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9일 오후
물기를 쫘악 빼버린 햇살이 대지를 말리고 있다.
나의 고향은 강원도 호저면 무장리.
호저중학교를 다니면서 고산리 아이들과 어울렸고 외가쪽으로 친척이 있어 가끔씩 놀러오기도 했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 친구의 아버지가 장일순님이었다.
79년도 졸업을 앞두고 봉산동에 있는 생가를 방문한 적이 있었는데 살갑게 맞아주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그렇게 유명한 분인 줄 몰랐다.
98년 친구가 보내 준 장일순님의 <나락 한알 속의 우주>라는 책을 통해 최시형의 사상을 조금이나 알게 되었고
지금껏 관심만 가지고 있다.
고향마을에 차로 10분이면 올 수 있는 이곳, 해월 피체지.
미루다 미루다 오늘 찾게 되었다.
북원주IC를 지나 고산초등학교 조금 못 미쳐 고산교가 나온다.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으로 자그마한 공터가 있고 <새농촌건설운동 우수 마을> 기념비가 우뚝 솟아있고
그옆에 해월기념비가 있다.
기념비 앞면
<최보따리>, 해월의 별명으로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그 보따리에는 스승 수운 최제우의 유훈이 들어 있었다고 한다.
쫓기는 중에도 틈틈이 가다듬어 <동경대전>과 <용담유사>를 편찬한다.
오른쪽에 원진녀 생가가 보인다.
기념비 뒷면
기념비 옆면-김대호 짓고 장일순 쓰다. 1990년 4월 12일. 치악고미술동우회 세움.
<나락 한알 속의 우주>에서 가져옴
다리를 지나자마자 나타나는 정류장. 좌회전하여 맞은편 길로 들어가면 됨.
이쯤에 안내표지판이 있으면 좋겠다.
송골로 가는 길을 따라가다보면 이내 표지판이 나온다.
길이 좁다.
1898년 4월 5일 동학 2대 교주 해월 최시형은 이곳에서 체포된다.
1898년 1월 30일부터 이곳에서 3개월간 머물렀다.
더위에 들깨가 축 늘어져 있다.
원래는 초가였을 것이다.
다산초당 등 다른 유적들처럼 관리 문제로 기와를 올렸을 것이다.
2008년 참 살기 좋은 마을 가꾸기 운동의 일환으로 정부보조금 4000만원과 마을기금 4000만원을 들여 복원했다고 한다.
안방을 보고 싶었으나 문이 잠겨 있었다.
문틈으로 들여다 보니 해월의 초상화와 몇 가지 물건들이 있었다.
관리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898년 6월 2일 처형당함.
최시형의 유일한 사진으로 죽기 직전의 모습이라고 한다.
퉁퉁 부은 발은 무엇을 의미할까.
'<일하는 한울님>-해월 최시형의 삶과 사상'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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