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장보살(地藏菩薩)
범명은 크시티갸르바(Ksitigarbha)로 ksiti는 땅을 의미하고 garbha는 태(胎) 혹은 자궁이라 번역되며 포장(包藏)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지장은 대지와 같이 만유(萬有)의 모체이며 만유를 평등하게 자라게 하고 성취시키는 힘을 갖는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대지의 덕을 의인화한 지장보살은 인도 신화 가운데 브라만교의 지천(地天)에서 유래된 것이다. 지천은 인도 아리안족의 신화에서 최고의 여신으로 대지를 신격화시킨 것이다. 원명은 Prathivi(比里底毘)라 하며 12천 가운데 하나로 범천(梵天, Brahman)은 상방(上方) 곧 천(天)을 수호하는 신인데 반해 지천은 하방(下方)의 지(地)를 수호하고 대지신녀(大地神女)의 이름에 의해 재산을 모으고 병을 치료하고 적을 항복시킬 때에 초청되는 여신으로 신앙된다.
이러한 인도의 지신에 대한 신앙이 불교에 습합되어 이상화된 뒤 대승불교에 이르러 불교의 체계 속에 완전히 정착된 것이 지장보살이다.
소의 경전과 성격
지장보살 신앙의 근본 경전은 <불설대승대집지장십륜경(佛說大乘大集地藏十輪經)>, <지장보살본원경(地藏菩薩本願經), <점찰선악업보경(占察善惡業報經)>인데 이들을 ‘지장삼부경’이라고 한다. 이 가운데 <지장십륜경>과 <본원경>에 잘 나타나 있듯이 지장은 석가불이 입멸하여 56억 7천만 년이 경과한 뒤 미륵이 출현할 때까지의 무불시대(無佛時代) 동안 일체 중생을 구제하도록 석가로부터 의뢰받은 보살이다.
그러므로 지장 신앙의 특색은 <십륜경>에 “이 땅의 말법(末法)의 가르침이 된다.”고 기록된 것처럼 불(佛)이 없는 말법의 세계를 구원하는 보살로서 모든 장소에서 몸을 변화하여 나타나 육도윤회(六道輪廻)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한다는 점에 있다.
경전에서 설한 지장보살의 이익을 살펴보면 <십륜경>에서는 음식, 의복, 의약 등을 충족하게 하며 병을 제거한다고 하고, <본원경>에서는 지장상을 공양하면 토지가 풍족하고 집안이 영원히 평안하며 장수하고, 수화(水火)의 재앙도 없다는 등의 10가지 일상적인 현세 이익을 열거하고 있다. 그러나 지장보살의 이익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세 이익보다도 육도(六道)의 고통에서 헤매는 중생을 제도하는 데 있다. 특히 육도 가운데 고통이 심한 지옥의 중생 제도가 지장 본원(本願)의 특색이라 하겠다.
<지장보살본원경>과 같은 경전에 의하면 지장보살은 전세에 대장자(大長子)의 자식 혹은 바라문(婆羅門)의 딸이었다고도 하고 왕자 또는 광목녀(廣目女)라는 여성이었다고도 한다. 이들은 모두 죄고(罪苦)로서 고생하는 중생을 제도하려는 뜻을 지녀 전세에 중생 제도의 서원을 세워 현세의 악업으로 인해 지옥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제도해서 극락으로 인도해 주는 지장보살이 되었다고 한다.
형상의 특징
지장보살도(좌 일본 근진미술관, 우 미국 메트로폴리탄)
지장보살은 다른 보살과 달리 머리에 보관을 쓰지 않고 민머리의 성문 비구형(聲聞比丘形)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지물로는 석장(錫杖)과 보주를 들고 있다. <지장십륜경>에는 “지장보살과 그 권속들이 모두 성문의 모습을 하고 여기에 오기 위해 신통력으로 이 같은 변화를 나타낸 것이니라.”하고 <지장보살의궤>에서는 “다음에는 화상법을 설명한다. 성문 형상이 되고 가사를 걸치고 단은 좌견(左肩)을 덮는다.”는 등의 내용이 기록되어 있어 이러한 성문 비구형이 지장보살의 보편적인 형상임을 알 수 있다.
비구형의 모습과는 또 다른 모습으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곧 머리에 두건(頭巾)을 쓴 형상이다. 두건을 쓴 지장보살은 우리나라나 중앙아시아의 투르판(Turfan) 지방 그리고 돈황(燉煌)에서 유행한 독특한 도상인데 중국 본토와 일본 등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와 조선 전기에 많이 조성되었으며 조선조 후기에는 대부분이 비구형으로 제작되었다.
지장보살의 지물인 석장(Khak-khara)은 원래 불가에서 행도걸식(行道乞食)할 때나 보행 시 벌레나 짐승들이 밟히지 않도록 일깨우는 데 사용하는 나무 지팡이인데 윗부분에 금속 고리가 달려 있어 석장을 흔들면 이 고리들이 부딪쳐 소리가 나게 된다. 이밖에도 석장은 티벳 밀교에서는 주술적인 기능을 갖는 것으로 석장의 소리는 사악한 것들을 물리치고 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한다고 믿어져 왔다. 또한 중국에서는 주로 조상의 구원을 위한 의식에서 사용되어 죽은 자가 갇혀 있는 방문을 열도록 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또 다른 지물인 보주는 여의보주(如意寶珠 Cintamani)라고도 하는데 붓다의 진리와 법을 상징하며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구슬로 믿어져 왔다. 지장보살의 지물로 보주가 채택된 것은 지옥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중생들의 소원을 들어준다는 의미일 것으로 믿어진다.
조형상으로 표현될 때 이들 두 가지 지물이 모두 표현되는 경우와 보주만 표현되는 경우가 있는데 조각에서는 주로 후자의 도상이 채택된다.
중생들을 지옥의 고통에서 구제해 주는 명부(冥府)의 구세주로서 신앙되는 지장보살은 조각이나 회화에서 여러 가지 형식으로 표현된다.
선운사 금동 지장보살 좌상
첫째, 단독상으로는 주로 좌상으로 많이 조각된다. 단독 지장상의 대표적인 예로 전남 고창 선운사(禪雲寺)의 지장보살 좌상 2점을 비롯해 많은 작품이 남아 있다. 또한 고려시대 불화 가운데는 일본 근진미술관의 지장도와 선도사(善導寺)의 지장도 등이 유명하다.
둘째, 아미타삼존의 우협시보살로 지장보살이 표현되는 경우도 있다. 아미타불의 협시보살은 관음과 대세지보살이 일반적이지만 고려나 조선시대에는 중생을 지옥에서 구제하여 극락으로 인도한다는 지장보살 신앙이 크게 각광을 받아 아미타불의 협시보살로 등장하는 예가 많다. 고려시대 아미타삼존상 가운데 동국대학교 박물관 소장의 아미타삼존상이 그러한 예이며 조선시대의 삼존상으로 목조 아미타삼존불감(1637년작과 1644년작) 등을 들 수 있다.
고려시대의 불화 가운데 지장이 우협시보살로 표현된 예로 호암미술관 소장의 아미타삼존도를 들 수 있고, 조선시대 불화로는 1476년에 제작된 강진 무위사(無爲寺)의 아미타삼존후불벽화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신륵사 지장삼존상
셋째, 지장보살을 본존으로 하고 도명(道明)과 무독귀왕(無毒鬼王)이 협시하는 지장삼존상이다. 사찰에서 지장봇살은 명부전(冥府殿)이나 지장전(地藏殿)의 주존(主尊)으로 봉안되는데 이때 지장상만 봉안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도명과 무독귀왕이 함께 조상되어 지장삼존의 형식을 취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도명존자는 '환혼기'라는 중국의 설화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도명존자는 본디 중국 양주에 있는 개원사의 승려로서 대력 13년(778년) 2월 8일 누런 옷을 입은 저승사자 2인에 의해 염라대왕에게 끌려갔다가, 용흥사의 승려 도명인 줄 착각한 탓임이 밝혀져 다시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이런 이야기가 전해진 뒤로 무슨 연유에선지 지장보살의 협시로 등장하고 있다. 무독귀왕은 지장보살의 전생담에서 바라문의 딸을 지옥으로 안내하는 존재로 등장하는데 재수보살의 전신이라고 한다.
넷째, 지장보살과 시왕(十王)을 함께 조성하는 형식이 있다. 명부의 지존으로서 지장보살은 시왕을 거느리게 되므로 이 형식은 세 번째 형식과 함께 명부전 안에 봉안되는 도상이다. 현존하는 사찰의 명부전 안에는 대부분 지장삼존상과 시왕이 함께 봉안되어 있다.
이러한 도상은 불화로도 많이 그려지는데 지장과 시왕이 한 폭에 모두 그려지는 형식과 몇 폭으로 나뉘어 그려져 한 조를 이루는 형식이 있다.
주요 작품
선운사 금동 지장보살 좌상(보물 280호), 금동 아미타삼존불 좌상의 지장보살(동국대 박물관), 목조 지장보살반가상(동국대 박물관), 무위사 아미타삼존벽화의 지장보살, 목조 아미타삼존불감의 지장보살상(동국대 박물관)
목조 아미타삼존불감의 지장보살상(동국대 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