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인봉>
청량산에서 가장 크고 긴 봉우리. 옛 명칭은 대봉(大峰). 주세붕이 중국 태산의 장악(丈岳)을 모방하여 명명함.
청량산은 옛부터 불교의 흔적이 산 전체에 남아있던 곳으로 봉우리 이름도 보살봉, 의상봉, 반야봉, 문수봉, 원효봉 등과 같이 불교식이었다. 1544년(중종 39년) 풍기 군수이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한 후 봉우리 이름을 일부 고치고 새로 짓기도 하여 지금의 열두 봉우리가 되었다. 퇴계 이황은 이를 청량산 육육봉이라 부르며 주자의 중국 무이산 육육봉과 연결시켜 청량산을 조선의 무이산으로 삼았다. 이때부터 청량산은 불가의 산에서 유가의 산으로 바뀌게 되었다.
登淸凉頂 / 周世鵬
我登淸凉頂(아등청량정) 청량산 꼭대기에 올라 兩手擎靑天(양수경청천) 두 손으로 푸른 하늘을 떠받치니 白日正臨頭(백일정임두) 햇빛은 머리 위에 비추고 銀漢流耳邊(은한유이변) 별빛은 귓전에 흐르네 俯視大瀛海(부시대영해) 아래로 구름바다를 굽어보니 有懷何綿綿(유회하면면) 감회가 끝이 없구나. 更思駕黃鶴(갱사가황학) 다시 황학을 타고 遊向三山嶺(유향삼산령) 신선세계로 가고 싶네
주세붕: (1495 연산군1 ~1554 명종9) 조선 중종ㆍ명종 때의 문신ㆍ학자. 자는 경유(景游). 호는 신재(愼齋)ㆍ손옹(巽翁)ㆍ남고(南皐). 풍기(豐基) 군수 때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인 백운동 서원을 세웠다. 도학에 힘썼으며 유교 이념의 보급에 앞장섰다. 저서로 ≪무릉잡고(武陵雜稿)≫가 있고, 경기체가 <태평곡(太平曲)>, <도동곡(道東曲)> 따위와 <오륜가(五倫歌)>를 비롯한 시조 14수가 전한다. |
전망대에서 바라본 낙동강
전망대에서 바라본 축융봉
청량사 지장전 지장보살상. 보물인 목조지장삼존불상은 유리보전에 모셔져 있다.
오층석탑.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는 소나무가 삼각우송(三角牛松)이다.
청량사는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원효대사가 (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한다.
창건 당시 승당 등 33개의 부속 건물을 갖추었던 대사찰로 봉우리마다 자리잡은 암자에서 울려 나오는 스님들의 독경소리가 청량산을 가득 메웠다고 한다.
한때는 연대사(蓮臺寺)와 망선암(望仙菴) 등 대소 27개소의 암자가 있어서 신라 불교의 요람을 형성하기도 하였다.
하지만 조선시대 불교를 억압하는 주자학자들에 의해 절은 피폐해져 현재는 청량사와 부속건물인 응진전만이 남아있다. 법장 고봉선사(1351∼1426)가 중창하였다.
유리보전 현판 글씨는 홍건적의 2차 침입 때 청량산으로 피난 와 있던 고려 31대 공민왕(恭愍王,1330~1374)이 썼다고 전해진다.
유리보전은 동방유리광세계를 다스리는 약사여래(약사유리광여래, 대왕의불)를 모신 전각으로 ‘약사전’이라고도 한다.
약사여래는 모든 중생의 병을 치료하고 수명을 연장하는 의왕으로 모셔지는 부처님이다.
청량사의 약사여래불은 닥종이를 녹여 만든 건칠불상이다.
유리보전 앞 마당에 있는 동자승. 무슨 생각에 잠겨 있을까. 자못 진지하다.
입석에서 김생굴 쪽으로 올라와서 일주문으로 내려왔는데 가파른 시멘트길이 끝없이 펼쳐진다.
淸凉寺 / 신제(愼齊) 주세붕
欲問淸凉勝(욕문청량승) 묻노니 청량산 어떠하던고
天開寶塔形(천개보탑형) 하늘이 열어놓은 보탑이라네
城霞標白晝(성하표백주) 적성노을 대낮에 표지가 되고
巖溜瀉靑冥(암류사청명) 바윗물엔 하늘빛 쏟아 내리네
危磴僧行慣(위등승행관) 험한 돌길 승려는 잘도 다니고
高松鶴夢醒(고송학몽성) 높은 솔 송학은 졸다가 깨네
孤雲嘉遯古(고운가둔고) 孤雲은 숨은 고인 기끼워하니
一酹慰英靈(일뢰위영령) 한잔 술로 영령을 위로하리라
<일주문>
望山 / 李滉
何處無雲山(하처무운산) 어느 곳인들 구름 낀 산이 없으랴마는 淸凉更淸絶(청량경청절) 청량산이 더더욱 청절하다네 亭中日延望(정중일연망) 정자에서 매일 먼 곳을 바라보면 淸氣透人骨(청기투인골) 맑은 기운이 뼈까지 스며든다네 |
청량산가 淸凉山(청량산) 六六峯(육육봉)을 아ᄂᆞ니ᄂᆞᆫ 나와 白鷗(백구)ㅣ로다 白鷗(백구)ㅣ야 엇더ᄒᆞ랴 못 믿ᄃᆞᆯ손 桃花(도화)ㅣ로댜 桃花(도화)ㅣ야 물 ᄯᆞ라 가지마라 舟子(주자)ㅣ 알가 ᄒᆞ노라 퇴계의 작품으로 알려짐 |
東立雲霄十二峰(동립운소십이봉) 동쪽 하늘에 솟은 열두 봉우리
天池扶出玉芙蓉(천지부출옥부용) 천지(天池)에 피어오른 아름다운 연꽃과 같네
攀崖卽上高高頂(반애즉상고고정) 벼랑을 부여잡고 높은 꼭대기에 올라보니
萬里群山一眼中(만리군산일안중) 수만 리 여러 산이 눈 아래에 펼쳐지네
김환(金瑍)
예안현 출신. 1618년(광해군 10) 사마시에 합격했지만, 당시 혼란한 국정을 비관, 진취할 뜻을 버리고 산림(山林)에 돌아와 경사(經史)로 낙을 삼고 위기지학(爲己之學)에 힘쓰면서 후진 교육에 전념하였다.
선학정과 정자에 걸린 팻말
登山 / 이황
尋幽越濬壑(심유월준학) 그윽한 곳 찾느라고 깊은 골 건너가고 歷險穿重嶺(역험천중령) 첩첩한 고개 뚫어 험한 데를 지났노라 無論足力煩(무론족력번) 다리 힘 피로함은 말할 것이 없거니와 且喜心期永(차희심기영) 마음기약 이룩됨을 기뻐하곤 하였노라 此山如高人(차산여고인) 이 뫼의 솟은 양이 높은 사람 흡사하여 獨立懷介耿(독립회개경) 한 곳에 홀로 서니 그 생각이 간절하다
청량산은 1982.8.21 경북도립공원, 2007.3.13 명승23호로 지정되었으며 봉화군과 진성이씨 상계파종중이 관리하고 있는데 퇴계의 5대 조부가 송안군으로 책봉되면서 나라로부터 받은 봉산이라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