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소 : 내연산 청하골
2. 시간 : 8월 19일 (토)
- 운동시간, 03:09:22 총 시간 : 05;27;25
- 운동거리, 10.38km
* 충분히 내린 비로 계곡물이 넉넉해 몸과 마음이 풍요 로웠다. 때로는 귀를 기울여야 들릴 정도로 희미하게,
때로는 우렁차게, 냇물이 만들어 내는 음악 속에서 계곡길을 걸었다. 청하골 산행은 제법 비가 내린 후에 하는 것이 제격이다. 혼자 산행을 하기에는 아까운 날이었다.
들머리에 있는 상가.
집집마다 화분을 예쁘게 가꾸어 놓아 깜찍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거리도 깨끗하다.
형형색색의 꽃들 중에서도 '천사의 나팔'이 눈에 띈다.
요즘이 제철인가 보다.
제1관문 일주문
세상의 번뇌를 씻고 一心에 귀의하기 위해서는 복전을 내야한다.
포항시민은 2천원(신분증 필참), 주차장은 포항시민임을 밝히면 그냥 통과
제2관문 해탈문
번뇌를 벗어나 진리의 세계로
제3관문 천왕문
불법의 수호신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곳, 속세의 온갖 욕망으로 찌든 이내 몸은 사천왕이 두려워 그냥 패쓰.
문수암 갈림길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오르막길
숨이 차오를 때쯤 왼쪽으로 시야가 탁 트인다.
그냥 치나칠 수 없는 곳으로 대부분이 쉬었다 간다.
내연산 12폭포 중 제1폭인 상생폭포와 선일대가 보이고
찬찬히 살피면 보현암도 일부 보인다.
고개를 우측으로 돌리면 문수암도 보인다.
내연산에서 뛰어난 전망 장소 중 하나일 것이다.
당겨본 상생폭포
그 앞에 있는 연못은 기화담, 그리고 그 앞쪽(서남쪽) 층암절벽을 기화대라고 한다.
옛날 어떤 풍류객이 기생을 끼고 석벽 위에서 음주가무를 즐기다가
상생폭포에 추락사하여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전망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샛길이 나온다.
여기서 보현암까지는 인적도 드물고 길도 좁지만 완만한 내리막이라 쉽게 갈 수 있다.
사람의 발길이 뜸해 길 한복판에 버섯이 올라와 있다.
달걀 노른자 같다.
이름도 노란달걀버섯.
먹어도 될까?
보현암 뒤쪽으로는 등산로 보수 공사로 통행불가이다.
문수봉이나 삼지봉으로 가는 길 같다.
보현암 갈림길 바로 밑 좌측에 갓부처가 있다.
보현암에서 내려오면 바로 사람들로 붐비는 계곡길이다.
잠룡폭포
출입금지 구역인데 폭포 소리에 취했는지 사람들이 들어와 있다.
통행로를 벗어나 약간 내려오면 폭포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있다.
통행로에서 바라본 무풍폭포
규모가 작아 무풍계(無風溪)라고도 한다.
이 곳도 출입금지 구역인데 평상시 보기 힘든 풍부한 수량과
바로 그 아래 잠룡폭포까지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법을 자행했다. 나도.
내연산 12폭포 중 규모가 가장 크다는 연산폭포
예전에는 폭포 가까이까지 갈 수 있었지만
지금은 입구 근처에서 머물러야 한다.
이 곳에 겸재 정선의 이름과 추사 김정희의 부친(김노경)의 이름자도 있다고 하는데
이제는 확인하기 어려울 것 같다.
관음폭포 연산구름다리에서 바라본 선일대
경북 팔경 중의 하나라는 관음폭포
자비의 화신인 관세음보살에서 따온 명칭이라고 한다.
폭포 앞의 소(沼)는 감로담(甘露潭)이라고 한다.
감로는 신들이 마시는 음료로 그것을 탄 물이 감로수이다.
관세음보살이 병든 사람들을 구제할 때 쓰는 물이 바로 감로수이고 그것이 모여서 된 연못이 감로담이다.
폭포 주위의 굴은 관음굴이라고 하는데 예전에 이곳에서 수도하는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관음굴은 마치 작은 부처를 모시는 감실(龕室) 같다.
관음폭포 앞 다리를 건너 긴 계단길을 따라 비하대를 끼고 올라가면
이전보다는 사람들이 적다.
많은 사람들이 연산폭포까지만 보고 돌아간다.
은폭에 가려면 이 물을 건너야 한다.
모처럼 내 발이 호강을 했다.
은폭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 하여 음폭이라고 불리다가 어감이 안 좋아 은폭으로 바뀌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용이 숨어 산다고 하여 '숨은용치'라는 말에서 은폭이라는 이름이 나왔다는 이야기도 있다.
폭포 오른쪽 바위가 습득대.
조선 인조 때 청하로 유배 온 유숙이라는 사람이 습득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습득대에서 조금 위 왼쪽에 습득의 절친 이름을 딴 한산대도 있다.
젊은 외국인 세 명이 은폭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점심을 먹고 내려오다 보니 한국인 한 명도 그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팬티 차림으로 물놀이를 즐기는 중년의 사내들이
곳곳에 있었다.
한산대
은폭 조금 위 왼쪽에 있다.
흐르는 물을 바라보며
바위 위에서 점심을 먹었다.
김재중님이 도시락을 드시는 모습이 좋아 나도 따라 해봤더니
반찬이 없어도 꿀맛이다.
바위 위에서 길을 잃은 풍뎅이
정자, 선일대
선일대에서 바라본 용추(龍湫)
용추는 연산폭포, 관음폭포, 무풍폭포, 잠룡폭포 일대를 말한다.
여기서는 아무리 애를 써도 연산폭포와 잠룡폭포는 보이지 않는다.
무풍폭포도 나뭇가지 사이로 얼핏 보인다.
관음폭포 맞은편 석벽이 비하대,
다리 건너편 석벽이 학소대이다.
비하대 정상.
과거에 정상으로 오르는 입구에 '빙방사'라는 붉은 글씨가 있어 이곳을 빙방사로 알고 있는 사람도 있는데
궁금해서 검색해 보니 빙방사는 '모래주머니'라는 뜻이다.
국어사전에도 없는 국적 불명의 단어인데 아마 氷防沙에서 온 말 같다.
계단이 설치되기 이전에는 제법 험한 길이라 미끄럼 방지용으로 비하대 오르기 직전과 정상 부근에 모래를 준비해 둔 것 같다.
겸재가 그린 '고사의송관란도'에 나오는 소나무와 닮은 소나무가 지금도 있다는데
나중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되어 확인을 못했다.
아는 게 힘이다.
두 명의 추모비가 바람에 펄럭이는 산악회 리본 아래 나란히 서 있다.
이 비석 뒤 바위 위에 '비하대 대산 이상정'이라는 글자기 새겨져 있다는 것도 뒤에 알았다.
'중허대'라 불리던 것을 연일현감을 지낸 이상정이 비하대로 고쳤다고 한다.
오늘 본 추모비만 다섯 개(비하대2, 비하대 부근1, 선일대2)다.
아마 암벽등반하다가 일어난 일 같다.
비하대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아찔하다.
출입금지 팻말과 밧줄이 쳐져 있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들락거린다(나도).
이곳에서 점심을 먹는 사람들이 많다.
내연산 산신 할무당 제단
보경사에서 연산폭포 쪽으로 약 500m쯤 떨어져 있는 첫달목(첫 번째 다리가 있는 곳)에 있다. 바위 밑에 위패(姑母堂神之位, 內延山山王大神之位)만 모셔져 있는데, 매년 사월초파일 새벽에 덕곡(중산3리), 학산(중산2리), 하광(광천1리) 주민 대표로 조직된 연산계에서 제사를 올린다고 한다.
보경사에 박씨 성을 가진 할머니 보살이 있었다. 홀몸으로 죽을 때가 다 되자 부처님께 호택을 시켜달라고 빌었다. 호택은 죽게 된 몸을 호랑이에게 맡겨 장례를 해결하는 것이다. 호석이라고도 하는데 호석은 호식과 같은 말로 호랑이의 밥이 된다는 뜻이다. 기도가 통했는지 어느 날 호랑이가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에 있는 넓은 터에 보살을 물어다 놓았고 보살은 돌처럼 굳어져서 산신이 되었다. 사람들은 신기하게 여겨 그곳에 신당을 짓고 할머니를 모셨다.
할머니의 죽음은 티벳의 천장(天葬 또는 鳥葬), 몽골의 초장(草葬)을 떠올리게 하며, 호랑이는 산신을 상징하므로 할머니와 산신의 결합도 자연스럽다.
할무당은 한자로 ‘姑母堂’이다. ‘고모(姑母)’는 ‘할머니’란 뜻이며, ‘할무당’의 ‘할무’는 할머니의 이 지방 사투리 ‘할무이’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이며, ‘당(堂)’은 존칭 접미사이다.
신당은 원래 문수봉과 삼지봉 사이에 있는 할무당재(해발 약710m)에 있었으나, 1928년에 송라면 대전3리 마을(산령전 마을) 뒷산 중턱으로 옮기고 백계당(白啓堂)이라는 현판을 붙였다. 신당 안에는 조성 연대가 불분명한 높이 40cm 정도 되는 할무당 석조 신상이 있고 그 옆에 남신의 위패(南無大權山王大神)가 함께 모셔져 있다. 매년 3월 16일(음) 자시에 인근 지역 14개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백계당승봉계 계원들이 제사를 모셔오고 있다.
할무당을 모시는 곳은 내연산 주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데 이곳 첫달목 제단도 그중 하나이다.
한흑구 문학비
한흑구(1909-1979) 수필가, 번역문학가. 평양 출생.
1939년 흥사단 사건으로 1년간 투옥되었으며, 이후 일제의 협박과 회유에도 친일문학에 손을 대지 않아 식민지 치하의 문학가로서 일제 35년 동안 친일문학에 관계하지 않은 문인 12명 중 1명으로 꼽힌다. 1945년 월남한 이후에는 수필문학 창작에 주력했고 1948년 포항에 정착했다. 1958~74년까지 포항수산대학(포항대학교 전신) 교수로 있었다.
1983년 포항 내연산 보경사에 〈보리〉가 새겨진 한흑구 문학비가 세워졌고, 그의 탄생 100주년인 2009년에는 〈흑구문학상〉이 제정되었다.-<다음백과>에서
내연산과 서출동류 지형
명당의 한 요소로 물이 서쪽에서 나와 동쪽으로 흐르는 지형을 서출동류(西出東流)라고 한다. 서출동류의 물은 일조량이 풍부해 산소 함유량이 많다고 한다. 서출동류지형은 서(북)쪽이 높고 동(남)쪽이 낮은 형세여서, 차가운 겨울 북서풍을 막아주고 따뜻한 동남풍을 받아주기 때문에 사람 살기에 좋다.
동(남)쪽 방향으로 트인 말발굽(U) 형태의 산줄기가 서출동류를 만든다. 말발굽 형태의 주능선에서 계곡을 향해 여러 지능선이 갈라지고, 그 사이사이 계곡이 가운데 주계곡으로 흘러든다. 말발굽의 한가운데가 되는 합수 지점이 바로 명당이며 그곳에 절이 자리잡고 있다.
내장산 내장사, 선운산 선운사, 강천산 강천사, 내연산 보경사 등이 대표적이다. 말발굽의 주능선을 종주하다가 힘들면 어디에서든 가운데 계곡 방향으로 내려가면 절로 연결되기 때문에 길을 잃거나 조난당할 염려가 적다.
내연산은 천령산(우척봉)-향로봉-삼지봉-문수봉이 크게 둘러싼다. 주계곡에는 12폭포가 장관을 이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