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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마음닦기/독서

by 빛살 2016. 1. 14.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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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우도/ 백금남 지음/ 고려원/ 1989.09.20


대략 27년만에 다시 책을 잡았다.

활자는 그대로였지만 첫 페이지부터 사전을 찾아야 할 정도로 내용이 낯설다.

'촛대, 신팽이'와 같은 백정의 말과 심마니의 말 등 특수 어휘가 많이 나온다. '골피', '흑절구' 등 아직도 정확한 뜻을 알 수 없는 말들이 남아있다.


십우도는 자신의 본심을 찾고 깨달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야생의 소를 길들이는 데 비유하여 10단계로 나누어 그린 그림으로 심우도(十牛圖)라고도 한다. 제목에서 보듯 이 작품은 구도소설이다.


소고기를 귀하게 여기며 그것을 맛있게 먹던 사람들에게 인간말종으로 취급받던 백정이 주인공이다. 가장 낮은 계층이면서도 자신이 하는 일에서 인생의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이 눈물겹다. 주인공 정산우의 가문은 도살행위에도 생명에 대한 외경을 실현하고자 한다. 최대한 고통없이 저 세상으로 보내려고 노력하는데서 그러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백정의 삶과 숲에서의 생활이 새롭고 선불교의 관념적인 내용이 바탕에 깔려 있지만 비교적 쉽게 읽힌다.


너무나도 분명하여(只爲分明極)   

도리어 알아듣는 데 더디다.(飜令所得遲)

일찍이 등불이 곧 불인 줄 알았다면(早知燈是火)

밥 지은 지 이미 오래 되었을 것을(飯熟己多時)


깨치고 나면 모든 것이 간단해 보일 것이다.

깨치기 어려운 것은 업 때문이다.

이 소설에서는 주인공을 둘러싼 모든 것(업)을 '화살의 비유'로 뭉뚱그려 놓는다.

자신의 처지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도에 이르는 길이라는 뜻일 것이다.


'대상이 본질이다'라는 말에 주제가 집약되어 있다.

소와 나는 하나이고, 소를 죽이는 것은 나를 죽이는 것이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표현해도 될는지 모르겠다.

나와 외계의 구별이 없는 상태에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

모든 것이 부처인 경지.

그것이 이 작품이 표현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이 책은 30대 초반에 처음 읽었다.

20대에 읽은 김성동의 <만다라>가 자꾸 겹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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