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장소 : 경주 동남산 가는 길
2. 시간 : 10월 28일 (토)
3. 일정
- 월정교 임시 주차장 → 상서장 → 해맞이마을(음지마을) 최햇빛 유적, 윤경렬기념관(양지마을, 공사중) → 불곡 마애여래좌상(할매부처) → 옥룡암/탑곡 마애불상군 → 미륵곡 석조여래좌상/보리사 마애석불 → 경북산림환경연구원 → 화랑교육원 → 헌강왕릉 → 정강왕릉 → 통일전 → 서출지 → 남산리 3층석탑 → 염불사지
* 총 거리: 약 8km
* 총 시간: 04:20
- 월정교 임시주차장에서 출발하여 염불사지까지 갔다가 통일전 앞에서 택시를 타고 출발지로 회귀
(요금 5천 원, 남천을 따라오면 시간도 얼마 안 걸림).
염불사지에서는 대중교통 수단이 없음
- 안내판에는 3시간으로 나오나 볼거리를 충분히 즐기려면 4시간 이상은 잡아야 할 것 같음.
- 무더운 날이나 햇살이 강한 날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야할 것 같음.
평지지만 그늘이 없는 길이 많음.
2018년 4월 완공을 앞두고 한창 공사 중인 월정교 복원 사업.
월정교는 경덕왕 때(760년) 건립된 다리로 남산과 왕궁을 있는 화려한 다리였다.
옛날 서라벌의 중심지는 북천과 남산 사이였다고 한다.
원효와 요석공주의 사랑이 떠오른다.
상서장(上書莊, 경북 기념물 제46호): 고운 최치원(857-?)이 나랏일을 걱정하여 시무십여조의 글을 진성여왕에게 올렸던 곳이다.
서라벌대로 바로 옆에 있다.
문이 닫혀 있어 겉만 보고 왔다.
사진 출처-<경주환경운동연합>
최햇빛(본명: 칠규) 1910 . 7. 5. 경주 인왕동 출생, 2000. 10 .30. 별세(90세)
* 계림초등을거처 중2 때 식민교육에 분노를 참지 못해 자퇴
* 그후 서당에서 <한글소설독서회> 사건으로 구속 수감 후 풀려나 만주 등지에서 영화, 연극 변사로 활동하면서 민족의식 고취와
독립운동에 참여함
* 장년에 경주로 귀향. <서라벌 우리말 펴기 모임>, <한글 물결 모임> 등을 조직
구멍가게로 가난한 살림을 꾸려가며 한글 사랑, 한글사용하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치기 위해 동분서주하다가 일생을 마침
한글사랑 / 한글사용
* 고치고, 새로 짓고, 건의하여 예쁜 우리말이 된 고운 이름들과 말: 최칠규 → 최햇빛(1976년 개명), 아내 김난순 → 김포근,
자식과 손자 → 한울, 은솜, 힘찬울, 새솔, 아름, 고은
* 마을 이름: 음지마을 → 해맞이마을, 문천마을 → 반달마을, 구역마을 → 밝은마을, 서원마을 → 고운마을
* 대통령, 장관, 박물관장, 교육부, 체신부, 국어교육연구원 등에 2,000여 회 건의로 고쳐진 이름들: 황룡사지→ 황룡사터,
감사하다 →고맙다, 미아보호소 → 길잃은아이 찾아주는 곳, 귀하 → 님, 대축제 → 큰잔치
* 아이 이름 한글로 짓기로 약속하고 주례를 해주시고 한글 이름 지어주신 것: 4,000여 명
* 대학, 사관학교, 회사, 학교 등 전국 1,000여 회 한글 특강
출처<경주 고도 아낌회> '한글학자 최햇빛 할배 이야기/김윤근'에서
최햇빛님이 사시던 집터 옆에 세워진 기념비.
경주의 유명한 토속 음식점 '도솔마을'의 대표 무심화님이 개축하여 살고 있다고 한다.
남천을 사이에 두고 양지마을과 음지마을이 있다.
음지마을은 최햇빛님이 '해맞이마을'로 이름을 바꿨다.
맞은편은 양지마을로 고청 윤경렬 선생의 생가가 있다.
538돌 한글날이면 1984년이다.
첫돌이 1926년 11월 4일(음력, 9월 29일)이다.
최햇빛님이 잊히듯 해맞이마을이라는 이름도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유심히 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1990년대 어느날 오후쯤이었을 것이다.
흰색 두루마기 차림으로 선생이 포항에 있는 나의 직장으로 찾아왔다.
새파랗게 젊은 부장에게 한글 강연을 하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일언지하에 거절당했다.
생면부지의 선생이었으나 왠지 내가 서러워지는 것 같았다.
아마 그때쯤 읽은 이청준의 <꽂동네의 합창>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신라인, 남산할배 등으로도 불리는 향토사학자 윤경렬님의 기념관 건립과 고택
경주 남산 불곡 마애여래좌상
최햇빛님 생각으로 찌푸린 하늘처럼 먹먹했었는데
불상을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과 웃음이 터져 나왔다.
'이 건 꼭 우리 어머니 같다.'
인상 깊은 부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