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의 이해
<중국시의 발전과 종류>
중국고전 시가의 원류는 『시경(詩經)』으로 약 이천여 년 전의 민간가요와 사대부의 노래를 수집한 것으로 대체로 한 구절이 네 글자로 된 사언시로 되어있다. 이후 한나라와 위진남북조시대를 거치면서 한 구절이 다섯 글자인 오언시가 나오게 되었다. 중국의 시가의 형식적인 특징 중 가장 먼저 형성된 것은 한 구의 글자수가 일정하다는 것이며, 동시에 각 구절의 끝 글자에 압운을 하는 것이다. 압운은 발음이 비슷한 글자를 사용하여 발음상 통일감과 리듬을 주는 것으로 오언시에는 대체로 두 구절마다 압운을 하였다. 당나라 시기로 들어오면서 압운 뿐만 아니라 글자의 발음에 높낮이가 있는 중국어의 특성을 이용하여 각 글자의 위치마다 정해진 높이의 글자를 사용하게 하는 평측을 규정하게 되었다. 이와 함께 한 시의 구절을 네 구절 또는 여덟 구절로 제한하여 비교적 짧은 시를 정형화하였는데, 이를 근체시(近體詩)라고 하며 비교적 자유로운 형식을 가진 그 이전의 시를 고체시(古體詩)라고 하였다. 그리고 네 구절로 된 근체시를 절구(絶句)라고 하며 여덟 구절로 된 근체시를 율시(律詩)라고 하여 근체시에는 오언절구, 오언율시, 칠언절구, 칠언율시가 있으며, 율시를 중간 부분을 계속 반복하여 10구 이상으로 만든 배율(排律)이 있다.
<근체시의 요건>
근체시는 고체시와 달리 형식상의 제약이 많은데, 그 중 가장 대표적인 것으로 평측, 압운, 대장 이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1. 평측(平仄)
한자의 발음은 예로부터 높낮이가 있어서 그 자체로 낭독할 때 운율을 갖추게 되는데 그 중 가장 아름답고 듣기 좋다고 여긴 방식으로 규범화된 것이 근체시의 평측이다. 현대 중국어에 1성, 2성, 3성, 4성이 있는 것처럼 고대 중국어에도 평성, 상성, 거성, 입성이 있었는데, 평성은 평탄한 소리, 상성은 낮은 데서 높이 올라가는 소리, 거성은 높은 데서 낮은 데로 내려오는 소리, 입성은 꽉 막히는 소리이다. 원나라 이후로 평성이 현대의 1성과 2성으로 나뉘고, 입성이 사라지는 변화가 생겼는데, 현재 한국의 한자음에는 입성이 그대로 남아있어, 받침이 ㄹ, ㄱ, ㅂ 으로 끝나는 한자는 모두 입성에 속한다. 나머지 평성, 상성, 거성은 현대 중국어의 성조를 따르는데, 1성과 2성은 평성이고, 3성은 상성이며 4성은 거성이다.
평측에서 평은 변화가 없는 소리로 평성이 해당하고, 측은 변화가 있는 소리로, 상성, 거성, 입성이 해당한다. 칠언율시에 있어 평측의 배열을 보면 다음과 같다.
평평측측측평평, ○○XXX○◎
측측평평측측평. XX○○XX◎
측측평평평측측, XX○○○XX
평평측측측평평. ○○XXX○◎
평평측측평평측, ○○XX○○X
측측평평측측평. XX○○XX◎
측측평평평측측, XX○○○XX
평평측측측평평. ○○XXX○◎
이 중 가장 중요한 글자는 각 구절의 제2자, 제4자, 제6자로 반드시 지켜야 하며, 다른 위치의 평측도 되도록이면 지켜야 한다.
2. 압운(押韻)
위의 표에서 ◎표시한 부분이 압운하는 곳이다. 중국 한자의 발음과 한국의 한자발음이 상당히 유사하므로 간단하게 설명하기 위해 한국 한자음을 예로 들면, 한국어의 한자 발음은 초성, 중성, 종성으로 나뉘는데, 중성과 종성이 비슷한 글자를 하나의 운목(韻目)으로 묶어서 같은 운자로 취급한다. 예를 들면 東, 風. 楓. 豐. 弓. 躬. 宮. 公. 功. 工. 攻. 洪. 紅 등은 같은 운목이다. 칠언율시에서 제1구, 제2구, 제4구, 제6구, 제8구의 마지막 글자에 같은 운목에 있는 글자들을 사용해야 하는 규정이 있다.
3. 대장(對仗) = 대우(對偶), 대구(對句)
율시에서 두 구절씩을 묶어서 연(聯)이라고 말하는데, 제1, 2구를 수련(首聯), 제3, 4수를 함련(頷聯), 제5, 6구를 경련(頸聯), 제 7, 8구를 미련(尾聯)이라고 한다. 각 연에서 같은 위치에 있는 글자에 동일한 품사를 가지면서 뜻이 비슷하거나 상반된 글자를 사용하는 것을 대장이라고 한다. 율시에서는 기본적으로 함련과 경련에서 대장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특히 경련은 반드시 대장을 사용해야 한다. 두보의 <春望 봄날 바라보다>시를 예로 보자.
國破山河在 나라는 부서져도 산하는 그대로이니
城春草木深 성에 봄이 와서 초목이 무성하구나.
感時花濺淚 시절을 한탄하니 꽃이 눈물을 흘리게 하고
恨別鳥驚心 이별이 한스러워 새가 마음을 놀라게 하네.
烽火連三月 봉화 불 석 달 동안 연일 오르니
家書抵萬金 집안에서 온 편지는 천만금이라네.
白頭搔更短 흰 머리칼은 긁어서 더욱 짧아지니
渾欲不勝簪 거의 비녀를 꽂을 수가 없을 것 같네.
함련을 보면 “감시(시절을 한탄하다)”와 “한별(이별을 한스러워하다)”, “화(꽃)”와 “조(새)”, “천루(눈물을 흘리다)”와 “경심(마음을 놀라다)”가 동일한 문장구조를 가지고 있으며 성격도 비슷함을 알 수 있다. 경련을 보면 “삼”과 “만”처럼 숫자끼리 대장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 연작시와 유사연작시>
연작시란 같은 제목 아래에 여러 수의 시를 쓰는 것으로 두보의 시에 많이 보인다. 대표적으로는 <흥에 겨워(漫興)> 9수, <가을의 흥취(秋興)> 8수 등이 있다. <만흥>은 절구로 지었고 <추흥>은 율시로 지었는데, 각각 편마다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내용을 말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도 하나의 큰 틀 안에서 완벽한 구도를 갖추고자 하였다. 즉 일종의 퍼즐과 같은 것으로 퍼즐조각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내용을 갖추고 있어 독자적인 시로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퍼즐을 다 맞추어 하나의 세트를 이루었을 때 보다 그 뜻이 명확해지고 유기적으로 구성되어 각 단편의 의미가 뚜렷해진다.
이와 비슷한 것으로 유사연작시가 있는데, 이는 제목은 다르지만 내용상 긴밀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실제로 두보가 비슷한 감흥을 가지고 비슷한 시기에 작성한 것이다. 이는 연작시의 개별작품보다 더 독립적인 작품의 성취도를 가지고 있지만 별도의 작품을 지으면서도 둘 사이의 연결을 시도함으로써 독립적 작품이 가지지 못하는 새로운 감흥과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연작시와 유사연작시와 같은 시도를 통해 두보는 장편시의 유기적인 장법을 단편시에서 구현하여 단편시에서는 구현하기 힘든 대형 설계도를 실현하여 새로운 풍격의 단편시를 선보였다.
< 평측의 파괴: 오체(吳體)>
두보가 율시를 완성시켜 시의 전범을 구축하였지만 또 때로는 그 격률을 파괴하는 시도도 많이 하였다. 대표적인 예로 평측을 파괴하는 시도를 많이 했는데, 두보는 지금의 중국 남방지역인 오 땅의 민가를 채집하여 그 가락에 맞춘 평측을 근체시에 접목시켰다. 이러한 시를 오체(吳體)라고 하는데, 이를 근체시에 포함시켜야 할지에 대해서는 학자에 따라 이견이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대장과 압운을 하고 있어서 근체시에 속하는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다. 이런 오체는 두보가 아무 때나 사용하는 것은 아니고 자신의 심사가 뒤틀리거나 평소 하지 못했던 기괴한 표현을 쓸 때 사용한 것으로 역시 내용과 형식의 통일감을 주기 위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영주, 휴넷 인문학당 강좌-
한시의 기본 형식
한시의 형식 가운데 가장 짧은 오언절구의 형식을, 당나라 때 왕지환(王之渙)의 ‘관작루에 올라(登鸛雀樓)’라는 시를 통해서 설명해 보기로 한다.
白日依山盡 빛나던 태양 산 너머로 지고,
黃河入海流 황하는 바다로 흘러가는도다.
欲窮千里目 천리를 내다보고자,
更上一層樓 다시 누각의 한 층을 더 올라간다.
이 시는 ‘주역’에서 말하는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자세, 견인불발(堅忍不拔)의 정신세계를 드러내고 있다. 이 시에서는 입성자가 많다. 白, 日, 入, 慾, 目, 日 그래서 힘이 넘친다.
제1 규칙
각 구는 ‘2-4 부동’이다. 각 구의 두 번째 글자와 네 번째 글자는 평측이 서로 달라야 한다는 뜻이다. 첫 번째, 세 번째의 글자는 그다지 평측을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1-3 불론(不論)’이라고 한다.
제2 규칙
홀수 번째의 구와 다음의 짝수 번째 구, 이것을 각각 출구(出句)와 대구(對句), 혹은 안짝과 바깥짝이라고 하는데, 그 두 구는 ‘두 번째 글자-네 번째 글자’만 보면 평측이 서로 반대이다. 이 시의 첫 번째 구는 ‘입성-입성-평성-평성-상성’이므로 ‘측-측-평-평-측’이다. 두 번째 구는 ‘평성-평성-입성-상성-평성’이므로 ‘평-평-측-측-평’이다. 둘의 ‘두 번째 글자-네 번째 글자’를 서로 비교해보면 어떠한가? 세 번째 구와 네 번째 구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제3 규칙
짝수 번째 구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평성자로 된 운자(韻字)가 와야 한다. 압운(押韻)이라고 한다. 한자는 끝 발음의 유사성에 따라 일정한 운목(韻目)에 배속된다. 각 글자를 운목에 배속시켜 놓은 자전(字典)을 운서(韻書)라고 하는데, 당시 이후의 한시는 106개 운목으로 한자를 분류한 운목체계를 따랐다. 106개 운을 평수운(平水韻), 시운(詩韻)이라고 한다. 이 시에서 운자는 두 번째 구의 마지막 글자 流와 네 번째 구의 마지막 글자 樓이다. 운서나 자전을 찾아보면, 그 둘은 모두 평성 尤 운에 속함을 알 수 있다.
제4 규칙
두 번째 구와 세 번째 구는. ‘두 번째 글자-네 번째 글자’만 보면 평측이 꼭 같아야 한다. 이것을 점(黏)이라고 한다. 찰싹 들어붙는다는 뜻이니, 이렇게 하여야 비로소 처음 두 구와 다음 두 구가 연결된 느낌을 갖게 된다. 이것을 어긴 것을 실점(失黏)이라고 하며, 근체시에서는 기피하였다.
제5 규칙
세 번째 구의 마지막 글자는 반드시 측성이다. 이렇게 함으로써 두 번째 구와 세 번째 구의 평측이 미묘한 차이를 지니게 된다. 두 번째 구의 마지막에는 반드시 평성 운자가 와야 하므로, 세 번째 구는 마지막 한 글자로 변화를 낳게 된다.
제6 규칙
각 구는 ‘두 글자-세 글자’ 사이에 약간의 휴지(休止)가 있는데, 아래 세 글자가 나란히 평성이거나 나란히 측성이면 밋밋해서 안 된다. 또 세 글자의 한 가운데 있는 글자가 그것만 단독으로 평성이거나 그것만 단독으로 측성이면 지나친 굴곡이 생겨서 안 된다.
이 여섯 가지 규칙을 이해하면, 한시의 다른 여러 형식들도 쉽게 알 수 있다.
칠언절구는 위의 오언절구에서 각 구마다 앞에 두 글지씩이 더 붇은 형식이다. 첫째 규칙은 ‘2-4-6 부동’과 ‘1-3-5 불론’으로 수정하면 된다. 단, 첫 구의 마지막에도 압운할 수 있다.
오언율시는 위의 오언절구를 둘 겹친 형식이다. 실은 절구는 율시(regulated poem)의 앞이나 뒤, 혹은 중간을 잘라 이루어진 형식이다. 설명을 위하여 절구가 겹쳐서 율시가 이루어진다고 하였을 따름이다. 그런데 율시는 두 구씩을 연(聯)이라고 부르며, 수련(首聯), 함련(頷聯), 경련(頸聯), 미련(尾聯)의 네 연으로 이루어지는데, 함련과 경련은 반드시 대구로 이루어져야 한다. 수련과 미련에도 대를 쓸 수 있다. 칠언율시는 간단하다. 오언율시에서 각 구마다 앞에 두 글자씩 더 붙이면 칠언율시다. 함련과 경련이 반드시 대구로 되어야 하는 것은 오언율시의 경우와 같다.
고체시는 이러한 여러 규칙을 지키지 않았거나, 의도적으로 어긴 시 형식이다.
-한국교원연수원, 동양문화와 한자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