든 그릇 대신에 칠보를 얻을 수 있다면 기꺼이 그릇을 버릴 수 있듯이 나는 이 육신을 버려 부처님의 도를 얻고자 합니다. 당신은 왜 나를 믿으려 하지 않습니까? 모든 부처님께서 이를 증명해 주실 것입니다.”
“정녕 그렇다면 내가 그 게송을 마저 들려주지.”
나찰은 드디어 엄숙한 표정이 되어 나머지 게송을 읊었다.
“生滅滅已 寂滅爲樂(생멸멸이 적멸위락- 나고 죽는 것마저 멸한다면 고요한 열반의 즐거움을 얻게 되리라.)”
그리고 나서 나찰은 말했다.
“자, 그대의 원을 들어주었으니 이젠 당신의 육신을 내게 바쳐라.”
게송의 나머지 반을 듣고 난 설산동자는 한없이 기뻐하며 이 시를 세상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 바위나 돌, 나무, 등에 새겨두었다.
제행무상(諸行無常) 시생멸법(是生滅法)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그리고는 나찰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나무 위에서 몸을 던졌다.
그러나 그의 몸이 땅에 채 닿기도 전에 누군가가 그의 몸을 받쳐주었다. 그가 놀라 쳐다보니 나찰로 변신하였던 제석천이 빙그레 웃고 있었다. 설산동자의 몸을 사뿐히 땅에 내려놓은 제석천은 천신들과 함께 수행자의 발 아래에 엎드려 공손히 예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